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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가라 하지만 언제나 가라

언젠가 네게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길

by 모호씨

곰사냥을 간다
몇 일째 곰은 발자국도 보이지 않고
굶주림을 응대함에 있어서는
나보다 가족이 늘 더 서툴기에
체력보다 조바심에 나는 늘 더 괴로웁다
토끼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몇 일째 나를 흔드는 미약한 울음소리
곰에 집중을 해야하지
곰은 역사처럼 머리가 걸릴 테지만
토끼는 머리채 삶아질 테니까
몇 일째 나를 흔드는 미약한 구원의 소리
곰을 쫓으며 삶을 흔들고
곰을 쫓으며 토끼 같은 몇은 제 손으로 묻고
곰을 쫓다가 저도 소문처럼 사라질 것인가
토끼나 품고 왔다고
어린 비웃음이나 듣고
돌리는 놀리는 노래나 듣고
푹 끓여 불린 국을 생수처럼 들이키고 돌아누워 잠에 들 것인가
분한 밤에도 토끼같은 것들 새근히 잠을 잔다
나도 토끼도 곰을 꿈꾼다
나의 부끄런 밤도 토끼의 다행스러운 밤도
토끼 머리 푹 끓인 국으로
위로하듯 고맙다는 듯 닿은 등과 등 사이의 껄끄러운 체온으로
얼지 않는다 너무 괴롭히지 않는다 사그라든다

돌아서 가라
하지만 언제나 가라
갈 곳을 정하고 가다가 눈이 가는 곳은 다 돌아서 가라
큰 것을 잡으려다 자잘한 것들을 많이 잡아라
부끄러운 성공은 너의 꿈을 지켜준다
부끄러운 성공은 너와 꿈 사이를 좁혀준다
맞춘 적이 없는 화살로 곰을 쫓는다
삶도 연결하지 못하고서 꿈을 쫓는다

쫓아선 본 적이 없는 곰을 마주치고
토끼나 꽂던 화살로 곰의 목을 꽂고
나는 울었네
늙은 몸 둘러 맬 힘도 없어
질질 끌다 흘린 피 길마다 냄새에 몰려드는 발자국들
나는 성급히 가죽이나 거칠게 벗겨 매고서 돌아왔네
곰 가죽 위에서
우리는 푹 삶은 토끼죽을 먹네 웃기네
곰에 미쳐서 토끼나 잡으면서 살아왔네
이야기는 우리 뒤에나 남을테니까
사실 우리는 그냥 배부른 밤이면 충분했었네

곰을 잡자 하는 것은 필요했다
곰을 잡자하면 나는 토끼나 잡는 놈은 아니기에
실패하는 사람이 작은 사람보다 나을 때가 많다
곰을 잡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만으로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
곰이나 토끼 열마리나 열흘 쯤
트로피를 보면서 살기에는 삶은 지나치게 길다
성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꿈같은 성공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버티는 작은 삶을 위한 자잘한 것들이
이 많은 사람들을 살게 했다
과일들 자잘하게 따먹은 것들
버섯들 주먹만한 고기들
바다 못 가 주운 조개들 딱지들
발은 거는 잎들 뿌리들
허나 참새를 잡으러 숲으러 가지는 않을 터
그래 사람은 어려워 곰같은 이야기가 늘 또 필요하다
아이를 걷게 하는 거
너를 살게 하는 거
하지만 우리가 다행히도 같이 살아 남은 거

W 심플.
P Luis Tosta.



20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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