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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Nov 17. 2024

오드아이 1

자작시_63


그 아이는 오드아이로 태어났다

왼쪽은 회색과 하늘색 사이

오른쪽은 가을 볕뉘처럼 밝은 갈색

시선이 담긴 어떠한 빛깔도

쉽게 목격할 수는 없는 것이라

그 아이의 인생은 주목이었고

삶은 은신이었다


반쪽 세상은 잿빛과 물빛 사이

누군가의 밑창에 바스러지는

건조한 낙엽을 닮아가는 홍채

아무리 봐도 돌연변이였고

부모는 돌연변이 자식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 아이는 스스로 귀를 파는 방법보다

컬러렌즈를 끼는 방법을 배웠다


머리가 덜 자란 아이들은

대체로 배려심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그 아이에게 짝눈깔이라는 멸칭을 붙였고

담임으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은 후

짝눈깔은 그 아이의 등짝에서 비눗방울처럼

거뭇거뭇한 입가를 타고 퐁 퐁 퐁

아무래도 그렇게 퍼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눈동자가 예쁘다는 말을 들은 것은

열다섯 살 때였고

뒤돌아본 화자는 전학을 온 아이였다

전학생은 눈동자가 검고 동그란 아이

그 아이는 눈이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고

몹시 당황했고

고맙다는 인사 대신 뒤돌아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 후 전학생은

그 아이의 동공에 유일하게 담기는 사람이 되고

뜻이 없는 호의에 미련하게 매달리지 않기로

눈동자에 하늘과 땅이 모두 있다고 하는 말에

아무래도 사랑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똑같은 교복을 입은 채로

기척과 시선으로도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드아이로 태어난 그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왼쪽은 어둠을 밀어내고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녘

오른쪽은 햇빛이 끼얹어진

단풍나무의 어딘가


하늘이 담기고 땅이 담겼다면

두 눈동자는 모든 세상을 담은 것이 아닌가

사랑이나 마음

사랑은 과연 인간만이 하는 것인가

감정은 누구의 전유물인가

그러므로 그 아이는 어쨌든 사랑하기로 한다

절반으로 나누어진 세상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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