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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영절스러워라!

by 오선희

얼굴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심상치 않다.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맨발로 방바닥을 딛는데, 발가락 끝이 짜릿하다. 이불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서 내놓은 발을 다시 이불 안으로 집어 넣은 후, 좀 더 게으름을 피워 보았다. 그러면서 든 생각. 올해 나는 참 게을렀던 게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 바삐 준비하고 어딘가로 출근을 해야 하는 날들이 적었다. 주로 집에서 작업을 하고, 사람들과는 전화나 메일로만 소통하고, 한 주에 한 두 번 정도만 나가서 일했다. 그것도 오후에.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한 게, 새나라의 어른이 되지 못한 게, 내내 마음 한켠을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늦은 밤에서 다음날로 넘어가는 새벽을 알차게 쓴 날들이 많았으므로 남들보다 시간을 덜 알차게 쓴 건 아니라는 위로를 나에게 건네 보았다. 더불어 올 한해 아침 한정 게으름을 경험하며 내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볼 만하다. 그렇다. 아침에 30분 더 자는 것만으로도 컨디션이, 나아가 시력까지 나아지는 듯했다.


더불어 올해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해 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노만 젓느라 주변 구경을 놓치는 것을 경계했다. 구태여 일을 더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와 같은 말로 나대지 않았다. 나는 그냥 더 풍성한 물길을 만드는 데 만족했던 시간들을 보냈다. 내가 만든 물길은 속도가 빠르지 않아 그 위에서 나는 그저 둥둥 떠있었던 듯 싶지만, 내가 행복해 하는 것을 향해 가는 물길의 방향만은 분명히 만들어 갔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행복을 겨냥해 요리조리 영점을 잡아가는 시간들이었던 것도 같다. 나는 종종 며칠 전의 내 못난 모습, 심지어 10여 년 전의 못난 모습을 구태여 떠올리고 이불킥하며 우울해 했었는데, 올해는 못나고 부끄러운 일들에는 잠시 흐린 눈을 하고, 좋고 멋졌던 것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총이나 화살을 쏘기 위해 영점을 잡을 땐, 원래 한쪽 눈을 찡긋 감아야 하므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엔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꽤 잘 살고 있다고, 다독이며 천천히 걸어온 한해였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올해 내가 행복하게 열심히 한 것은 ‘글쓰기’였다. 글방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려 노력했고, 글방 동료들의 응원에 힘 입어 여기저기 공모전에도 기웃거려 보았다. 음식 에세이 공모전에는 동그란 양배추를 삶아 먹는 이야기를 썼고, 초등 교과서 글감 공모전에는 내 말에 계속 반대하는 초등학교 4학년의 이야기를 썼으며, 면 에세이 공모전에는 모든 음식에 넣어 먹는 사리에 대해 썼다. 아직 그 어떤 대회도 결과는 안 나왔지만, 복권 사고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설레어 하고 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다고 엄청난 부귀영화 혹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삶, 그쪽 방향으로 스적스적 가고 있다는 만족감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2025년에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글 쓰는 삶이 그럴 듯하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우리말에는 '영절스럽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주 그럴 듯하다'라는 뜻이다. 내 삶의 ‘영’순위인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행복한 삶을 겨냥하여 ‘영’점을 잡아가는 영절스러운 한해였다 말하고 싶다.


엄청 대단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럴 듯하고 싶다. 딱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나다. 엄청 유명한 글을 쓰고 싶지 않고, 쓸 수도 없다. 그냥 그럴 듯하게 삶을 표현하고, 그럴 듯하게 마음을 글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글은 대단하지 않아서 좋아. 근데 무슨 말하려는지는 딱 알겠어.’라고 생각해 준다면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다. '영절'스러운 날들이 이어진다면 매일매일 '명절'처럼 내 맘은 풍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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