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외 4인 著, <음악소설집> [앤솔러지 단편소설집]
- 제목 : 음악소설집
- 저자 :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 출판사 : 프란츠(Franz)
제목처럼 '음악'을 주제로 한 다섯 편의 소설을 엮은 책이다. 모든 본편이 끝난 후에는 다섯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과 뒷이야기도 실려 있으니,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이 책을 구매하는 결정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는 차별점이었다.
음악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음악은 좋아하는 편이다. 출퇴근할 때마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케이팝 댄스곡이나 팝송을 듣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면서 등교했으니, 나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오래된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살아가는 일에 지쳤을 때 좋아하는 노래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틀어 두면 '음악은 가장 강력한 영혼의 치유제'라는 거창한 비유를 몸소 느낀다. 음악은 인간이 창조한 유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감히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이 만들어낸 어느 예술이 그러지 않겠느냐만은.
책을 읽으면서 음악이라는 요소에 담긴 기억과 감정과 장면, 인간의 희로애락 따위를 생각했다. 음악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이미 사람 마음에 가장 쉽게 들어와 가장 오래 눌러앉을 작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난데없이 밀려드는 향수나 그리움, 애절함과 슬픔, 경건한 마음 따위가 모두 내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음악은 그것들을 가장 빠르고 강하게 이끌어낸다.
그것은 기억도, 마음도, 삶도 된다
음악은 이미 우리 일상에 녹아들었다. 하루를 보내면서 듣는 음악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내가 직접 선택하여 트는 노래부터 지하철 도착을 알리는 노래, 길거리를 걷다 보면 온갖 매장에서 섞여 나오는 발라드와 댄스곡과 팝송, 거래처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홍보용 노래, 텔레비전 광고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노래, 게임을 켜면 나오는 시그니처 노래…… 음악은 내 인생을 구성하는 길목마다 존재한다.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를 오랜만에 들으면 저절로 그 시절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첫 번째 단편,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아픈 엄마를 간병하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된 사십 대 여성 '나(김은미)'의 이야기다. '나'는 '에코스'라는 사이트에서 영어권 국가의 현지인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중이다. 영어권 국가에 갈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될 때를 대비하여 뭐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며, 엄마 유품을 정리하느라 다리를 다쳐 기술을 배우기도 어렵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내린 결정이었다.
이 단편의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은 에코스의 인기 강사 중 하나인 '로버트', 그리고 '나'와 몇 년 헤어진 애인 '헌수'다. 로버트는 현재의 인물이고 헌수는 과거의 인물이다. 등장하는 음악은 킴 딜과 로버트 폴러드가 부른 <러브 허츠(Love Hurts)>다. 헌수와 연애하던 시절 함께 감상했던 음악으로, '나'는 이 노래의 가사 중 하나인 "암 영(I'm young)"을 "안녕"이라는 한국어로 잘못 들었던 적이 있는데 가수인 킴 딜이 재미 교포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 나도 이 책을 읽고 한 번 들어보았는데 얼핏 들으면 정말 "안녕"이라고 들린다. ―
이야기를 아우르는 가장 큰 주제는 음악에서 비롯된 '언어'다. 킴 딜이 재미 교포라고 생각했던 '나'는 "가수가 일부러 이 노래에 한국어를 넣은 것 같다"고, "그런 식으로 자기 뿌리에 대한 애정과 흔적을 드러낸 것 같다"고 설명했고 헌수는 킴 딜의 '킴(Kim)'은 한국 성씨가 아니라 '킴벌리(Kimberley)'의 약칭이라고 정정했다. 노래가 끝난 후 헌수는 "너에게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가지 말라", "보고 싶다"는 말보다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하듯 동의한다.
41p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 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안녕, 미안해, 고마워 같은 흔하고 일상적인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주고받는 평범한 인사인 데다가 고맙지 않은 일에도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하지 않은 일에도 미안하다고 마음 없는 사과를 건네는 일은 ― 특히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 이제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사실상 입버릇처럼 붙은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진짜 고마워야 할 일이나 나의 잘못이 명백해 사과해야 하는 일에는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해지니 참 모순적이다. 사람의 마음과 말을 가로막는 것은 자존심이 진심보다 더 위에 있다는 오만한 착각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훗날 내가 말을 점점 잃어버리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혼자가 된다면, 나는 어떤 말을 가장 그리워할까.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고, 가장 듣고 싶을까. 그건 유명한 연설가의 멋진 조언이나 아름답게 꾸며진 격려의 말보다는 그저 안녕이라는 인사, 그동안 잘 지냈냐는 안부, 고맙다는 말이나 잘 가라는 말처럼 흔하고 간단하고 일상적인 말이 될 것이다. 그런 말들이 번지르르한 말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다. 본연의 감정이 그만큼 깊게 깔려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그런 말들을 평범하게 주고받으며,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던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살 것이다. 단편의 주인공 '나'의 그리움과 외로움 또한 이 구절에서 헛헛하게 묻어 나온다.
