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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n 04. 2024

슬픔과 상실의 한가운데

정현우 著, <소멸하는 밤> [시집]


- 제목 : 소멸하는 밤

- 저자 : 정현우

- 출판사 : 현대문학




박연준 시인은 <듣는 사람>에서 '시는 설명하기를 싫어하는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난 시집이 이것이었다. 당시에는 이 시집을 절반 정도 읽은 상태였는데, 꽤 오랫동안 책을 다시 펼치지 않은 이유는 너무 어려운 시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명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시 자체가 설명이었고,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선 몽환적인 은유와 작가의 내면을 묘사한 표현으로 가득한 시. 다소 직관적이고 풍경이나 상황 위주의 시를 접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를 다 읽고 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를 읽어야 하는지, 조금은 깨달았다. 시는 읽고 이해하고 해부하고 해석하며 문제를 푸는 교과서가 아니라, 의도가 있든 없든 의미가 무엇이든 그 자체로 느끼고 감상해야 하는 문학임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공감, 동질감, 유대감 따위의 감정을 나누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의 키워드는 '슬픔'이다. 상실의 슬픔, 외로움의 슬픔, 그리움의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고, 슬픔이라는 감정에서 태어난 시인의 마음과 머릿속 이미지가 눈물에 녹아 있다. 시인의 마음이 새하얗고 창백한 눈으로 뒤덮인 겨울의 세상에 머무른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시가 조금, 아주 조금은 보이는 기분이었다.


모든 분야가 그런 면이 있지만, 예술의 분야 중 하나인 문학은 노력보다 재능이 빛을 발하는 야속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시(詩)'는 타고난 문인들의 모임 같다. 소설은 배워서 쓸 수 있지만 시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쓸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시를 배워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문학 수업 시간에 시를 배웠지만 그건 배웠다고 할 수 없다. 시의 파편을 조금도 느끼거나 음미할 새도 없이, 단어를 하나하나 해체하여 시의 분위기와 시인의 의도와 당시 사회적 배경을 달달 암기하기 바빴던 과정은 감히 '시를 배웠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의 책장에는 황수영 작가의 산문 <여름 빛 아래>가 있다. 그 책이 여름이라면 이 책은 겨울이다. 같은 책장에 정반대인 계절을 담은 책이 존재하다니, 전혀 신기할 일이 아닌데도 신기했다. 빈말로도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이 친절하다거나 따뜻하고 다정하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슬프고 차갑고 아릿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시도 있을 것이다. 난해한 묘사와 저의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은유 속에서 헤엄치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의 마음을 신기루처럼 희미하게나마 바라볼 수 있다.



시집은 소설이나 에세이, 산문과 달리 감상평이 길고 장황하기 어렵다. 유기적으로 이어져 하나의 작품집을 이루더라도, 시는 작품 하나하나마다 지나치게 강한 개성과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커다란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나 감정은 있을지언정 시를 쓸 때의 감정과 마음이 전부 똑같았을리는 없다. 그러니 시집은 수많은 작품과 다양한 시간들의 모음을 읽는 것과 같다. 시를 읽으면 100년 전을 읽을 수도 있고, 바로 어제를 읽을 수도 있고, 5년 후를 읽을 수도 있고, 죽음 이후를 읽을 수도 있다. 무엇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는 매력적이다. 역시나 인상 깊게 읽은 시와 연필로 살금살금 밑줄을 그은 문장을 가져왔다.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감정이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어지는 순간은 없다고 믿는다.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글'만으로 그 사람을 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긴 글을 보면서 그들을 상상하고 이해하고 미워하고 존경한다. 그것이야말로 시를 비롯한 글이 가진 거대한 중력이자 인력일 것이다.



p13 - 너는

첫눈으로 휘갈겨 쓴 편지 같다.

