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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an 24. 2024

흰 눈송이가 내리던 날

자작시


어느 겨울날 하얀 눈이 내렸다.

나는 얼른 부츠를 신고 나갔다.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하얀 눈길에

나의 둥근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

주머니에 손을 끼워 넣은 채


문득 하얀 눈송이가 머리카락 사이로

사르르 내려앉는 것을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사람에게

대뜸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혹시 시간 있으면

잠깐 나와서 만나지 않겠는가.


나는 사극과 사투리를 오가는

기이한 말투를 장난처럼 썼다.


그 사람은 나의 장난 같은 말투를 좋아했고

우리는 진지한 장난에 제법 진지했기 때문에.


하얀 눈송이가 뒤덮인 길가에

나란히 발자국을 송송 남기며


우리는 까만 머리에 하얀 가루를 뿌리며

나란히 초콜릿 컵케이크가 되었다.


온 세상이 순수한 백지가 되어

우리의 한 시절을 뽀얗게 물들였던 날


눈은 모두 녹아버렸

보고 싶은 사람은 눈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흰 눈송이가 내리던 날만은

언제까지고 나의 눈 속에 남아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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