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15일이면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한문만 배우셨고 노년에 서당을 잠시 개설했으나 박정희 대통령 한글전용 정책에 서당을 접고 장손 뒷바라지만 하시다 돌아가셨다.
요즘 뜨는 영화 <서울의 봄> 이야기나 다음 광주에서 당시 용어로 광주사태 이야기도 흑석동 연못시장 복덕방 통신을 통해 그때 들었다.
솔직히 당시 나의 지상 목표는 공부 잘해 서울의대나 서울공대 가는 것이 할아버지에게 최고 효도로 생각했고 할아버지도 장손은 학비걱정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소 99마리가 1마리 될 때까지는 이상 없다고 하셨다.
12.12군사반란을 보시더니 저 대머리 놈이 세조보다 더한 놈이 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166일 만에 최규하를 하야 시켰다. 당시 할아버지 말씀은 최규하가 물러터져 문제라고 하셨다.
당신이나 장손이나 최규하나 공통점이 강원도 巖下有佛이라고 하시면서 장손은 절대로 정치하는 놈들 근처도 얼씬 마라고 이셨다.
이미 여기 브런치스토리에 할아버지와 일화는 가경선생 어록으로 많이 올렸는데 기일이 다가오니 더욱 그립다.
학교교육은 하니도 없이 한문서당 공부가 전부인데도 2023년에 생각해도 민주인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학생들 거수경례부터 목례나 서구식으로 손 흔들면서 하이~ 굿모닝! 하듯 수평의 인사를 해야지 엎드려 절하기나 배꼽인사는 빨리 없애야 한다고 하셨다. 아직도 엎드려 큰절이 대단한 미풍양속으로 여기는 세상이니 할아버지는 엄청 혁신적인 분이다. 아마도 살아계셨으면 인요한 보다 멋있는 위원장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