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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Sep 08. 2024

피로연

자작시_58


큰아들이 결혼을 한다는 집

잔치에서는 수프를 먹었다

목을 타고 번지는 묽은 온기

칼칼했던 그날 밤의 무도회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집

그들은 아들과 딸의 장단점을

톡톡한 현자처럼 읊었다

수프 대신 와인을 마셨던 잔치


첫 손주가 태어났다는 집

몽롱하게 번지는 조명빛 아래로

소곤소곤 번지는 어떠한 이야기

아들이 바람난 것 같다고


큰아들이 이혼한다는 집

첫 손주가 세 돌을 맞기도 전에

아들이 다른 여자와 도망쳤다고

벌써 마음이 다 떠나버렸다고


떠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그날도 여전히 잔치는 열렸고

어째서 이런 소식을 알리는지

여기서 고기를 써는 건 맞는 일인지


떠나간 것과 일방적으로 남은 것

남겨진 자의 초췌한 낯빛과 공허한 눈

칭얼거리는 목소리는 와인잔 너머

일렁이는 물결 속으로 가라앉는다


첫 손주가 세 돌을 맞이하기 전에

세 번째 생일이 되기 며칠 전에

열병을 앓다가 가버렸다는 집

어둠이 깔리고 곡소리조차 없고


일렬로 서서 뒤따라가는 발자국

웅성거리는 음악에 맞춰 추는 춤

여전히 잔치는 끝나지 않은 채다

곧 하나의 잔치가 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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