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著,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산문집]
- 제목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저자 : 박연준
- 출판사 : 달
이 책은 처음으로 실물이 아닌 전자책으로 읽고 남기는 리뷰다. 그럭저럭 괜찮다 싶은 정도면 구태여 종이책으로 구매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제법 마음에 들었기에 3월이 끝나갈 즈음에 다른 책들과 함께 종이책으로도 구매할 예정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시인인데 정작 시집은 읽은 적이 없고 산문집만 세 권을 읽었다.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읽을 책은 무궁무진하고 나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다 ― 고 믿는 ― 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페이지는 거의 같을 수가 없어서 문장을 발췌한 쪽수가 종이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전자책은 종이책으로 완독했을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전자책은 다 읽어도 책을 완전히 '읽었다'기보다는 잠시 '구경했다'는 느낌이다. 종이책을 향한 애정 때문에 전자책을 비교적 가볍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차피 내용은 전부 똑같을 텐데 말이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장단점은 너무 극명해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각자의 선호도가 있을 뿐.
아무튼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이상하게 흐르는 인생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든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의 시작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어떤 부모에게 어떤 유전자를 받고, 어떤 집에서 태어나, 어떻게 성장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필연적으로 이상하게 흐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경제적인 형편, 타고나는 천성, 행불행의 정도는 전부 다르기에 마땅히 기준을 정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인생은 이상하다. 사람은 누구든지 조금씩 이상한 면을 가지고 있으니, 그 삶도 이상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책을 읽은 내가 내린 결론이다.
사실 타인의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삶도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이상하게 흘러가는 인생을 나보다 먼저, 조금 더 많이 살아본 사람이 남긴 기록과 발자취는 어떤 이야기든 조금씩 흥미롭다. ― 특히 회사에서 일이 없어 한가한 시간을 틈타 몰래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다. ― 어쩌면 이 책을 일종의 이정표로 삼아,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떠오를 때마다 책장을 뒤적거리며 혼자만의 조언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에 새겨진 문장과 작가의 삶은 기억에서 금방 사라질 테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문득 떠올리겠지만.
스스로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일까지도 숨기지 않고 꺼내어 응시하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평생 필요한 일이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마음을 직시하는 법, 무언가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는 법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그에 관한 정답을 얻을 수는 없어도 ― 세상 어느 책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 삶에 가장 적합한 해답을 찾아가는 힌트는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떤 책이든 그 안에 있는 문장들이 조금씩 내 안에 쌓이는 것 같다.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정이다. 여행보다는 여정. 혹은 지루한 모험이다. 평화롭게 나아가다가도 별안간 알 수 없는 함정과 적이 등장하고, 몇 개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다가 끝내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 어딜 가도 목적지는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문장 수집
33p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소리 내고 싶은 욕망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게 합니다. 그것은 낯익은 세상에서 평범한 것들의 '새 얼굴'을 발명하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내게 익숙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긴다. 머리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편한 쪽으로만 판단하고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방식이 일관적으로 굳어지는 게 그다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건 나의 시선까지 편협하게 만드는 일이다. 무언가를 보고 평소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나의 생각을 의심하는 것, 그래서 다르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을 알게 해 준다.
34p
시쓰기(쓰기)란 대체 불가능한 대상을 대체 불가능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날아가는 나비들을 간절한 마음 하나로 공중에서 멈춰 있게 하는 일입니다.
작가는 무언가를 쓰는 일, 특히 시를 쓰는 일을 '날아가는 나비를 공중에 멈춰 있게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시를 쓸 때 어떤 마음인지 떠올려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시를 쓸 때 무언가를 아주 깊고 느리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보다 문장이 먼저 나오도록 속에서 나오는 글을 우선 따라가기도 한다. 두 가지 방식이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장면을 유심히 그린다는 것이다. 나비에 관한 시를 쓸 때는 나비를 떠올린다. 날아가는 나비, 꽃에 앉은 나비, 화려한 색깔의 날개를 팔랑거리며 바람에 휩쓸리듯 날아다니는 나비. 그 순간 나비는 내 머릿속에서 살아 있다가 그대로 박제된다. 그리고 시를 다 쓰고 나면 저 멀리 날아간다.
73p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내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슬픈 상황에서는 슬픔을 억누르는 대신 느껴야 하고, 누군가와 이별할 때는 제대로 이별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한 말이었을 것이다. 절제하지 않아도 될 감정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표출하지 않으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의미였으리라.
나는 이곳에서 글을 쓰는 동안 '슬픔의 중요성'을 지겨울 만큼 여러 번 늘어놓았다. 슬픔은 곧 인간성이라고. 기쁨보다 슬픔이 더 소중할 때도 있는 법이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 <슬픔이 기쁨에게>처럼. 슬플 줄 알고 눈물 흘릴 줄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어릴 때는 몰랐다. 지금은 슬퍼야 할 일에 슬퍼하지 않는 게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갈 필요가 있다.
