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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붓한 1인용 의자

by 오선희

항암 중에 아빠는 살이 많이 빠졌다. 나중엔 엉덩이에 살이 다 빠져서 바닥에 앉는 것이 힘들어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엉덩이 부분이 푹신한 의자 하나를 사야겠다고 말했다. 엉덩이와 등 부분이 푹신한 패브릭으로 된 1인용 의자, 팔걸이가 있고, 기대어 눈을 붙일 수도 있는 의자가 필요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아빠는 가끔 의자에 앉아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의자는 지금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엄마가 아빠 짐을 정리하면서 저 의자를 어떻게 할까 하시길래, 내가 집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분리하고 나면 다시 조립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의자 그대로를 차에 꾸역꾸역 싣고 집에 왔다. 어디에 놓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집 한 구석에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놓았다. 의자에다 오며가며 옷도 걸어두고, 거실 창 앞에 끌고 와서 잠시 앉아 바깥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침대 옆으로 최종 자리를 정하게 되었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날 아침, 침대에 조금 더 머물러도 되지만, 그러다가 다시 잠들기는 싫어서 침대 밖으로 나왔을 때 앉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침대 옆에, TV를 향해 의자를 배치해 놓고는, 의자에 폭 안기듯 앉아 보았다. 살이 더 찌면 안기에 불편할 것 같은 조붓한 의자였다. 그런데 조붓해서 더 오붓했다. 우리말 ‘조붓하다’는 ‘조금 좁은 듯하다’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 늘 좁게만 살아온 우리 가족은 좁아진 공간만큼 서로에게 상처 주고, 그만큼 멀어졌다. 좁은 거 정말 싫었는데, 조붓한 의자에서 오붓함을 느끼고 보니, 왜 우리는 그동안 좁은 집에서 오붓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씁쓸하기도 했다.


그 의자에 앉아,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남편과 낄낄대기도 하고,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글도 쓰고, 빵도 먹고, 핸드폰도 하고, 책도 읽고, 팔걸이에 다리를 걸고 누워도 보았다. 그렇게 그 1인용 의자는 아픈 아빠에게서, 안식이 필요한 나에게 왔다. 이 의자에 앉았던 아빠는 아픈 기억이 많았겠지만, 이제는 편안해지셨을 테니, 나도 이 의자에 앉아 편안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꿈에 나왔던 아빠처럼.


꿈속에서 나는 밤늦게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술인데. 꿈에선 내가 잘 하지 않는 일을 하곤 한다. 내가 걱정되었는지 남편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남편과 귀가하는 늦은 밤, 차는 끊겼고, 엄마네 집으로 가서 자기로 했다. 근데 웃긴 건, 그 집은 20여 년 전, 그러니까 결혼 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반지하 집이었다는 것이다. 그 집은 경기도 변두리에 있어서 번화가보다 차가 더 먼저 끊기는 곳이었다.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는 우리 집이 훨씬 번화한 곳인데, 차가 끊겼다는 핑계로 그곳을 찾아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꿈이니까 가능한 상황. 밤늦게 찾아온 딸과 사위를 보고 엄마는 얼른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 주고, 아랫목에 이불도 깔아 주셨다. 씻지도 않고 막 그냥 드러누웠는데, 옆을 보니, 아빠가 잠들어 있었다. 딸내미랑 사위가 왔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쿨쿨. 꿈속에서 나는 그냥 아빠가 피곤했나 보네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옆에서 잤다. 그렇게 꿈속에서 잠이 들고, 나는 꿈밖에서 깨어났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빠와 나는 사이가 안 좋았고, 아빠가 편찮으셨을 때도, 그냥 우리 집에 닥쳐온 불행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아빠가 감내해야 할 아픔에 공감이나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이제서야 아빠의 의자에 앉아서 조금씩 아빠의 고통을 가늠해 보는 중이다. 엉덩이에 살이 얼마나 빠지면 바닥엔 앉지도 못했던 걸까 하면서. 그래서였을까. 꿈속에서 아빠는 아주 편안하게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나. 이제 잘 자니까, 걱정말라고 꿈에 잠시 다녀와 준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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