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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5시, 그리고 인생

< 뻔뻔한 영화평 - 15 >  엔딩 컷이 비슷한 두 개의 영화를 엮다.

by simpo Mar 21. 2025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럼 인생은 뭐게?

   궁금하면 '퍼펙트 데이즈'를 꼭 보시오, 퍼펙트한 답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걸 얻을 수도 있음.

# 두 편 동시상영의 추억을 떠올리며, 두 남자의 인생을 하루에 몰아 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듯.  

브런치 글 이미지 1

# 영화 '25시 (The 25th hour)'는 루마니아 소설가 '버질 게오르규'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은 1949년에 발표,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는 1967년 제작. 우리나라 개봉은 1978년에야 이루어졌다.


# 원작자 게오르규는 루마니아 최고의 문학가로 1974년 이후 우리나라에 여러 번 방문했다. 그는 루마니아도 외세에 의해 침탈된 역사가 많아서 한국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 앤서니 퀸의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온갖 고초를 겪고 간신히 아내에게 돌아왔지만 소련군에게 유린되어 자식까지 낳은 아내는 마냥 기쁠 수는 없다.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막내를 안고 신문기자의 요구대로 포즈를 취하는 주인공... 기자란 사람들!

다음 링크를 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X2wgxg5EnM4

브런치 글 이미지 2

# 영화 '쉘 위 댄스'의 야쿠쇼 코지를 기억하시는가?

  그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로 2023년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1984년 '파리 텍사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그리고 3년 후 1987년 '베를린 천사의 시'로 칸에서 감독상까지 받은 거장 빔 벤더스. 그가 돌아왔다!

   

# 나이를 드신 만큼 드셨으니 인생이 무엇인지 한 편의 시로 알려 주신 듯한데, 그리 달콤한 거는 아니라는 거는 알겠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사람이 된 천사 다미엘이 2023년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로 나타난 건 아닐까?


브런치 글 이미지 3

           

웃음과 눈물 사이 – '25시'와 '퍼펙트 데이즈', 두 개의 클로즈업

영화의 엔딩씬은 때로 영화 전체의 서사 보다 더 강력하다. ‘25시’에서 앤서니 퀸의 클로즈업은 웃는 듯, 우는 듯 모호한 표정으로 끝난다. 그리고 반세기 후,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암전 한다. 두 인물은 매우 다르지만, 그들의 마지막 얼굴에는 거대한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25시' – 시대에 압도된 인간의 얼굴

루마니아의 농부 요한 모라(앤서니 퀸)는 나치, 소련, 연합국 사이에서 유린당하는 ‘소외된 개인’이다.

그는 체제에 의해 정체성을 빼앗기고 소모된 인간이다. 『25시』는 그의 삶의 여정을 거의 전 생애에 걸쳐 따라가는 거대한 서사다. 이 서사 속에서 개인의 삶은 점차 역사의 수레바퀴에 휩쓸려 나간다.

 마지막 클로즈업에서 퀸의 표정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 인간 존재 자체의 허무와 비애를 담고 있다. 웃고 있는 듯하지만, 웃을 수 없는 현실. 그리고 강요된 웃음을 거부하지 못하는 체념과 절망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퍼펙트 데이즈' – 반복되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시

 25시가 소설이라면 '퍼펙트 데이즈'는 시에 가깝다. 이 작품은 히라야마의 전 생애를 따라가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일상의 단면들을 정밀하게 포착함으로써, 그 조각들 사이로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유추하게 만든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거의 변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감정의 굴곡과 고요한 성찰이 스며 있다. 매일 반복되는 화장실 청소, 식물에 물을 주는 손길,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의 삶 속 내밀한 곳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조카를 찾으러 여동생이 다녀간 후 히라야마는 무너지듯 오열한다. 영화는 그의 과거를 소설처럼 이야기해 주지 않지만 우리는 이 한 장면 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빔 벤더스의 시선 – 베를린에서 도쿄까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는 인간의 감정, 고통, 기쁨을 느끼고 싶어 한다. 카메라는 인간 존재의 미세한 떨림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본질을 직시한다. 주인공 천사 다미엘(Damiel)은 모든 사람들의 속 마음까지 다 알 수 있다.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영생을 포기하고 사람으로 태어난다.

 '퍼펙트 데이즈'에서는 천사 대신 말없이 살아가는 청소부 히라야마가 카메라 앞에 선다. 그의 고요한 존재감은 현대 도시의 소음 속에서 오히려 더 명확하다. 빔 벤더스는 언제나 삶의 본질을 향해 조용히 질문을 던져왔고, '퍼펙트 데이즈'는 그 질문의 가장 단정한 형태가 아닐까? 한 편의 시처럼.


 매일매일 죽음에 직면하라! -  한 줄기 빛에서도 삶의 희열을 느끼는 법  

 히라야마의 단순한 삶으로부터 어떤 이들은 소박한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의 비극적 요소가 숨어 있다. 히라야마의 고요한 얼굴은 평온함이 아니라, 스스로 감내해 온 상처와 외로움의 결과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보이는 표정은 눈물인지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희망이 아니다. 그 표정은 한 번의 연습도 못해보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복잡하다.

 문득 멜 브룩스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는 한 번도 연습해보지 못한 배우...”

 히라야마의 마지막 연기는 그 말의 진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무대도 조명도 없이, 매일의 삶을 연기해 온 한 남자의 얼굴이 스크린 위에서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는 삶을 견디는가, 아니면 축복하는가?”


## '베를린 천사의 시(원제; Der Himmel über Berlin 베를린의 하늘)'

     오프닝부터 천사가 노트에 시를 적는 장면이 나온다. 시의 일부를 발췌하여 아래 적는다.


    어린아이가 아이였을 때

     (Als das Kind Kind war)   -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어린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영원히 살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듯했고,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어둠도,
 혼자 있는 것도,
 죽음조차도.

 

 왜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가?

 왜 나는 여기 있고, 저기는 아닌가?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공간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태양 아래의 삶은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은
 이 세계 앞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의 환영일 뿐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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