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의 기세가 대단하다. 유독 더위에 약한 나는 여름이 되면 야외 활동 자체를 잘 하지 않는데, 어쩌다 지난주에는 더위를 먹어 한참을 고생했다. 머리가 띵하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보기 드문(?) 상황에 놓이다 보니, 이번 주 내내 햇볕이 더욱 두려워졌다. 그래서 아주 작은 그늘이라도 보이면 얼른 그 밑으로 들어갔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에어컨 냉기는 꺼리게 되었는데, 그래서 더욱 그늘이 소중하다 느끼고 있다. 우리말에는 ‘그늘’에서부터 나온 말이 있다. 그것은 ‘그느르다’인데, 이 말의 뜻은 ‘돌보고 보살펴 주다.’ 또는 ‘흠이나 잘못을 덮어 주다.’이다. 더위에 무너지기 전, 나를 돌봐준 것이 ‘그늘’이었는데, ‘그느르다’의 어원이 ‘그늘’에 있다는 것이 너무도 절묘하다.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준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보다 더 넓고 큰 마음을 가져야 그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늘이 되어 주려면, 돌봐 주고 싶은 그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적절하게 공급해 주어야 한다. 더위를 먹어 머리도 아프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고생했던 그날, 과외를 하러 가는 나를 위해 남편은 대신 운전을 해 주었다. 과외를 하는 두 시간 동안 근처 커피숍과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다, 내 수업이 끝날 즈음 다시 돌아와 남편은 또다시 운전을 해 주었다. 남편이 나를 그느른 순간이었다. 어떠한 일의 성취에는 그 이면에, 누군가의 돌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수업을 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의 돌봄이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내가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학창시절 나를 돌봐 준 부모님과 언니의 그느름, 그리고 결혼 후 남편의 그느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창시절의 아침은 왜 그렇게 정신이 없는지, 입었던 옷, 머리빗,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간단히 요기한 음식 그릇들 어느 하나 내가 정리하고 학교에 갔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 갔다가 오면 그 어지러움들은, 반드시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정리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이 엄청 소중하다는 것은,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 살게 되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혼자 살 땐, 아주 작은 쓰레기 하나도 내가 움직여야 버릴 수 있었으므로. 엄마는 늘 이렇게 밀착돌봄을 해 주셨다. 하지만 엄마든 아빠든 언니든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는 돌봄은, 티가 잘 나지 않아,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중학생 아이와 수업을 하다가, ‘엄마의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아이는 항상 말끔하게 하고 수업에 왔고, 어머니께서 숙제 점검도 잘 해주시는 편이라,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우리 엄마는 집에서 노는데요.”라는 그 아이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렇게나 엄마의 돌봄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뭐 항상 선생님의 말에 반대하고 싶어 하는 아이라, 반발심에 나온 말일 거라 생각은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이 생각 속에 자리잡혀 그게 마치 자신의 원래 생각인 양 여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 시작한 그느름은 아니지만, 나의 돌봄이 하찮게 여겨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생색을 내어 보는 것도 좋겠다. 앞서 돌봄의 주체를 ‘엄마’로 예를 들었지만, 돌봄의 일이 어찌 ‘엄마’의 일로만 한정지을 수 있겠는가. 함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서로에게 생색을 내어 보는 게 좋겠다.
나와 남편은, 자신의 돌봄을 늘 브리핑한다. “난 오늘 설거지까지 했다구!”라고 으쓱대면,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매우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생색의 효과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돼! 너무 많은 일을 한 거 아니야? 쓰러지겠어!” 정도의 과장을 보여 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설거지를 한 사람은 이 행동 하나가 상대를 그느른 아주 대단한 일을 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고, 한 번 더 상대를 위해 그느를 힘이 생긴다. 그러면 이들은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느르다’의 모음 몇 개를 바꿔 ‘거느리다’로 만들어 보겠다. 누군가를 위해 힘써 ‘그느른’ 사람은 응당 상대를 ‘거느릴’ 수 있다는, 과한 리액션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