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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진실한 삶을 위하여

톰 펠턴 著, <마법 지팡이 너머의 세계> [에세이]

by 심야사 Feb 26.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 제목 : 마법 지팡이 너머의 세계

- 저자 : 톰 펠턴 / 옮긴이 : 심연희

- 출판사 : (주)문학수첩



나는 불과 며칠 전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화를 시청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해서 몰아보기를 한 게 아니라, 기다림을 싫어하고 여유가 부족한 성정 탓에 자꾸 10초 건너뛰기를 누르면서 중간중간 이가 빠진 채로 영화를 보았다. 어쨌든 굵직한 이야기와 흐름은 얼추 안다. 주인공이자 마법사인 소년 해리 포터가 마법세계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열 살 전후의 어린 나이에 마법세계의 기숙사 학교인 호그와트로 가게 되고, 친구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위험을 극복하고 해결하면서 종국에는 볼드모트를 무찌르고 평화를 가지고 오는…… 그런 것들은 다 알고 있다. ― 어째서인지 해리 포터가 훗날 친구인 론 위즐리의 여동생 지니 위즐리와 이어진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해리 포터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작품이다. 소설도 영화도 모두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만큼 해리 포터를 인생 최고의 걸작이자 즐거운 추억으로 품은 어른들, 지금 순간에도 해리 포터를 읽고 보면서 꿈과 희망에 부풀어 오르는 아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작품'의 영향력이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회고록이자 자서전의 저자는 바로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역이자 기숙사 슬리데린의 상징, 백금발 소년 드레이코 말포이를 연기한 배우 '톰 펠턴'이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말포이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마법사 순혈주의 귀족 가문에서 하나뿐인 자식으로 태어나 오만불손하고 안하무인하게 자란 순혈주의자 겸 머글차별주의자, 후반으로 가서는 어느 정도 갱생하며 이윽고 순혈주의에서 벗어나는 성장형 캐릭터 정도의 인상이었다.


애초에 해리 포터 시리즈에 열광하면서 자란 사람도 아닌지라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는 않다. 지금은 원작 소설의 개정판을 이북으로 읽는 중인데, 영화와는 전개가 많이 다른 부분도 있고 등장인물도 많아서 헷갈린다. 그러나 분명 재미는 있다. 며칠 전에는 소설을 집중해서 읽다가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가서, 반대편으로 돌아가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귀가했던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책의 캐치프레이즈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책의 앞표지에 쓰인 문구는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머글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이다. 만약 내가 해리 포터의 팬이고 영화 속 주조연 배우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함께 자란 사람이었다면, 이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드레이코 말포이를 넘어서 영국인이자 배우이자 평범한 인간 '톰 펠턴'의 인생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배우 생활을 비롯한 성장 과정부터 <해리 포터 시리즈>의 뒷이야기, 오랜 시간 방황하다가 비로소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 진솔한 고백까지 담겨 있으니, 해리 포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물론 팬들은 내가 이 독서감상문을 쓰기 한참 전에 이 책을 읽었겠지만. ―




드레이코 말포이와 톰 펠턴


펠턴은 책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연 3인방을 향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의외로 펠턴이 연기한 말포이가 영화에 출연하는 장면을 모두 합치면 겨우 31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촬영한 시간은 출연한 시간의 수백 배에 달하겠지만 '말포이'라는 이름이 가진 임팩트에 비하면 말포이의 등장 자체는 영화 전체 상영 시간에 비해 매우 적다. 이는 펠턴이 세 명의 주연 배우들에 비해 '평범한 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 역의 다니엘 래드클리프,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의 엠마 왓슨, 론 위즐리 역의 루퍼트 그린트는 영화를 촬영하던 동안 삶의 우선순위가 <해리 포터 시리즈>였다고 펠턴은 말한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주인공인 데다가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배우가 곧 캐릭터 자체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말았으니, 좋든 싫든 배우들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캐릭터의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아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다. 펠턴은 기껏해야 아홉 살에서 열한 살 정도에 불과했던 어린아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된 촬영, 그보다 더욱 고되었을 사람들의 인식과 유명세에 관해 이야기한다. 비관적인 이야기는 아닌데 글로 짧게 설명하자니 어렵다. 그래도 너무 어린 시절에 대중에게 모든 게 알려지고 만 아역 배우들의 고충을 우리가 아예 모르고 사는 건 아니니까.