47p
고향에서 엄마와 나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로 세계가 쪼그라들자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실수하고, 변명하고, 거짓말하고, 반문하고, 더러 표 안 나게 유혹하고, 티 나게 매혹당하고, 긍정하고, 의심하고, 호응하는 사회적 몸짓들이.
너무 많은 말은 분명 독이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면 그 말이 침묵보다는 나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누구와 이야기하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행운인가. 나의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이에 그 시간들은 홀연히 사라지고 아침 안개처럼 완전히 흩어져 버릴 것을 안다. 그러니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나의 말이 가장 조심성을 가지고, 또 가장 많이 밖으로 나가야 할 때다.
'나'와 로버트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게 된다. 금전을 지불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이야기할 수 있는, 친밀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한없이 비즈니스적인 관계이지만 분명 '나'에게 로버트는 잠시나마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오가는 대화 하나 없이 고립된 세상이야말로 가장 비참하고 황량한 불모지가 아니겠는가.
헌수는 '나'와 헤어지고 이 년 뒤에 만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라는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45p)라고 말하며 사과한다. 이별을 맞이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그날의 기억을 내내 머릿속에 간직했던 헌수의 마음도, 그런 헌수가 두서없지만 진심을 담아 늘어놓은 취기 섞인 말도 슬펐다.
배려심 없이 마구잡이로 말하는 사람은 그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가 낯선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말의 힘을 배운 적이 없어서, 혹은 배울 의지조차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자기 의지로 다정한 말과 온기를 거부했을 사람은 없다. 눈앞에 날아다니는 말들을 열심히 주워 배울 수밖에 없는 아이의 처지는 나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녕, 고마워, 미안해 같은 단순하고 뻔한 말들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언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 단편은 김연수 작가의 <수면 위로>이며, 이 제목은 중의적인 뜻이 담겨 있다고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다. 작품은 '기진'이라는 인물이 죽었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아직 기진이 살아 있던 시절"이 바로 맨 처음 서두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몇 달 동안 무기력하고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고 있다. 기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임이 선명하게 다가와 호흡이 가빠올 때마다 '나'는 유튜브에 호흡하는 법을 검색하여 영상을 보곤 했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유주'라는 유튜버를 발견해 그의 채널을 시청하게 된다.
유주는 공황장애와 그로 인해 찾아오는 간헐적인 호흡곤란을 겪고 있다. 그는 숨을 쉬기 위해서는 숨을 쉰다는 걸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찍어 올리곤 했다. '나'는 정말로 나무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숨을 쉰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효과를 보았고, 그렇게 유주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한다.
유주는 아무런 계획도 금전도 없이 여행을 떠나, 되도록이면 일해서 숙식과 여비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용감한 유튜버이기도 하다. 유주의 과거 영상을 보던 중 '나'는 우연히 그 영상 속에서 기진을 발견한다. 오므라이스가 유명한 중국집에 간 유주에게 그가 "우리 얘기 좀 할래요?"라고 말을 건 것이다. 유주도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을 경계했으나 이내 기진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간다.
기진과 함께였던 시절, 어느 노천극장에서 소규모 현악 앙상블과 협연한 피아니스트의 무대를 함께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기진은 앙코르곡이었던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어 졌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와 함께 먹은 음식이 오므라이스였고, 기진은 딱히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너무 맛있다고 말해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진은 유주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왜 어머니가 이 오므라이스를 먹고 그렇게 맛있다고 한 건지 알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앞뒤 사정까지 이야기하자니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하지만 기진은 시간여행을 하듯이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그로 인해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은 기진이 살아가는 일에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긋지긋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말하곤 했던 어머니처럼. 기진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사고사인지, 병사인지, 돌연사인지, 자살 혹은 타살인지 책 바깥에 있는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나 혼자서 상상한 것은, 잔잔하고 평온한 <달빛>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달처럼 동그랗고 샛노란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기진은, 언젠가 이 세상을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94p
"오므라이스는 맛있고 맛없지 않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지 않고 맛없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고 맛없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태어난 일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기쁨과 고통이 한 줄기 돋아나고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삶이란 원래 시시하고 단조롭고 고단하고 덧없는 나날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일생이 아닌가. 대다수는 일상의 반복이고 사소한 행운보다는 굵직한 불운이 잦다. 그리하여 우울하고 지루한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은 탓에, 살아가는 일이란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침잠하는 과정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바닥에는 나의 탄생 이전에 있었던 어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추하고 보잘것없는 모습과 날카로운 악의가 같은 인간을 향한 신뢰와 애정을 한 가닥 꺾어놓는 탓에 덩달아 삶의 이욕마저 떨어지곤 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애초부터 이해하지 못할 모습으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렇지도, 그렇지 않지도, 그렇지 않으면서 그렇고, 그러면서도 그렇지 않고, 그런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괴이한 모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기쁘면서도 슬플 수 있고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 있는 마음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모순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가해를 아주 조금은 덜 증오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 번째 단편은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로, 제목처럼 자장가에 관한 이야기다. 화자인 '나'는 고등학생 때 차에 치여 죽었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는 않았고 혼자 남은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엄마의 꿈속에 들어가 내가 아직 여기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꿈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언젠가 사라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라지는 방법도 알 수 없는 현실이다.
