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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May 15. 2024

너의 마음을 토렴하렴

국밥을 좋아한다. 뜨끈한 국물과 건더기, 밥알이 동시에 입안에 들어오면 어느 하나 서운한 것 없이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건더기가 담긴 널따란 그릇을 따뜻한 국물로 토렴하고 나면 그 국밥의 맛은 한층 더 깊어진다. ‘토렴하다’는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하다’라는 뜻이다. 차가워진 그릇에 미리 담아 놓은 건더기가 뜨거운 국물과 잘 어우러지려면 토렴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하여 토렴한 그릇은 따뜻한 국밥을 담아낼 준비를 끝낸 상태가 된다.


사람의 마음도 토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이 그 온기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려면 말이다. 따뜻하게 말이 오고가는 것의 성패는 그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말이 온전히 다가가서 상대방에게 잘 담기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도 온전히 그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누는 일회성 대화에서도 토렴은 필수다. 오늘 나는 아무도 기분 상하지 않는 대화를 버스에서, 그 일회성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 (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일어나는 아주머니 승객을 보고, 부드러운 말투로 ) 버스가 서면 일어나셔요!

승객 아주머니: (웃으며) 아~ 손잡이 꼭 잡고 있을게요.

버스 기사 아저씨: (웃으며) 손잡이 꼬옥~ 잡고 계셔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손잡이를 꼭 잡으라는 안내방송은 그저 형식적인 주의사항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성격 급한 사람은 늘 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의사항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승객들은, 사고가 나면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기사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손님일 것이다. 그러면 아무래도 뾰족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거, 버스가 서면 일어나세요, 나참!”하고. 그러면 손님 입장에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버스에서 만난 승객 아주머니와 기사님은 달랐다. 아주머니는 기사님의 말을 따라 다시 자리에 앉지 않았지만, 기사님은 화가 나지 않으셨다. 기사님의 걱정의 말을 오해 없이 아주머니께서 받아들여 주셨기 때문이다. 기사님의 말투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 토 달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말투였다면 누구나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님은 안전을 걱정하신 거였고 승객 아주머니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다. 그래서 모두 화가 나지 않았다.


아주머니와 기사님 모두 평소에 따뜻한 말들로 토렴되어 있으신 분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따뜻한 말이 그 온도 그대로 들어와 오래 유지된다. 갑자기 내용물이 차가워지거나 바뀌지도 않는다. 그 내용 그대로 그 온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SNS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주관적인 생각들이 가득하다. 나름 멋지다 생각한 대상을 사진 찍어 업로드했지만, 돌아오는 댓글에는 ‘별로’, ‘이상한데?’ 같은 말들이 써 있다. 게시글을 쓴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면서 오해한다. 꼭 싸우고 싶어서 댓글을 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생각을 깊이 있게 하지 않고, 그냥 토해내듯이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토하지 말고, 마음을 토렴했으면 좋겠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지만, 마음은 차가워지고 있는 2024년을 살면서 나부터 앞치마 두르고, 국자 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토렴해주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 작가님은 공부방에 오는 학생들의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 주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따뜻한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학생들이 다른 이를 대할 때에도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말에 동의한다. 학생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고, “너희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 주면, 내 말에 토렴된 아이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워 하지 않고, 그 말을 의심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좋은 사람임을 마음 깊숙이 깨닫게 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그런 좋은 말들을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이어른이 되어 만나게 될 세상은 정말 각박하니, 지금부터 단련될 수 있도록, 마구마구 모난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박한 세상에 나가기 전, 그 세상 속에서 따뜻한 사람의 따뜻한 말을 잘 알아챌 수 있도록 지금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토렴해 주고 싶은 거다. 그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다면 난 매우 영광스럽다고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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