사랑 넘치는 가정에서 사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펠턴은 어린 시절부터 셋이나 되는 형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형들은 펠턴이 유명하고 대단한 배우가 아니라 멍청하고 보잘것없는 머저리라는 사실을 언제나 상기시켜 주었기에, 펠턴은 영화 속 말포이와 달리 조금 건방지긴 해도 자기 분수는 잘 아는 소년이었다. 펠턴이 맡은 드레이코 말포이는 주인공 3인방과 더불어 큰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지만 분량은 그만큼 많지 않아서 한 주를 촬영하면 한 주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어쨌든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영화 촬영장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게 예사로운 삶은 아니었기에 펠턴은 '평범한 생활'을 향한 갈증을 느낀다.


책의 전반에 걸쳐 펠턴은 '평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펠턴은 낚시, 음악, 자동차,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훨씬 중요했으며 <해리 포터 시리즈>는 자신이 사랑하는 순위에서 네다섯 번째 정도에 있었다고 한다. 확실히 책을 읽다 보면 펠턴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중에는 성인 영화 DVD를 훔치려다 걸리거나, 대마초를 피우다가 경찰에게 발각되는 등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에 해당하는 사건도 있다. 어떻게든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십 대를 보내고 싶어 했었던 펠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펠턴은 자신이 엇나가거나 방황했던 시절을 부끄럽게 여기며 회고한다. 펠턴에게 화려하고 바쁜 톱스타의 삶은 애초에 잘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펠턴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이하 LA)에서 겪었던 일이 나온다. 이 대목은 회고록이라기보다는 거의 소설처럼 보이고, 더 나아가면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하다. 그만큼 나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비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다. LA에서 펠턴은 영국과 달리 스타 배우로서 굉장한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 지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가와 펠턴에게 아는 척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공짜로 명품 옷을 받았고, BMW사의 VIP 고객이 되어 원하는 기간만큼 다양한 차를 대여받을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이 길게 줄을 선 클럽에서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펠턴은 점차 그 화려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을 자신의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그동안 펠턴은 자신이 특별하거나 우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고, 어쩌다가 그런 허풍이 생기려고 하면 자기 자신을 다그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LA에서 펠턴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톱스타였고, 옆에서 펠턴을 걷어차거나 "너는 멍청한 머저리야!"라고 말해 주는 형들도 없었다. 펠턴은 그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얼마 간은 굉장히 만족하며 지냈지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톰 펠턴은 화려한 스타로서의 삶을 잘 차려입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삶을 그리워했다. 첫째 크리스 형과 호수에서 했던 낚시, 셋째 해시 형과 미국 애니메이션 <비비스와 버트헤드>를 봤던 일, 둘째 징크 형과 음악을 만들던 때, 친구들과 공원 벤치에서 몰래 대마초를 피웠던 일, 한가한 시간에 랩을 들으며 보낼 수 있었던 시절,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과 평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때,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펠턴은 이미 점점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 능력 내지는 의견을 갖추는 능력마저도 외주에 맡겨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자기 자신에게마저 거리감을 느꼈던 펠턴은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인간적인 교류와 진정성을 간절히 원한 끝에 그것을 '바니스 비너리'라는 술집에서 찾게 된다. 그곳의 바텐더와 손님들은 톰 펠턴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드레이코 말포이를 연기한 유명 배우라는 사실을 몰랐고, 알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것은 펠턴에게 큰 기쁨이자 해방감과도 같았을 것이다. 위험한 현실에서 안전한 이상으로 도피한 것처럼.


