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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Sep 01. 2024

소포

자작시_57


그 아이의 소포는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좋은 종이로 조심스럽게 감싸 새끼줄로 단단하게 묶은 것

끈을 풀고 포장을 벗기니 안에 든 것은

책 두 권 포장된 비누 한 개 작은 종 달린 풍경 한 개


반투명한 편지 봉투를 열면 두 번 접힌 편지가 있다

내 아이는 자신의 하루와 안부를 적어 보냈다

종이는 잡화점 아들에게 군것질거리를 사 주고 몰래 얻었단다

잘 찢어지지도 않고 젖지도 않아 좋은 종이라며 자랑했다


아이의 글씨는 반듯하다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

편지지 뒤로 스며들어 살랑거리는 바람 냄새

햇볕이 쓰다듬는 그 아이의 뺨 따뜻해진 목덜미와 손목

산뜻한 냄새가 떠오른다 비가 내려 눅눅해지면 맡곤 했던 체취


한 권의 책은 네가 쓴 책

또 한 권의 책은 내가 읽고 싶다고 말했던 책

비누의 향은 아이를 닮았다 봄날의 개울가에서 풍겨오는 꽃의 향

창가에서 풍경이 울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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