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고 어좌에 내가 조선의 국모다

크산티페 산문. 55

by 함문평

작가가 졸업한 학교는 국사 시간보다 기술 시간이 더 재미있었다. 이유는 그 기술 선생님이 일본강점기 시절 동양최고의 무용수 최승희의 4촌 동생이었다. 6.25 전재에 북한군 장군으로 참전한 최용건이 형이었다. 그런 빵빵한 집안이라 북에 있으면 상위 3%의 부귀가 보장되지만 어머니와 둘이 남하했다. 아버지는 북한군 고위 간부로 참전 중인 상태서 남한으로 내려왔고, 차마 아버지 인적사항을 말하면 피해가 갈 것 같아 일찍 사망한 깃으로 어머니와 선생님 둘만의 호적을 만들고, 평양에서 경력을 증명할 수 없어 검정고시로 대학을 갔고, 우리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우리가 졸면 최승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돌렸다. 나는 인물이 별로인데 사촌 누님은 그 시절 동양최고의 인물에 무용실력 최고였다고 하셨다. 흑백 사진 속 최승희의 미모는 우리 학생시절 트로이카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는 껌값이었다.


졸던 작가와 동기들은 눈이 번쩍 뜨였다. 기술 가르 챌 것 다 가르치고 시간이 남으면 일본강점기 이야기 6.25전 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최근에야 꽁꽁 숨겨졌던 김건희가 조선왕실 어좌에 겁대가리 없이 교양 없이 샌들이나 하이힐을 신고 올라앉았다는 사진과 증언이 터진다.


우리는 기술선생님에게 민비를 명성황후로 황후 깜도 안 되는 것을 올리는 역사조작자다.ㄹ과 동작동 국립묘지 독립 애국지사 묘가 남북통일 후 북한에 수장고에 기록된 역사서가 대조되면 절반은 파묘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국사 선생님 국어선생님은 좋게 우리의 민족자존감 올리는 차원에서 명성황후라고 호칭했지만 기술선생님 최승희 사촌 동생은 민미가 일본 낭인에게 죽은 것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지만 죽기 전날까지 행실은 조선에 해악질만 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요즘 김건희 행태와 윤석열이 법적에서 김건희 여사지 김건희가 뭐냐고 버럭 한 것을 보면 건희는 확실히 난 년은

난년이다. 왜냐하면 윤석열과 결혼식에 과거 김명신 시절에 연애하다 차인 놈들이 40명인데 윤석열 김건희 청첩장을 받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축의금은 똑같이 50만 원으로 했다. 이유는 명신이가 오빠, 우리 사귀다 헤어지지만 이다음 내가 정말 결혼할 감의 남자가 생겨 청첩장 보내면 축의금은 50, 500, 5000, 5억인 거 알지? 했다. 모바일 청첩장을 받은 명신에게 차였던 40명 남자는 500만 원 보내기는 버거웠다. 50만 원을 보냈다. 이 말은 작가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김건희 새아빠 김충식의 오랜 내연녀 김인순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다른 특검은 몰라도 김건희 특검은 기간을 연장해서 김건희가 조선의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 출입기록 없이 방문한 것과 일부 언론과 작가가 술자리에서 들은 가짜 세한도를 놓고 진품 세한도를 일본 방문에 일본에 뇌물로 주었다.


이유는 차후 조선에 경험과 전쟁이 발발하면 비무장 재대에 자위대가 상륙바란 다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12.3 계엄 작전 암호명이 충성 8000이란다. 충성 8000은 일본 기미가요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것의 진위도 수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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