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어치보다 사용감, 예뻐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것
관계를 비우고,
미니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데도
아직도 내 곁을 맴도는
물건들이 있었다.
대량으로 비워나갈 때는
차마 눈치채지 못했던
물건들이었다.
내 물건은 의미가 많았다
내 물건에는
기능보다 의미가 더 많이 붙어 있었다.
예뻐서 남긴 것,
비싸서 남긴 것,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었던 것들.
그 물건들은
지금의 나보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 더 가까웠다.
어느 순간부터
물건의 값어치가
기준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비싼 옷이라서,
아껴 입어야 할 것 같아서
남겨두던 옷들보다
당장 매일
빨아서 입게 되는 옷만
곁에 두기로 했다.
특별한 날을 기다리는 옷보다
오늘 하루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옷이
더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옷을 샀을 때
조금이라도
핏이 애매하면
반품하기로 했다.
이미 배송을 받았고,
반품 비용이 들더라도
그 비용을
‘수업료’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옷장에
애매한 옷 하나를
오랫동안 남기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덜 피곤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쇼핑 위주로
바뀌었다.
직접 입어보고,
움직여보고,
지금의 몸에
편한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
사는 순간보다
입는 순간을
기준으로 두게 됐다.
반대로
매일 쓰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선택이 더 느려졌다.
자주 쓰는 물건일수록
아주 오래 고민했고,
제값을 주더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르게 됐다.
싸서 샀던 물건,
귀여워서 샀던 물건,
지금은 안 써도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샀던 물건들은
더 이상 기준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질문을 먼저 하게 된다.
이걸
얼마나 자주 쓰게 될까.
쓰는 동안
몸과 마음이
편할까.
지금의 생활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으면
굳이
들일 이유도 사라졌다.
내 물건을 비운다는 건
값싼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준을 분명히 하는 일이었다.
적게 사고,
자주 쓰고,
오래 쓰는 쪽으로
삶을 조정하는 선택.
이제 내 물건들은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나를
도와주는 역할만 한다.
과거의 나를
증명하지도 않고,
미래의 나를
미리 대비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만큼만
곁에 둔다.
내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바뀌고 나서야
다른 것들도
같은 질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물건은
왜 남기고 있는지,
누군가의 물건과는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미니멀은
비우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이제 다음 이야기는
이 기준이
아이들 물건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