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함문평


이 글을 읽은 독자 중에는 왜 이런 글을 진작에 쓰지 비겁하게 전두환이 죽은 후에 쓰냐?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안 쓴 것이 이니라 썼는데 1983년부터 5년 동안 신문사 이름만 변경해 신춘문예에 보냈으나 뽑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는 신분이 장교라서 국가 권력을 비판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40년이 지나 나이 60에 현대시선 57호에 부적으로 등단했습니다. 과거 신춘문예에 보냈으나 탈락한 단편을 문학공원에서 777로 좋은 땅에서 백서로 발행했습니다.


연습장 맨 앞장에 작가훈을 적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작가다. 그러므로 그 책임의 중대함을 인식해서 죄수들 감방에서 반성하듯 진실하게 쓸 것이며 작가이기 이전에 강릉 함 씨 시조 함 혁의 54세 손이며 할아버지 재석 옹과 아버지 선호 이름에 먹칠하는 글은 안 쓴다.


남들은 서울 대방동 S중학교를 친일행위자가 세운학교라고 설립자 동상을 파버렸는데 작가의 양심을 걸고 친일 행위를 했지만 작가 함문평이 졸업한 학교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인세로 동상을 개인돈을 투입해 다시 세울 것이다.


그 동상은 내 개인 사유재산이기에 철거하려면 나의 동의하에 철거해야지 임의로 철거하면 지상물 손괴죄로 나에게 고소고발을 당할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학교 등하교에 매일 보고 졸업한 졸업하고 40년 후에 방문했는데 동상이 사라진 허탈감을 그거 동상 하나 파버렸다고 얼마나 정의로워졌다고 생각하나요? 정의로워졌다면 학폭이 왜 일어나고 학생이 선생을 왜 폭행하는 나라가 되었겠나.


친일행위자가 세운 백 년 넘은 중학교 출신은 군대서 상관이 영수증은 정품처리하고 물건은 B품으로 받아서 비자금 만들어 상납하라는 것을 교훈이 의에 살고 의에 죽자라서 거부했다.


70년도 안 도는 중학출신은 친일행위자 동상이 없어서 그런 부정에 가담하는가?


과거의 일을 오늘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글을 쓸 것입니다.


이 작가훈은 앞 프롤로그 초안이었으나 건방진 표현이라 뒤로 이동시켰습니다. 바람개비 돌아간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분은 행간에 숨어있는 의에 살고 의에 죽음이 주제라는 것을 눈치챘으리라 믿습니다.


브런치북으로 도전하여 바람개비 연작 장편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글 올릴 때마다 좋아요 눌러 격려해 주신 독자들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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