'나'의 생일날 엄마는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고, '나'가 좋아하던 매운 등갈비찜도 만든다. 컵에 콜라를 따르며 엄마는 "생일 축하해"라고 말한다. 책의 바깥에 있는 내가 느끼기에 '나'의 빈자리는 분명 공허하지만 엄마가 크게 슬퍼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큰 슬픔과 그리움과 외로움이 확 터지지 않고 덜 넘어간 물처럼 그저 목울대를 꼴딱거리며 머무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학교 앞에서 꽈배기 분식이라는 간판명의 분식집을 운영하는 '꽈배기 이모'와 친구다. 엄마는 분식집을 찾아갔고 꽈배기 이모가 벽이 아닌 천장에 처음으로 낙서한 사람이 '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애 꿈을 꾸고 싶어서 나는 잠을 자. 어떤 날은 종일 자기도 해. 그런데도 한 번도 꿈속에 나오질 않아. 그게 무서워."(115p)라고 말하며 운다.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이 시근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사람이 꿈에 나오지 않기를 바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꿈에서도 슬플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꿈에서 깨어난 후에 더 슬플 것이다. 꿈속에서는 죽은 게 꿈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했는데 막상 현실로 돌아오면 죽지 않은 게 꿈이었던 거니까. 사랑하던 사람은 영영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났고 나는 그저 그리움에 잠겨 있어야 하니까.
그래도 '나'가 영영 외로운 건 아니다. 어느 날 '나'처럼 교복을 입은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김지구'와 '이본' 중 하나인데, 무엇이 진짜 이름이냐고 묻자 그 아이는 그저 '지구본'이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나'는 지구본으로부터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전수받는다. 그리고 엄마의 꿈속에 들어가서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 어린 시절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었던 것처럼 어린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 준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빈다. 이렇게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작년이었는지 재작년이었는지, 내 생일날에 엄마가 편지를 써 주었다. 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엄마가 나에게 받은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잘해 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엄마의 편지가 떠올랐다. 엄마는 7월의 더운 날에 태어난 나에게 고생 많았다고 편지에 썼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만약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난다면 엄마가 좋아했다던 눈깔사탕이나 하드 아이스크림을 어린 엄마의 품에 한가득 안겨 주고 싶다. ― 그리고 이왕이면 결혼을 좀 늦게 하라고도 말하고 싶다. ―
네 번째 단편, 은희경 작가의 <웨더링>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의 영어 제목 'Weathering with You'에서 땄다. 책에서 유일하게 화자가 1인칭 시점의 '나'가 아닌 작품이기도 하다. 한때 클래식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클래식 음악 행사에서 진행자로 일하는 음악 해설가 '기욱'은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지방에 있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탄다. 실수로 기차표를 다음 날로 잘못 예매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역방향의 가장 맨 앞 좌석을 급하게 예매한다. 이 단편은 그 역방향 자리에서 마주하게 된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말한 기욱, 기욱의 옆자리에 앉은 노인, 기욱의 앞에 앉은 '인선'과 '준희'가 바로 그 네 사람이다. 인선과 준희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선후배 사이로 회사 동료가 부친상을 당해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었다. 그 후배와 다른 부서로 옮긴 지 오래된 인선이 굳이 준희와 장례식장 참석에 동행한 이유는, 바로 헤어진 옛 연인 또한 부친상을 당한 후배와 같은 팀이었으니 장례식장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와 연인이 되기 전, 함께 떠났던 뉴욕 출장에서 인선은 그와 함께 영국의 작곡가인 '구스타브 홀스트'가 점성술에 영향을 받아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 <행성>의 음악회를 보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연인이 되어 있었다. 아직 옛 연인에게 미련이 남은 인선은 별자리점을 상당히 신뢰한다. 겉보기에는 세속적인 사람이 때로는 허무맹랑한 미신에 더 강한 믿음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인선과 나란히 앉은 후배 준희는, 내 생각에는 아마 우울증을 겪고 있다.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작품 초반부에 "빈소에 다녀오라는 팀장의 문자는 준희가 약을 처방받으려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왔다. 방금 상담 의사에게서 되도록 밝은 생각을 하고 즐거운 자리에 자주 가라는 충고를 들은 참이었다."(136p)라고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준희는 이야기 속에서 별다른 특색을 가지지 않은 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야기 속에서 나와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준희라고 생각했다. 특히 인상적인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풍경을 바라볼 때는 그 순간에 완전히 도취되곤 한다는 점이 그랬다. 