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부장 내란 사건 재심

개만도 못한 놈과 의인 사이에

by 함문평

1979년 10월 1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그때 작가는 고3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재규가 개만도 못한 놈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10.26 사건에 대한 신문과 잡지 기록을 소급해 읽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녹취록도 열람했다. 단편 소설 <의인>을 썼다. 겁도 없이 교내문학상 구룡문학상에 냈다. 다른 작품도 함께 냈는데, 심사결과는 기대도 안 한 <대홍수>가 당선되었고 <의인>은 쓰레기통으로 갔다는 것을 대홍수로 당선 상패와 상금 8만 원을 받았다. 8만 원 요즘은 우습지만 1985년 12월 8만 원이면 엄청 큰돈이었다. 할아버지가 대학 등록금 50만 원 마련 위해 26만 원, 29만 원 두 마리 소를 팔아 우편전신환으로 보내주던 시절이었다.

당선금으로 무심천 강변 꽃다리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 <가덕순대>에서 선배 3명, 동기와 나 5명에 각각 여자 파트너까지 10명이 순대를 종류별 안주시키고, 소주, 맥주, 막걸리 취향대로 먹고 마셨다.

당선은 대홍수가 되었지만 <의인>이 더 잘 쓴 소설이라고 하니, 선배와 선배 애인들이 다 큰 일어난다고, 김재규 대통령을 시해한 자를 의인이라고 하면 남산에 잡혀간다고, 절대로 의인은 발표하려거든 군인 출신 대통령이 지나가고 문민 대통령이 탄생하면 그때 신춘문예 응모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총각 좋은 시절 다 가고, 30에 결혼하고 첫 딸이 1991년에 태어났다. 대학노트를 꺼내 의인 초안을 원고지에 정서하다 크산티페에게 걸렸다. 쓴 원고지를 북북 찢고, 사용 안 한 원고지도 쓰레기통에 던졌다. 당신이 총각으로 발가락 10개는 군화 신어도 실고, 막일 안전화 신어도 살아. 하지만 딸 발가락 10개, 우리 식구 지금 30개, 시골 부모님 만나면 장손 타령하시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증손자 안겨드리면 40개야, 알아? 했다.

그렇게 절필하고 35년 후 단편집 <백서>를 냈다. 요즘 법원에서 김재규 부장 재심이 받아들여져 심리 중이다. 김재규를 <의인>으로 불러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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