123p
그렇지만 어떤 아이들은 세상만사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른들은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을 흉내내고 있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일찍 알게 되기도 하는 법이다.
어른들은 왜 행복할 수 없게 되었을까. 도파민에 둔감해지는 동안 뇌가 너무 많이 자라 버려서? 아이스크림 하나로도 행복하고, 계곡에서 하는 물놀이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절에서 너무 많이 멀어진 탓일까.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이 지나치게 늘어난 탓에 이제는 아이스크림 대신 술이나 담배를 찾고, 계곡에서의 물놀이나 눈밭에서의 눈싸움 대신 인터넷과 SNS를 돌아다니며 비교와 품평과 비난에 시간을 쏟게 된 것일까.
세상만사가 아름답지 않다는 걸 깨달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행복이 매우 시시하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인생의 마스터키처럼 여기는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과 '좋은 가정'이 생각보다 인생의 행복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청춘이라 명명하는 시절을 무의미한 일에 전부 써버린 어른들이 아직 청춘에 다다르지 않은 이들을 아닌 척 내심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도, 훗날 자신이 한심하다고 여기는 어른들과 비슷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159p
아는 게 권력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굳이 권력을 논하자면 사람을 아는 게 권력이 아니라 끌어안는 게 권력이다. 그 사람을 끌어안고, 품고, 아끼는 것.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힘이라지만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보면 애석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내가 알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감히 타인에게 쓴소리 할 입장은 못 된다. 다만 아는 게 권력이 아니라 끌어안는 게 권력이라는 문장은 작은 울림을 준다. 그동안 남들보다 조금 더 안다는 착각에 빠져 으쓱거리고 다녔던 쓸데없는 자신감이 한낱 필요도 없는 자부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174p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죽음을 긍정했다.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고 말하며, 태어나 사는 일이 죽음보다 고됨을 꼬집었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들은 모두 죽어본 적 없는 자들뿐인걸!
삶은 즐겁고 괴로운 것이라, 다행스럽게도 반드시 끝이 있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내가 짊어진 것들이 전부 별거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어차피 죽으면 다 끝날 텐데 구태여 이렇게 머리 쥐어 싸매고 살 필요는 없구나 싶은 것이다. 물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긴 한다. 나는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없어서 죽음이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사후세계의 존재 유무도 모른다. 그저 죽음이 내가 잠에 빠져드는 것과 같기를 바란다. 내가 언제 꿈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까무룩. 그렇게 죽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191p
누군가 죽는다면 그건 태어나는 자가 있기 때문이지. 누군가 울고 있다면, 어디선가 웃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지 모르고. 누군가 아프다면 아프지 않은 사람 때문일 수도 있다고.
세계는 서로 너무나 깊이, 연루되어 있다.
남일은 그저 남의 일이 아니다. 그저 타인의 사정이라고 치부하며 지나치기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내가 침묵하는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난도질했던 칼날은, 어느 순간 내 목을 겨누고 있을 것이다.
194p
태양을 향해 뻗어가는 식물이 있다면, 한사코 태양을 피해서 자라는 식물도 있는데.
그늘에서 번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그랬을지도 모르지.
아! 이 문장을 읽고 내심 감탄했다. 태양 아래 환한 세상이 반드시 밝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빛과 열이 없는 그늘에서 비로소 자라나는 존재도 있다. 조금 더 어둡고 차갑고 축축한 곳에서, 찬란하고 더운 세상에서 한 걸음 멀어진 그림자 속에서 많은 생명력을 가지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나도 확실히 밝은 세상에 속하는 쪽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늘에서 번성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보며 감탄한 것이겠지. 나는 그늘에서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고 싶다. 담벼락 구석에 핀 꽃을 조금 더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254p
질문이란 아둔하다. 질문하는 자가 정말 답을 원해서 하는 질문은 많지 않기 때문일까. 세상에 정답을 가진 질문이 많지 않기 때문일까.
정답을 가진 질문이 얼마나 있을까. 애초에 사람은 정답과 거리가 멀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존재들. 시선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끊임없이 뭉치고 흩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우리만의 염병을 떠는 것이다. 모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채로 인생을 만든다.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향해 질문하는 건 의미가 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문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얼마 전 필사한 책은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의 산문 <리얼리티 트랜서핑 1>이었는데, 그곳에 "삶에서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것을 담담하게 지나쳐가라."는 문장이 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억지로 이해한다고 해서 정말 이해가 되었다면 이만큼 세상이 망가지지 않았을 테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당연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다시 시작한다면 조금은 정신 건강에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않은 채로. 그렇다고 물음표 대신 마침표로만 채워지지는 않도록. 이건 너무 어려운 말이라서 지금의 나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한 말이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있다.
독후감을 다 쓰고 나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참 이상한 것이구나. 그 이상한 것을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로구나. 단 하나뿐인 여정을 이렇게 이상한 마음으로 용케 살아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