이십 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바니스 비너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펠턴이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잃어버린 모습을 조금씩 찾아갔다면 좋았겠지만, 여러모로 현실이 힘들고 벅찬 상황에 접한 술은 점점 펠턴을 알코올중독자로 만들었다. 정도는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펠턴 자신도 음주를 자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펠턴은 연인이었던 제이드와 매니저들의 판단으로 인해 '개입 절차'를 밟게 된다. 개입 절차(Intervention)란 각종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이 전문 재활 시설에 입소하도록 주변 가족과 지인들이 손을 쓰는 절차로, 펠턴은 자신이 음주와 약물 남용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분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기분으로 재활센터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탈출한다. 물론 치료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이 탈출극을 어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했다. 펠턴은 재활센터를 빠져나와 차가 지나가면 급하게 숨으면서 고속도로를 걸었고, 해변을 몇 시간 동안 걸었고, 몸도 마음도 완전히 기진맥진하던 중에 주유소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들어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라이터를 찾았다. 그곳에 있었던 나이 든 남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라이터도 없었고, 대신 그곳에서 물을 마신 펠턴은 그에게서 20달러를 받았다. 재활센터와 아주 먼 곳에 있는 웨스트 할리우드로 간다고 말한 펠턴에게 그는 "나는 부자가 아닙니다. 돈도 많지 않죠. 큰 집도 없습니다. 멋진 차도 없고요. 하지만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고, 손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진 게 많은 사람입니다. 가진 게 아주 많은 사람이죠. 선생님은 가진 게 많은 분입니까?"(355p)라고 질문했고, 펠턴은 속으로 '아뇨. 저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과는 달라요.'라고 생각했다. 다시 와서 돈을 갚겠다는 펠턴의 말에도 그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분에게 주세요"라는 말로 펠턴을 배웅한다. 다시 킬로미터를 걸어서 나타난 다른 주유소에서 펠턴은 덩치가 크고 젊은 흑인의 호의로 바니스 비너리까지 차를 타고 무사히 도착한다. 그는 돈도 받지 않고 떠났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바니스 비너리에 도착한 펠턴은, 지난 48시간 동안 자신이 술에 손을 대기는커녕 마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술을 마시는 대신 술집 경호원 닉의 집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불안을 쏟아낸 펠턴은 너무나 두려웠기에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이제 '제이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제이드는 해리 포터의 4편 <불의 잔>을 촬영할 때 대연회장에 들어왔던 엑스트라이자 스턴트 코디네이터의 조수였고, 펠턴과는 오랫동안 연인 사이였으며 그만큼 펠턴도 제이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점차 제이드에게 심하게 의존하게 된 나머지 펠턴은 자신의 행복과 의견을 모두 제이드에게 맡겨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펠턴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그리고 제이드에게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해 이후 제이드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며, 그렇게 펠턴과 제이드의 관계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 이후 펠턴은 스스로 재활을 위해 시설에 들어갔다. 맨 처음 지냈던 시설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펠턴은 그곳에서 함께 지냈던, 비슷하게 약물이나 알코올중독을 겪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유대감을 느꼈다. 체계적이고 엄격한 규칙을 지키고, 다양한 수업과 치료를 받고, 베니스 비치에 있는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는 푸드 트럭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펠턴은 서서히 마음을 회복했다. 다만 그곳에서도 여러 사건이 있었고, 펠턴은 시설의 규칙을 어긴 탓에 그곳에서 더는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갈피를 잡지 못했던 펠턴은 매주 목요일마다 푸드 트럭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배우이자 성우, 동물 및 환경보호 분야 활동가로 일했던 옛 친구 그레그 사이프스를 만나 그의 집에서 몇 달 동안 함께 생활했다. 그레그의 반려건 윙맨과 산책하고, 그레그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해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주우면서, 놀라울 만큼 친절하고 너그럽고 이해심이 깊은 그레그와 함께 지낸 펠턴은 서른한 살에 '베니스 비치에서 나만의 허름한 집을 찾아 삶을 다시 시작해 보자'고 다짐했다. 윌로우라는 이름의 래브라도 유기견을 입양하고 자신이 맡고 싶은 배역을 골라 연기했으며, 다시 인생의 결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몇 년 후에 삶이 무감각한 상태가 도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마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이 펠턴을 찾아온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펠턴은 "다들 인생의 특정 단계에서 신체 건강의 문제를 경험하는 것처럼, 정신 건강의 문제 역시 경험하게 된다. 이는 부끄러워할 문제도, 나약함의 징후도 아니다."(375p)라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 건강의 문제나 질환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주제이고, 반드시 숨겨야 하는 약점이자 치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펠턴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지면에 실었다고 밝혔다.



375~376p

지금까지도 나는 나의 여러 모습 중 어떤 모습으로 깨어나 하루를 보낼지 알 수가 없다. 양치질을 하거나 수건을 거는 등의 아주 소소한 행동이나, 차와 커피 중 뭘 마셔야 할지 정하는 아주 사소한 행위에도 압도당해 감정이 널뛸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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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p

