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소고기뭇국을 끓여주면, 무는 그대로 두고, 소고기만 쏙쏙 골라 먹었었다. 이름도 ‘소고기뭇국’. ‘소고기’가 메인이고, ‘무’는 거들어 주는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없어서 못 먹는 게 ‘무’가 되었다. 달큰하게 맛이 오른 무를 국물과 함께 입안 가득 물고 우걱우걱 씹는 게 참 좋아졌다. 무는 아삭한 맛에 먹기도 하지만 국물을 쏙 빨아들여 맛이 제대로 든 물컹한 식감으로 먹는 것도 좋았다.
식사 약속 전에 “뭐 먹을래”라고 물어오면, 나는 “혹시 샤브샤브 어때?”라고 말할 정도로 뜨끈한 국물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뭔지 몰라서,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모아 둥근 그릇 모양을 만든 다음 사발째 들이켜는 모양을 흉내내면서 대충 뭐 이런 음식을 먹고 싶다고 대답했었고, 다음에는 ‘국물’이라고 단어를 말하면서 먹고 싶은 게 좀 더 명확해졌으며, 나중엔 ‘샤브샤브’라는 메뉴를 선택하면서 먹고 싶은 것의 모호함을 싹 없애 버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는데, 재료들 사이에 뭉텅뭉텅 썰린 무가 보였다. 무를 샤브샤브에 넣어 먹었던가 아리송했지만, ‘무’이기에 별 거부감 없이 무를 국물에 담갔다. 그랬더니 국물 맛이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날은 다른 날보다 국물을 훨씬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이렇게나 맛있는 ‘무’인데, 이렇게나 좋은 ‘무’인데, 얼마 전 단어 하나를 만나고서 크게 실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무쪽같이’.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에는 ‘그 사람 성미가 대쪽같다’의 ‘대쪽같다’와 비슷한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쪽같이’도 ‘대쪽같이’처럼 굳건한 성향을 이야기하는 말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니 그런데 ‘무쪽같이’는 ‘사람의 생김새가 몹시 못나게’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이 표현은 ‘속된 표현’이라,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쓴다면 크게 실례가 되는 말이었다. 자기 몸의 영양분을 국물에 싹 다 내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야들야들한 식감으로 밥맛을 더욱 좋게 만들어 주는 ‘무’를 고작 ‘못생김’을 표현할 때 쓰다니, 이건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며, 국립국어원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땅에서 뽑아 올린 무의 생김새가 반질반질하지 않은 적도 많이 있을 것이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상처가 난 상태이기도 할 것이다. 또 음식의 재료로 쓰일 땐, 예쁘게 썰 필요 없이 뭉텅뭉텅 썰려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을 테니, ‘무쪽같이’가 ‘못생겼다’의 의미가 되었을 거라 예상해 본다. 하지만 무는 예쁠 필요가 없다. 음식의 재료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면 될 뿐, 겉치레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원한 국물 맛을 뽑아 내고, 음식에 어울리는 적절한 식감을 만들어 냈다면 그것으로 무는 이미 해야 할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예쁘다.
우리가 하는 일들도 지나치게 겉을 단장하느라 잘한 일에 칭찬을 아끼진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 못한 것 같아도, 해야 할 일의 본질에 충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그러니 나에게 하는 칭찬에 옹졸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무쪽같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생김새가 몹시 못나게’이지만, 나는 나만의 국어사전에, 나름의 해석을 담아 두 번째 뜻을 살포시 달아보고 싶다. ‘겉치레하지 않고 응당 해야 할 일을 함’이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무쪽같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내가 속한 그곳에서 뭉근하게 끓어 맛 좋게 하는 무쪽같은 사람이 되길, 그럴 듯하게 보이려 노력하기보다 국물 속에서 긴 시간 인내하는 무쪽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