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 나쁜 습관 따로 있나
'아니 어떻게 저러고 살아'라고 생각했던 걸, 거의 1년이 되는 시간 동안 30일씩 10개의 습관을 시도했다. 새해에 술을 끊는 것으로 시작했던 챌린지는,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냉장고와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나기도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금주를 제외하고는, 이 모든 극단적인 습관을 30일 이상 지속했다. 하지만 역시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며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아주 놀랍게도 매일의 좋은 습관들이 쌓여, 1년 넘게 내 인생에서 술을 제거하게 되었다.
물론 매일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하는 그런 일들은 그다지 유쾌하고 편하지는 않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꼭 눈에 보이는 효과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제력과 정돈된 일상은 아마 이 1년에서 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따뜻한 물이 잘 안 나와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이미 한겨울에 찬물 샤워를 했고, 또 아직도 겨울 이외에는 찬물로 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해외여행을 가서 인터넷이 잘 안 되거나 배터리가 거의 없는 상황에도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다. 30일간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봤던 경험 덕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나 어떤 상황에 대해 문제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제는 단순히 불평하기보다는, 내가 권한이 있든 없든 해결책을 함께 생각해 본다. 그렇게 불만을 문제의식으로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일상에서의 불편함에 대해 참을성이 생긴 것은, 수년간 해외생활을 하는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에어컨부터 따뜻한 샤워까지, 일상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던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 것이, 기계나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인간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버스나 전철이 10분 늦게 오는 것, 갑자기 기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 어떤 절차를 며칠에서 때로는 몇 달까지 기다리는 것 등등, 이런 기다림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습관에 도전하는 것은 매일 내가 안정을 느끼던 범위인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매일 샤워기의 온도 조절하는 부분을 왼쪽으로 돌리던 걸, 찬물이 나오는 오른쪽으로 돌리는 게 정말 별거 아닌 일이지만 처음 일주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한 달 동안 매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에서의 작은 도전들이, 결과적으로 일과 인생에서의 큰 도전으로 이어졌다. 학교 다닐 때 다른 건 다 해도 발표만큼은 안 하게 되던 내가, 몇십 명 앞에서 발표하는 일에 거리낌 없이 손을 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리고 이 습관 챌린지들을 시작할 때 호주에 있었던 나는, 일본을 거쳐, 지금은 북미에 살고 있다. 어쩌다 보니 컴포트 존을 좀 많이 벗어나기는 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계기'와 '동기'가 충분하지 않으면 시작해도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동기가 충분하다면 갑자기 시작해도 성공하는 순간도 있다. 나의 첫 30일간 좋은 습관 챌린지의 시작은 술을 끊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바텐더로 일한다는 이유로 보기 좋게 2주 만에 실패해 버렸지만, 놀랍게도 나는 지금 술을 완전히 끊은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술을 먹고 엄청나게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술을 갑자기 먹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에 처했던 것도 아니다. 그동안 충분히 마셨고,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실 이유도 없으며, 술을 마신 후 생기는 부정적인 효과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속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 만에 술을 딱 끊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명상이 좋다는 건 알지만 좀처럼 매일 딱 10분이라는 시간을 명상에 할애하지 못하다가, 넷플릿스의 <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를 보고 명상의 필요성과 작용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매일 자기 전 꾸준히 명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명상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효과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지만, 이렇게 동기를 찾아낸다면 생각보다 수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삶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읽고, 밖으로 나가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에 바로 동의하고 실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쌓여, 인생에서 선택해야 하는 매 순간마다 내 선택지가 되어준다. 그 가운데서 습관과 루틴은 내 삶을 붙잡아주는 탄탄한 지지대다.
어느 순간부터 챌린지를 하지 않게 된 이유는, 꼭 특정한 습관이나 규칙을 정해놓지 않아도 무엇이 내 삶에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킷리스트들이 한 바구니 있고, 여전히 내 컴포트 존은 너무나 좁다고 느낀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다른 종류의 습관들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매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몇십 번 거절을 당하는 그런 일들을 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결국 이 1년의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내 생활의 기반이 되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제한과 규칙 덕분에 나는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때로는 매일이 새로웠다. 지금은 그 덕분에 훨씬 정돈되고 차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강해진 내 자제력에 매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