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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Aug 21. 2024

두루치기가 되는 방법

‘두루치기’는 철 냄비에 소고기나 돼지고기, 조개, 오징어 등을 넣고, 이것을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물을 조금 부어 바특하게 끓인 음식이다. 경남지방에서는 여기에 김치를 넣어, 전골처럼 국물이 있게 만들고, 경북지방에서는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양파 등을 넣어 볶음으로 만든다. 이상은 파주에서 통돼지 두루치기 가게를 운영하시고, 가게에도 트로피를 쭉 나열할 정도로, 족구 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휩쓰신, 그래서 그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기시는 김○○ 사장님께서, 가게 벽에 붙여 두신 설명을 정리해 본 것이다.


사장님께서 지향하시는 두루치기는 아무래도 경남지방식인 듯싶었다. 국물이 있는 두루치기였고, 그 국물에는 라면 사리를 넣어 먹을 수도 있었다. 김치를 더 추가하여 넣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앞에 놓인 음식은 두루치기이면서 김치찌개이기도 한 모습이 되었다. 돼지고기 볶음이면서, 전골이면서 찌개… 두루두루 여러 맛을 보여줄 수 있기에 ‘두루치기’라고 명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루치기’는 순우리말인데, 이 단어를 음식의 이름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두루치기’에는 ‘한 가지 물건을 여기저기 두루 씀. 또는 그런 물건.’ 또는 ‘한 사람이 여러 방면에 능통함. 또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이런 뜻을 보고 문득 나는 ‘두루치기’가 되고 싶어졌다. 호불호 없이 여러 군데에 쓰이는 사람이 말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없으면 심심해 할 그런 한 사람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그런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어떤 사람이 두루치기가 될까? 당장 내가 엄청나게 난도 높은 기술을 습득하여 두루치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은 두루두루 받아들여질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같은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던 내 후배는, 교생 실습이 끝나고 바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승무원 시험을 치르겠다고 했다.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저장하고 나서, 그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교사가 인생의 선배로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모은다는 것은, 통장의 잔고를 늘리는 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값진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이곳저곳에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현실적인 조언이 되고,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 후배처럼 많은 나라를 다니지는 못했지만, 나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많이 읽어서 사람들에게 신나게 떠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번아웃이 온 나의 고3 제자는, 수업 중에 꽤 많은 시간을 풀린 눈으로 보내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대학교 이야기를 해 준다. 더군다나 그 아이는 내가 졸업한 학교를 꼭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열과 성을 다하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미션스쿨이었던 우리 학교는 채플을 꼭 들어야 했는데, 그 채플 강당은 학과 상관없이 랜덤으로 자리를 배정한다고, 그러다 보니 어느 학기엔 되게 잘생긴 남학우가 내 옆에 앉아있게 되기도 한다고, 채플이 없을 때의 그 강당은 잠깐의 낮잠 공간도 되고, 꽁냥꽁냥 연애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고…. 난 한 번도 옆자리 남학우에게 말을 걸어 보진 않았지만, 나름 향기에 신경쓰고, 흰자로 그의 상황을 추적하며 내 옆모습을 다시 한 번 단장했다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다 보면, 어느새, 눈빛이 반짝이는 예비 대학생이 내 앞에 앉아 있다.


풀린 눈의 고3 아이에게 들려 줄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별 내용 아니어도 들려줄 에피소드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엔 5:5 미팅을 했지만, 나만 폭탄이 되어 먼저 집에 와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 줄 참이다. 그렇게라도 “선생님보단 내가 낫다”라는 우월함을 좀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앞으로 내 인생에 참 많은 일들이, 도합 오만 육천 개 정도는 생길 텐데, 그럴 때마다 그 이야기가 내 곁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게, 웃음이 될 수 있게, 두루두루 쓰일 수 있게, 이야기를 수집해 보고 싶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 적재적소에 딱 맞는 이야기를 건넬 줄 아는 두루치기가 되어, 마음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뜨끈하게 다가가 보고 싶다. 맛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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