나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의 <vivi>를 꼭 재생하고, 어두워지는 저녁에 듣는 <Something Just Like This>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에는 인디 밴드의 노래나 몽환적인 팝송을 들으면서 그 분위기와 풍경에 심취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기욱의 옆에 앉은 노인인데, <행성>의 악보를 탁자에 펼쳐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노인은 기욱, 인선, 준희 세 사람의 호기심과 시선을 자연스럽게 모은다. 특히 기욱은 노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억양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음악 교사를 떠올린다. 음악에 대한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무식한 촌것들'이라고 부르며 학생들의 뺨을 때리는 등 괴팍하고 이상한 성격이었던 음악 교사. 물론 노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지만 그가 기욱의 음악 교사가 맞는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의 정체보다는 기욱의 음악 교사가 학생들에게 했던, "언어도 마찬가지야. 사용할 당시에만 맞는 말이고 결국은 변하게 돼 있어. 맞았던 답이 틀려지는 거지. 명심해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음악뿐이야."(148p)라는 말에 담긴 사연이 더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겪었던 모든 지식과 원칙들이 시간이 흐르며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회의감이라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불변하리라 믿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낯을 바꾸고 변색하고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좌절하기라도 했던 걸까.
세상에 과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건 '모든 것은 언젠가 변하거나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생명은 죽고 세상은 저물고 언젠가는 지구도 절멸하는 순간이 올 테니 그것이야말로 불변하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멀리 나가지 않고 내가 죽을 때까지만, 혹은 죽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한다. 수백 년 동안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예술이 그렇고, 수십만 년 동안 내려온 역사와 생명의 흔적은 그 자체로 불변의 진실이다. 나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도 지금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 나라는 사람이 이 시대에 살아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거짓이 될 수 없는 진실이다.
다섯 번째 단편은 편혜영 작가의 <초록 스웨터>이다. 화자인 '나(경주)'가 엄마 '성주'의 죽음 이후, 엄마의 오랜 친구였던 이모 '영주'와 함께 엄마의 또 다른 친구 '나주'를 만나러 간다. 성주와 영주와 나주는 중학교 동창으로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잠시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영주의 노력으로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는 사이였다. 영주는 나주가 성주로부터 오백만 원을 빌렸고 그 돈을 갚지 않았기에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나'에게 설명했는데, 그건 그저 거짓말이나 구실에 불과했고 사실은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옛 친구 나주를 다시 만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영주와 나주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을 깨닫지만 큰 불만이나 배신감을 가지지는 않는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완성되지 못한 초록 스웨터의 밑단을 발견했고 그것을 나주의 집까지 가지고 온다. 영주와 나주는 둘 다 그 스웨터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도안에 표시된 사이즈는 체격 있는 남자에게나 맞을 정도로 커서 둘 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는 못한다. 그 스웨터는 그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다. 엄마 성주의 손과 '나'의 손, 기숙사 룸메이트의 손, 전 남자친구의 손, 영주의 손을 거쳐서 조금씩 모양을 잡고 완성되어 간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이 남은 이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인데, 그래서 초록 스웨터는 많은 감정과 사연이 담긴 상징물과도 같다. 사랑, 후회, 죄책감, 미련, 슬픔, 그리고 다시 마주한 온기와 그리움까지 초록색 실과 함께 촘촘하게 뜨개질이 된 것만 같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에 '음악'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건가 싶은데, 그 음악은 바로 오래전 성주와 영주와 나주 셋이서 노래방에 갔을 때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다.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라디오가 없어 그 속에 녹음된 목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그 테이프는 '나'에게로 넘어온다. 언젠가 테이프를 재생했을 때 세상을 떠난 엄마의 앳된 노랫소리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 또한 가족이나 친구들의 사진은 몇 장 있어도 영상은 없다. 먼 훗날 그들의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하더라도 목소리는 까먹어버릴지도 모른다. 조만간 영상이라도 하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노래방에서 열심히 부르는 노래를 녹음하거나.