날씨가 항상 변하듯, 슬픔과 행복이라는 감정은 정신상으로 동일한 상영 시간을 갖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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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코 말포이에서 시작되어 톰 펠턴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크고 작은 울림을 느꼈다. 마법사 드레이코 말포이 너머 머글 톰 펠턴의 인생은 상상 이상으로 파란만장했지만, 펠턴은 자신을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평범한 일상을 추구한다. 검소하고 참된 느낌이랄까. 말포이의 재수 없고 시건방진 모습과는 달리 톰 펠턴은 사교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성격이라서 ― 몇몇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글도 상당히 잘 쓴다. ― 그 사이 간극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본인이 쓴 책 한 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이 책의 서문은 <해리 포터 시리즈> 내내 헤르미온느로 살았던 배우 엠마 왓슨이 썼다. 엠마 왓슨이 톰 펠턴을 짝사랑했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며 두 사람의 열애설도 여러 번 제기되었을 정도이지만, 두 사람은 연애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11p

우정 없이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내용이 그 주제다. 우정은 인간 존재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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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서문에서 펠턴을 향한 우정과 사랑, 존경심을 이야기한다. "톰은 언제나 톰으로 존재하며, 스위치를 켠 것처럼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엠마는 지금껏 사람들로부터 펠턴과 '키스한 적이 있지 않냐'거나 '둘이 뭔가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자신과 펠턴 사이는 그보다 훨씬 깊으며 엠마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수한 사랑, 영혼의 동반자, 항상 서로의 편이 되어 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엠마 왓슨과 톰 펠턴이 진짜로 연인이었다면 되레 이 말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사랑보다는 우정에 더 반응하는 사람이니까. ― 우정은 사랑의 가장 완벽한 형태라는 생각도 약간이지만 가지고 있다. ― 엠마와 펠턴은 분명 서로를 사랑한다. 그 사랑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나 '연애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보다 거시적이고 인간적이고 궁극적인 사랑, 우정과 신뢰와 유대감으로 형성되어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을 마음인 것이다.


책의 한 챕터는 엠마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엠마뿐만 아니라 다니엘과 루퍼트의 이야기, 영화 속에서 말포이 곁에 내내 붙어 다니는 '빈센트 크래브' 역의 배우 제이미 웨일렛과 '그레고리 고일' 역의 배우 조슈아 허드먼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 외에 해리 포터를 촬영하면서 만난 대선배 배우들과 친구처럼 지냈던 동료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들을 향한 우정과 존경심은 책의 중반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엠마에 관한 이야기 역시도 그렇다.


엠마와 펠턴의 처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오디션 현장에서 펠턴이 붐 마이크를 처음 보았던 엠마의 질문에 잘난 체하듯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고, 영화 촬영 때 펠턴이 엠마에게 상처를 준 일있었다. 영화 촬영 초창기에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아이들은 실제로 파벌이 존재하여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와중에 당시 톰 펠턴은 섬세함이 부족한 아이였던 데다가 교육을 잘 받은 좋은 집안 출신이었던 주인공 배우들과 확연히 차이 나는 성장 배경과 상황을 가진 ― 펠턴의 집은 화목했지만 경제적 형편이 좋지는 않았다. ― 자신을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춘기 특유의 자기 과시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늘 함께 다니는 역할이었던 제이미, 조시(조슈아)와 친했던 펠턴은 한가한 시간에 그들과 함께 힙합 가수들의 랩 음악을 듣곤 했는데, 어느 날 아홉 살이었던 엠마가 점심시간에 소규모 댄스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이스트 코스트 랩과 웨스트 코스트 랩 중에 어느 쪽이 최고인지 토론할 시간에 어린 여자아이의 댄스 공연을 보는 게 지루하고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엠마의 춤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펠턴은 자신과 제이미, 조시가 재수 없는 아이들이라서 그 상황이 민망하다는 생각과 상대를 열받게 만드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에 웃었다고 자백했다. 속상해하는 엠마를 보며 못된 짓을 했다는 느낌을 받은 펠턴은 이후 분장사로부터 "엠마가 무척 속상해하니 가서 사과하라"는 말을 듣고 엠마에게 사과했다. 엠마는 사과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모두가 다시 제각기 할 일을 계속해 나갔지만, 그건 펠턴에게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도 떠올리면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한다.


