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시절에만 해도, 아이들을 운동장에 반 별로 줄세워 놓고 입학식을 진행했었다. 배정받은 반에 가면, 담임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우리를 키 순서대로 줄을 세우셨다. 그렇게 정해진 나의 번호는 2번. 그 반에서 두 번째로 키가 작은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교실에서도 나의 자리는 맨 앞자리. 교탁 바로 앞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책상에 앉아 하는 행동은 앞에 서 계신 선생님의 눈에는 너무도 잘 보였고, 그래서 나는 딴짓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수업 태도가 좋은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앞자리 학교생활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타의는 점점 자의가 되어 갔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따뜻한 대우를 받고 싶은 3학년 아이는, 자신도 남에게 따뜻한 대우를 해 주고 싶어졌다. 하루는 학부모님들 중 한 분이 오셔서 수업을 해 주시는 날이 있었다. 그분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며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도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수업에 집중했다. 이야기가 재밌기도 했고, 따뜻한 태도로 앞에 있는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다 마치고 학부모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인사의 차렷 경례 구호는, 오늘 이야기를 제일 바른 자세로 들어 준 요기 앞에 있는 친구가 해 줄래요?”라고. 두둥. 그건 나였다. 반장도 아닌 내가 일어나서 ‘차렷 경례’ 구호를 했다. 키가 안 작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맨 앞에 앉았던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군.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따뜻한 대우를 해 주었는데도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거나 오히려 안 좋은 대우를 역으로 받았을 때에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태도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그럴 때마다 초3의 나를 떠올리기로 했다. 누군가 나를 봐 주고 있고, 내 행동을 기억해 주고, 좋은 대우를 돌려준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말 ‘삽삽하다’가 떠오른다. 이 말은 ‘태도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게 부드럽고 사근사근하다.’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부드럽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마음을 삽으로 살살 파내어 좋은 기억을 심어 넣어 주는 일이 아닐까. 당장은 새싹이 움트지 않아도, 그 마음밭이 햇볕도 쐬고, 비도 맞고 하는 삶의 여정 중에, 결국은 따뜻하게 대우 받았던 기억이 그 마음밭에서 자라날 것이다. 그러면 그 마음을 심어준 사람도 기억해 내 줄 거라 믿는다. 반복은 힘이 세다. ‘삽삽하다’에도 ‘삽’이 두 개나 들어 있다. 우리 손도 마침 두 개이니, 양 손에 삽 하나씩 들고 따뜻한 태도와 반응을,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심어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