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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Mar 07. 2021

3. Drive-thru

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짧은 악몽을 수백 개는 꾼 것 같은 느낌. 

멈추지 않는 극심한 두통은 자는 동안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진맥진한 몸을 일으키고 잠시 앉아 있으니 배가 고팠다. 

입맛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침 식사 후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두통이 잦아들었다.

두통이 시작된 후 어떻게든 그 통증을 줄여보고자 6시간 간격으로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훅 하고 갑자기 들어온 두통은 홀연히 사라졌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핸드폰으로 테스트 예약 시간을 확인했다. 

어제만 해도, 아니 오늘 잠에서 깨기 직전까지만 해도 누가 내 머리 좀 떼어갔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는데, 

그 두통이 사라지자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감기든, 독감이든, 코비드-19이든, 그게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미 내 몸 안에서 사라진 느낌이었다. 

테스트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결정장애가 있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그건 식당에 들어가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졸업이 요원해 보이는 박사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등의 중대한 결정까지 내 삶의 모든 영역에  아주 촘촘하게 박혀있다. 

누군들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지 않겠냐마는 어쨌든 한쪽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괴롭다. 


그런 나에게 ‘선택과 집중’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말이다. 

선택을 못 하고 있는데 집중이 웬 말이냐..




테스트를 받기 위해 나갈 차비를 했다. 오한, 열, 두통 … 이미 나의 증상들은 사라졌지만 무증상 환자도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니 정상 컨디션을 되찾은 것과는 별개로 검사는 일단 받기로 결정했다. 


Drive -thru 테스트장에 도착한 후 검사가 셀프임을 알았다.

지정 장소에 차를 세우니 간단한 예약 확인 후 검사 키트를 건네주었다.

그 봉투 안에는 긴 면봉 하나와 작은 플라스틱 용기, 그리고 일회용 소독용 티슈가 들어 있었다.

멍하니 그 키트를 바라보는데 유리창 너머로 지시 사항이 들려왔다. 


Take the swab and place it halfway up your nostril, twirl it to the right a few times and twirl it to the left a few times, and let it sit there for 15 seconds.


독감 검사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다. 즉, 면봉이 얼마나 깊이 코 속으로 전진해야 하는 건지 전혀 감이 없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았던 지인의 말이 순간 떠올랐다. 

콧속으로 들어간 면봉이 목구멍을 찍고 나왔다, 

면봉이 코를 뚫고 올라가 뇌를 채취하는 줄 알았다, 등의 다소 과장된 이야기.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고 꽤 깊숙이 넣어야 되는구나 감을 잡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깊숙하게 면봉을 찔러 넣을 자신이 없었다. 


연홍색 히잡을 쓴 여성 의료진이 유리창 너머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 놔…난감하네...... 이대로 차에 시동을 걸고 집에 가버릴 수도 없고.......


운전석 위에 있는 거울을 내리고 개별 포장된 면봉을 뜯어 한쪽 콧구멍에 집어넣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면봉을 집어넣은 후 지시대로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15초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면봉을 빼냈다. 그리고 그 면봉을 다른 콧구멍에 집어넣고 반복했다. 


그다음, 그 의료진은 액체가 담겨 있는 작은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열고 콧속 분비물이 묻어 있는 면봉을 집어넣은 후 몇 차례 펌핑을 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지시 사항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작은 플라스틱 통과 면봉을 차 유리창에 가까이 갖다 대고 펌핑하는 시늉을 하며 이게 맞는지 물었다. 그때, 작은 통에 들어 있던 액체가 밖으로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뚜껑을 연 채 비스듬히 들었던 것이다 


상관없었다. 나는 이미 나의 검체 채취 과정을 신뢰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판은 보나 마나 삽질이었다. 

대충 지시하는 대로 마무리를 한 후 작은 플라스틱 통을 수거함에 넣고 소독용 티슈로 수거함을 닦았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Image by cromaconceptovisual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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