문장 수집
69p
우리는 이 세계의 극히 일부분만을 경험한다. 그건 이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게 진실이다. [ 김연수 - 수면 위로 中 ]
구태여 진실을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될수록 준비되지 않은 우리는 정신이 나가버릴지도 모른다. 이토록 넓고 기이하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괴상한 세계의 극히 일부만을 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그나마 일부분이라도 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88p
나는 왜 사는 걸까? 애당초 행복을 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결국 내게 행복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만 알게 됐네. 인생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한다면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 김연수 - 수면 위로 中 ]
사는 이유는 태어났기 때문이고,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대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다. 극적인 행복이나 만족감은 기대하지 않는다. 사소하지만 분명한 즐거움과 기쁨을 자꾸 찾아다니거나, 어쩌다가 그것들이 내게 오면 짧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즐기고 잘 대해주자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것이 내 삶에 대한 예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생이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면 확실히 죽는 게 낫다. 하지만 그걸 확신할 수가 없어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 같다.
164p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갈 때 거치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 자신이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 같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록으로 물든 먼 들판과 숲, 그것들이 빗줄기의 베일에 덮여서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모습이 묘하게도 준희로 하여금 다른 차원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은희경 - 웨더링 中 ]
내가 머무르는 세상이 어떤 별세계와 잠시나마 연결된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눈앞의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꼭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이 결코 유일한 차원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죽음으로 넘어갈 때 나의 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다면, 부디 내가 두고 온 그림자에 너무 많은 미련이나 원망이 담겨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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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밀했던 존재가 한순간 낯을 바꿔 경멸 섞인 무관심을 드러내자 나는 금세 위축되었다. 무엇을 하든 나를 탓하고 의심했다. 한때 사랑했던 것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 편혜영 - 초록 스웨터 中 ]
한국의 인디밴드 '너드커넥션'의 노래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삶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죠 내가 많이 사랑했던 게 나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더니 나를 매달고 싶대요"라는 가사가 있는데, 한때는 사랑했었고 가까웠었고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관계가 그로 인해 가장 냉랭하고 지긋지긋한 사이로 뒤집어진다는 게 애석하고도 슬프다. 사랑했던 만큼 미워지고, 잘 아는 만큼 공격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이다. 어째서 애정이 식으면 그대로 아름답게 사라지지 않고 경멸이나 거부감처럼 불유쾌한 결의 찌꺼기를 남기고 가는 것일까? 그냥 불꽃놀이를 예쁘게 보듯이, 허공에서 뿌연 연기와 함께 사라지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불꽃놀이조차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 뒤에는 항상 무수한 쓰레기와 매캐한 냄새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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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는 또 방향이 있어요. 그 위에 올라탄 채로 인연이 이어지고 풀어지면서 흘러가는 게 삶이고, 그러는 동안에 일어나는 짧은 멈춤과 얽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럼에도 떠나보내는 일. [ 은희경 작가 인터뷰 中 ]
삶이 정말 비유하듯이 물결처럼 유유히 흘러가면 좋으련만…… 사실 부드럽게 흘러가는 건 시간일 뿐이다. 나는 그 물결에서 허우적거리는 피라미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또 하루가 넘어가고 내가 살아낸 나날은 차곡차곡 쌓이는데, 지나간 날들은 대부분 기억에서 사라지고 나는 몇 년 전 그대로 그저 붙박여 있는 느낌이다. 요구하는 것과 책임져야 할 일만 늘어나고 여전히 정신은 어리숙한 사람 같다. 하지만 어쨌든 할 일은 해야 하고, 어영부영 헤엄치면서도 악착같이 길을 찾기보다는 그저 물살에 몸을 맡겨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삶이란 그저 그런 것. 추하고 초라하지만 어쩔 수 없이 유일한 것…….
이 책을 읽으며 음악이 나를 살렸던 날, 음악으로 인해 살아남았던 날들을 떠올렸다. 지치고 슬프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음악으로 달랬던 순간들이 모이면 나의 인생에서 '음악'이라는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제가끔 다른 음정과 박자 속에서 살아가니 삶은 하나의 거대한 악보에 비유할 수도 있다. 수십 년 동안 연주해야 하는 악보. 어쩌면 마침표가 아닌 쉼표에서 완전히 끝나버릴 수도 있는 음악.
더 많은 음악이 궁금해진다. 아직 내가 모르는 음악이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보물 창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