[너는 모른다 中]

첫눈은 모호한 존재이다. 보통 연말에 한겨울이 다가왔을 때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부르지만, 이미 연초에 눈이 내렸다면 그것은 첫눈이 아니다. 그러니까 첫눈은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동시에 겨울이 떠나감을 알리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다가오거나 떠나가는 첫눈으로, 정성들여 쓴 것도 아니고 대충 휘갈겨 쓰는 편지는 설렘과 슬픔 중 무엇을 담고 있을까.



p21p - 왜 울고 난 뒤 두 눈은 따스할까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믿기 위해

[스콜 中]

눈물이 나올 때 온몸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장이 그만큼 뜨겁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겠지만 시적인 상상은 얼마든지 비과학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심장이 차게 식었다면 흐르는 눈물도 차가울 것이다. 가져본 적이 있다고 믿는다는 말은 지금 내 심장은 뜨겁지도 않고, 애초에 그랬던 적이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언제부터 뜨거운 사람이었을까. 과연 언젠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아이였을까.



p46 - 비 내리는 천장을 보고 누우면

나는 내가 아닌 채로 심장 소리를 듣는다.

[물끄러미 中]

나는 나인 채로 태어나 평생을 살지만, 내가 나임을 자각하거나 인식하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따금 내가 나 같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나의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와 행동과 생각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너무 낯설어서 난생 처음 본 타인보다도 더 생경했다. 비가 내리는 천장은 나의 온몸을 적시고 사라지는 슬픔과 모멸감이 아닐까. 내가 아닌 채로 듣는 나의 심장 소리는 마치 다른 존재에게 빌려온 삶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p82 - 천국은 비밀 때문에 망가지는 것. 영혼을 만질 수 있다면 물 먹은 목화솜 같은 것,

[오리와 눈먼 숲 中]

비밀 때문에 망가지는 천국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다. 천국이 슬픈 세상이라면, 슬픔은 비밀 때문에 망가진다. 꼭꼭 숨기고만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나의 마음을 처참하게 망가뜨린다. 뒤늦게 꺼내려고 하면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나만이 슬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영혼이 물 먹은 목화솜 같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끌어안으면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인간도 결국에는 축축하게 시들어버린다는 생각이 드니 슬퍼졌다. 그렇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보송보송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또한 안다.



p84 - 가끔 슬픔은 잡음처럼 들린다.

[윈터링 中]

여담이지만 '윈터링(Wintering)'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찾지 못했다. 사전적 의미가 있는 단어는 아닌 것 같아 인터에 검색해 보니 영국의 에세이스트이자 작가인 '캐서린 메이'의 에세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에 이 단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캐서린은 윈터링을 '추운 겨울을 살아내는 시간',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희망을 찾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시인 역시 그것을 의도하고 이 시에 윈터링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까? 아니면 단어 그대로 차가운 겨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의미인 것일까? 역시 저자의 속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모든 게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오답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잡음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엘피판을 턴테이블에 돌릴 때 나는 희미하고 지속적인 잡음을 떠올렸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깨끗하게 사라지지도 않는 희미한 노이즈. 엘피판이 삶이라면 판에 새겨진 노래는 인간의 희로애락이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흘러나오는 노래 사이에 섞인 잡음은 늘 발치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어떠한 슬픔과 외로움, 상실감, 공허감, 우울 따위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p123p - 슬퍼지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우리의 지난 겨울은 모두 연서였다.

[겨울의 연서 中]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고르라면, 아마도 이 작품일 것 같다. 제목의 '연서'는 아마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애정의 편지를 뜻하는 '연서(戀書)' 혹은 불쌍히 여겨 용서한다는 뜻의 '연서(憐恕)'를 의미하리라. 삶의 고통과 괴로움과 외로움을 겨울 안에 담아낸 시. 지난 겨울이 모두 연서였다, 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문득 안리타 작가의 산문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가 떠올랐다. 안리타 작가의 책 또한 슬픈 입김과 내내 증발하지 않는 물기를 가지고 있다.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고 미지근하기도 한 책인데, 이 시집과 조금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머무르는 마음으로 지은 시집.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인간의 슬픔과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공허해진 마음을 이야기하는 책이니까. 내가 이 시집을 어렵다고 느낀 이유는, 그만큼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좋은 일일까. 수많은 슬픔과 고독을 거쳐야만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을 남겨두는 것은 언젠가 찾아올 나의 깊은 슬픔과 우울을 담아낼 대피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시집은 그중 하나가 되었다.


소멸하는 밤은 유언으로 달빛을 남겨두고 떠날까. 시인은 밤처럼 모든 세상을 잔잔하고 고요한 어둠으로 껴안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다가갈 수 없는 세상과 떠날 수 없는 세상을 사이에 두고 그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삼켰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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