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D사업부는 TV를 만드는 사업부로 보르도 TV 신화 이후 세계판매 1위를 연속해 왔다. 그러나 스마트 TV 시대가 오면서 LG는 UX가 뛰어난 Web OS라는 스마트서비스를 내놓았고 Apple, Roku, 크롬캐스트 같은 새로운 셋톱디바이스가 등장하면서 1위의 아성을 위협받게 되었다. IT 서비스 유전자가 필요하여 네이버, 애플, 페이팔 등에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던 때였다. 덕분에 대학교 졸업 때는 토익점수가 없어 꿈도 못 꾸던 회사를 네이버에서 콘텐츠서비스팀장과 프로젝트매니저 등을 경험한 덕에 입사를 할 수 있었다.
입사 전 마트에 가서 TV에 있는 서비스 몇 가지를 짧게 써봤는데 뭔가 어색했다. 입사를 했더니 기존 담당자들은 TV로 보는 웹진 같은 것을 신규 서비스로 기획하고 있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동료들이 등을 맞대고 있는 통로의 끝, 창가에 80인치 정도의 스마트TV가 있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 훈민정음과 PPT로 보고문서와 기획문서를 만들고 있는 사이에 서서 2주 동안 TV에 있는 모든 기능들을 삿삿이 다 써봤다. 당시 손의 모션인식을 통해 채널을 바꾸고, 볼륨을 조절 등을 하는 신기능이 있었는데 지난 가던 사람들은 허공에 손을 휘휘 돌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쟨 도대체 뭐 하는 거지?’ 하며 지나갔다.
대표서비스 중 삼성전자가 직접 만든 OTT 서비스가 있었는데, 직접 OTT 사업을 할 수 없으니 국가 별 세컨드 OTT 서비스 몇 개를 모아서 만든 서비스였다. 그런데 영상을 보려면 서비스 별로 회원가입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걸 리모컨으로 입력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기획자라는 의무로 리모컨으로 타이핑을 해가며 결국 가입을 했다. 15분이 걸렸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영화를 보려면 다른 OTT 업체의 것이면 또 가입을 해야 했다. 이 건 서비스가 아니라 지뢰밭이었다.
그 당시 제품 판매로 내는 매출이 TV사업부 매출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서비스는 TV 판매 시 고객을 유인하는 용도로 봤던 것 같다. 그러니 서비스가 출시되고 나면 그 서비스를 활성화할 생각보다는 내년에 고객을 유인할 새로운 서비스의 문서작업에 몰두를 했다.
기획은 고객을 움직이는 작업이다. 그러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접근법은 만드는 사람의 관점이 아닌 이용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써보고 만드는 것이다.
아마 그 당시의 삼성전자는 서비스 기획보다는 제품판매 기획에 방점이 찍혀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점이 경쟁사보다 압도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닐까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