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볼맞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들으면 다들 어떤 생각이 먼저 들까? 이 단어를 듣고, 사실 난, 누군가 내게 화를 참지 못하고 오른손을 머리 끝까지 올린 후, 내 볼을 찰싹 때리는 상상을 먼저 했다. 요즘 내 정신 세계가 팍팍한가 보다. 아름답게 바라보아야 할 단어를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 버리다니 말이다. ‘볼맞다’는 ‘함께 일할 때에 생각, 방법 따위가 서로 잘 맞다.’라는 뜻이다. 볼을 맞대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이 단어의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부둥켜 안은 채로 상대의 오른쪽 뺨과 나의 오른쪽 뺨을, 혹은 상대의 왼쪽 뺨과 나의 왼쪽 뺨을 맞댈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 상태에서 상대의 오른쪽 뺨과 나의 왼쪽 뺨을, 혹은 상대의 왼쪽 뺨과 나의 오른쪽 뺨을 맞댈 수도 있다. 두 가지 모두 함께 마음을 맞추어 나가는 데에 어울리는 모습이지만, 나는 후자가 더 맘에 든다. 함께 같은 방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생 네컷 이전에는 스티커 사진이 있었다. 좁은 부스에 들어가 맘에 드는 배경을 고르고, 갖가지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었다. 다 찍고 나면 환한 조명에 코는 사라지고, 누가 누구인지만 겨우 알 수 있는 정도의 결과물을 얻게 되었다. 코가 사라져도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함께 찍은 친구와 사진을 나눠 가졌었다. 당시에는 스티커 사진 주변에 여러 프레임을 설정해 놓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프레임 안에 정작 얼굴이 들어갈 자리가 좁아져, 사진을 잘 찍으려면 서로 얼굴을 꼭 붙였어야 했다. 데칼코마니처럼 표정을 똑같이 하고, 꽃받침 손동작도 대칭으로 만들어 찍으면 참 재미있었다. 못생긴 표정을 지으면서 웃어도 좋았다. B컷이 A컷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얼굴을 대면, 더 정확히는 볼을 나란히 대면, 친구의 온기가 다 느껴지고, 아주 작게 웃는 소리도, 웃음을 참는 작은 떨림도 느껴졌다.
나란히 볼을 대는 행동의 진가는 꼬마들을 만났을 때 십분 발휘된다. 조카를 만나면, 한 번 꼭 안아 준 뒤, 같은 방향을 보면서 볼을 대고 웃는다. 조카와 볼을 나란히 대려면, 나는 무릎을 굽혀야 하고, 허리를 구부려야 한다. 그렇게 내 몸을 낮추고 아이의 시선과 같은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조카가 5살 때, 볼맞고 걸어가는데, 나와 아이의 시선이 땅이랑 너무 가까워서 그게 참 귀여웠다. 또 아가들은 왜 이렇게 금방 열이 오르는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내 볼에 와 닿았고, 방금 먹은 초코 냄새가 달달하게 나서 또 귀여웠다.
이렇게 같은 방향을 보며 볼을 대면, 상대의 세상이 보인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그렇게 그 둘은 생각과 방법 따위가 서로 잘 맞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맘을 담아 살포시 볼을 대면, 무선 충전기에 핸드폰을 갖다 대듯, 서로 배터리를 나눠 갖고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이 방법은 틀리지 않다, 맞다, 맞는 방법이라 확신한다. 친구와 만났다 헤어질 때, “잘 지내”, “또 연락하고” 등등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냥 살포시 볼을 갖다 대 본 적이 있다. 친구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다소 당황한 듯한 반응이었지만, 결국엔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 모임에도 같은 모양으로 끝인사를 했다. 상대에게 내 맘을 전하고 싶을 때, 그의 시선에서 그를 이해하고 싶을 때, 뭘 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면, 잊지 말고 주문처럼 외우자. 맞다, 맞다, 볼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