펠턴은 당시 아홉 살이었던 엠마가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상황에 대처해야 했고,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앞길을 헤쳐나가야 했던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엠마는 주인공 중에서 가장 어렸고 유일한 여자아이였으며 영화 촬영장에 온 것도 처음이었다. 펠턴은 "엠마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바보 같은 장난과 사춘기 전 남자애들이 할 법한 말을 감당하며 '남자애들의 유머'에 둘러싸여 지냈다. 엠마 본인도 남자애들의 유머를 만만치 않게 발휘하고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까불기도 했으나 그런 분위기에서 지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엠마가 계속 심하게 겪어야 했던 압박은 그저 멍청한 남자애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에 발탁된 그날부터 어른처럼 대접받으며 평범한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여자는 대중매체는 물론 그 너머에서도 부당하게 성적 대상화가 되며 외모 품평을 당하고, 자기주장을 세게 내비치는 모습만 보여도 남자애라면 겪지 않을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만약 누군가가 그런 미래를 미리 보고 엠마에게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부터 앞으로 영원히 해리 포터가 계속 함께한다는 걸, 다시는 벗어나지 못하고 쫓기게 된다는 걸 알려 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걸 읽으니 엠마가 펠턴을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누구든지 타인의 고충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 외에도 <아즈카반의 죄수>를 촬영할 때의 일이나 호그와트 바깥에서 만났던 일 등 엠마 왓슨과 톰 펠턴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펠턴이 십수 년 후에 알코올중독으로 들어간 재활시설에는 탁구대도 있었는데, 그때 펠턴은 엠마가 탁구를 치며 놀았던 해리 포터 스튜디오의 휴게용 천막이 떠올랐으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생각하며 엠마를 참 많이 떠올렸다고 한다. 그 글은 내게도 슬픈 목소리로 들렸다. 만약 영화였다면 아마 감수성 풍부한 관객 몇몇은 이 장면에서 왈칵 눈물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싶다.


엠마 말마따나 펠턴은 솔직한 사람이다. 솔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투명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일어서는 사람이다. 넘어지는 게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자기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발전시키는 사람. 비록 그 과정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톰 펠턴은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와 톰 펠턴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르지만.


어쨌든 나는 나로서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내가 그릇된 길로 나아가려고 하면 어떻게든 발을 걸고 넘어뜨려야 할 것이다. 톰 펠턴의 주위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저마다 펠턴에게 많은 영향과 가르침을 주었다. 나도 마찬가지이며 혹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간혹 견디기 힘들 만큼 부끄러운 사실은 생각도 철도 없었던 나의 눈빛, 표정, 말과 행동 따위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더 나아가서는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으리라는 사실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삶 따위는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참된 삶을, 속이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문장 수집


304p

앞으로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을 이제껏 그래왔듯이 꾸준히 볼 수는 없겠지.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삶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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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하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삶이라는 게 그저 제멋대로 휘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380p

우리 삶에 존재하는 유일하고 참된 화폐란 우리가 주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이 책은 분명 좋은 영향력을 가진 책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영향을 끼치는 대상이라고 해 봤자 가족과 몇 없는 친구들, 그리고 아주아주 미미하겠다만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일 텐데, 아무리 꼽아도 열 손가락에 다 채울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작은 물방울을 튀기더라도 그 물이 최대한 깨끗하고 투명한 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나 말을 조심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렇다고 너무 미적거리다가 중요한 걸 놓쳐버리지 말자.



394p

세상이 빨리 변하면, 우리도 빨리 배워야 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난 우리가 그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빨리 배우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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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변한다는 건 그만큼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소외되고 박탈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하루마다 바뀌는 유행이나 모든 소식이 몇 시간 만에 퍼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 네트워크에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물론 젊은 나이에 비해 디지털과 별로 안 친한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 나는 인스타그램도 풍경 사진을 가끔씩 올릴 때를 제외하면 거의 안 들어간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유행에 더 어두워졌다. ―


세상이 빠르고 넓어진다는 건 분명 실생활에 유익한 점이지만, 우리는 그저 좋은 점만 보느라 그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점이나 개선점은 지나치게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배워야 하는 것도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는 그저 신속하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듯하다. 어쨌든 나만 편하면 다 상관없다는 주의다.


그렇게 되어버린 사회가 슬프고, 또 그렇게 늙어가는 세상이 슬프다. 슬프면서도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이 복잡하다. 슬픔은 아주 귀한 감정이지만 ― 불과 며칠 전에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를 필사하였으므로 ― 슬픔 속에서만 사는 건 너무 눅눅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보다 더 현명해져야 한다.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영화로 보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틀 만에 상당히 두꺼운 책을 완독했으니 제법 뿌듯함이 있다. 유명한 영화에 출연했었던 어린 배우가 이십 년도 넘게 흘러 완전한 어른이 된 후에 쓰는 책이란,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이끌림이 있다. 여러모로 좋은 책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건 내가 두 번째로 읽은 배우의 에세이다. 첫 번째는 봉태규 배우가 쓴 에세이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인데, 이것도 좋은 사람이 쓴 좋은 책이니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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