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 늦은 점심을 시켜 먹고 침대에 늘어져 있는데, 엄마가 반찬을 가져가라고 전화를 했다. 순간 너무나 귀찮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는 조미료를 사랑한다. 그래서 식당에서 먹는 밥처럼 꽤 맛있다. 식당에서 먹는 밥인데, 돈을 안 내고 공짜로 먹는 기분이 든달까. 30년 넘게 그 맛에 지속적으로 길들여졌으니, 내가 우리 엄마 밥을 싫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 엄마는 우리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살고, 엄마 집으로 가는 루트는 차가 막히는 법이 없다. 내비를 켜지 않고도 아주 쉽게 슝 갔다 올 수 있는 거리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우리 엄마는 반찬을 싸서, 쇼핑백에 담아두기까지 한다. 바쁜 딸이 반찬만 쏙 가져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이다. 즉 엄마는 나의 시간을 많이 뺏지도 않는다는 거다.
근데, 난 왜 귀찮았을까. 엄마와 통화할 때는 ‘야호’까지 외치며 이따 저녁에 가겠다고 말했었다. 귀찮았는데, ‘야호’를 외친 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일 걸까. 아니면 엄마가 섭섭해 할 것을 걱정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걸까. 내 이름대로 ‘선희의 선의의 거짓말’을 한 셈일까. 그런데 마침 반찬이 똑 떨어져 저녁에 뭐 먹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에, 받게 된 엄마의 전화가 어느 정도는 ‘야호’이기도 했으니 완전 거짓말을 한 것 같지도 않다.
‘귀찮다’라는 말은 ‘귀하지 않다’에서부터 온 말이다. ’하다‘라는 말 앞에 받침이 없거나 ㄴ,ㄹ,ㅁ,ㅇ과 같은 울림소리가 오면 ’하다‘에서 ’ㅎ‘만 남아 뒤에 오는 말과 축약 현상을 일으킨다. 자음에서 축약이 일어나면 ’ㅋ,ㅌ,ㅍ,ㅊ‘과 같은 거센소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귀하지 않다‘가 ’귀치 않다‘가 되고, 다시 또 줄어들어 ’귀찮다‘가 되었다. 엄마의 전화를 귀찮아 한 것이, 엄마를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아 또 맘이 안 좋아졌다.
그러나 사실 나는, 엄마가 시간을 내서 반찬을 하고, 내 시간 뺏지 않으려고 맘 썼을 그 시간이 불편했던 것 같다. 또 엄마를 만나러 가서 엄마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게 나에게는 마음을 졸이는 시간이어서 그 시간을 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늙어갈수록 식사를 잘 하셨는지 여쭙는 것만으로는 안 되었다. 소화까지 잘되었는지 확인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겼다. 엄마가 연세가 드실수록 소화 능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은 나와 같이 실컷 잘 먹은 음식을 소화가 안 되었는지 다 게워내고 얼굴에 피가 쏠려 열꽃이 핀 걸 보는데 너무 속상했었다. 엄마의 나이듦이, 내가 나이드는 것보다 더 싫었다. 최대한 천천히 만나고 싶다, 기력이 쇠한 엄마의 모습을.
내 마음은 그런 거였다. 엄마를, 엄마의 반찬을, 엄마와의 시간을 귀하지 않게 여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귀찮다’는 말로 내 상태를 설명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섣불리 귀찮다고 말해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말아야지. 귀하게 여기는 만큼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쓰게 될 테니, 내가 그대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맘을 보여 주고 싶다면 실수로라도 함께하는 시간들에 ‘귀찮다’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정성을 다해 ‘정답’게 대해야지, 정답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