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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현타 왔을 때의 대처법

주 6일, 12시간 근무 직장과 집의 무한궤도에서 종종 현타가 온다.

by 로이아빠

주 6일 12시간 일한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현타가 종종 오고는 하는데

어느 순간 '자아'라는 것을 잃어버리는 듯 하다.


반복되는 일상과 반복되는 공간에서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간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 내가 숨쉬는 의미, 내가 돈을 버는 의미


때로는 죽지 않기 위해 일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직장과 일의 반복이 주 6일 이상 되면

일상의 소중함이라던지 삶의 의미라던지, 삶의 아름다움 혹은 예술 이런것들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이래서 예술이 존재하나 싶기도 하다.


무수히 반복되어지는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소중함 어떠한 '의미'들

그것을 포착하는게 예술이지 않나.


예술가는 깊은 관찰을 통해 무수한 무의미들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감정들 조차도 기계처럼 무뎌질 때 사실은 일하면서도 수없이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에 대한 대처법은 뭘까?

나는 이럴 때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주어진 '일'에 집중한다.


사람에게 집중하다 보면 느껴지지 않았던 아니, 사실 느꼈지만 반복속에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들, 상대방의 내면 이런 것들이 조금은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것들이 느껴질 때 비로소 일을 하는 의미가 생긴다.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스쳐지나가던 일들 속에서도

다른 부분이 있다. 똑같이 반복되는것 같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100% 똑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기분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집중하는 것에 따라 일하는 손동작이 미세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무의식속 규칙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미세하게 바로 나의 눈 앞에 일에 집중하다보면 사실을 불규칙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불규칙이 결국 삶의 '의미'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늘 '행복'하다면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행복하지 않을 때야 '행복'이 무엇인지 반대급부로 더욱 와닿게 된다.


늘 불행하다면 '불행'을 알까? 행복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아니면 덜 불행했던 시간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불행하다'라고 그 순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일상이 끝없이 반복되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말 정말 나의 시선을 멀리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정말 가까이에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사람과 사건들에 집중해야 하는것 같다.


이건 나만의 대처법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없던 의미가 툭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삶이 무의미하게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면 행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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