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희 Aug 14. 2024

흐놀아 보자

저녁마다 밤마다 새벽마다 올림픽 경기를 보는 맛으로 요 며칠을 보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주로 쏘고 찌르는 종목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우리나라가 한이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정말 인재가 넘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최소의 인원이 출전했지만, 최다 메달을 획득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을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애써 못 본 체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며 그 자리를 얼마나 힘들게 지켜냈을까, 난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내는 그들은 나에게 이미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올림픽 보기를 즐겨했나 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억누르고 시간과 노력을 차근차근 쌓아 올린 그들의 모습은 내 가슴을 뛰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올림픽의 마지막 날은 역도 경기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박혜정 선수가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들려왔고, 그 시간에는 세 방송사에서 해당 경기만 중계할 정도로 모두의 기대가 컸다. 역도의 룰은 잘 몰랐었는데, 경기를 보면서 하나하나 알게 되었다. 선수마다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도전할 무게를 그때그때 바꿀 수도 있으며, 한번에 들어올리는 ‘인상’과 쇄골에 한번 올렸다가 들어올리는 ‘용상’의 무게를 합하여 순위를 매긴다고 했다. 또 두 손을 뻗어 바벨을 들어 올릴 때는 팔이 구부러지지 않아야 하고, 이중동작이 되지 않게 한번에 쭉 뻗어야 한다. 역도는 한번에 폭발적인 힘을 써야 하는 종목이다 보니, 블랙아웃이 와서 어지러워 하는 선수도 보았다.


선수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로부터 큰 두려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중력을 거슬러 머리 위로 해당 무게를 들어 올리고 나면, 무게를 이겨낸,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머리 위로 바벨을 들어 올리고 나면 심사위원들이 판정을 하는데, 선수들이 기껏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도, 들어올리는 과정이 깔끔하지 못하면 성공이 취소되기도 한다. 메달이 걸린 경기이기에 룰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명의 시청자로서 나는, 삶의 무게를 이겨낸 선수들에게 감정이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그 무게를 이겨낸 사람에게, 그것은 제대로 이겨낸 것이 아니라며 제멋대로 참견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심사위원들이.


박혜정 선수가 증량해서 도전할 땐, 아유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못 들어도 돼, 라고 티비에 대고 말하기도 했다. 무리해서 바벨을 들다가 팔꿈치에 무리가 와서 경기를 포기하는 선수들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완벽히 경기를 즐기는 선수를 발견했다. 에콰도르의 리세트 아요비라는 선수였는데, 그 선수는 바벨을 들어 올리기 전, 손에 탄산 가루를 묻히면서 무언가 계속 읊조렸다. 그러면서 씨익 웃기도 하고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읊조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자신에게 주문을 외워주는 것 같았다. “나 해낼 수 있어.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해. 난 내가 동경했던 세상에 와 있어, 내가 꿈꾸던 세상에 들어와 있어, 짜릿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선수는 결국 메달권에서는 멀어졌지만, 경기의 자리, 동경했던 자리에서 한바탕 놀고 갔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우리말에는 ‘흐놀다’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몹시 그리면서 동경하다’라는 뜻이다. 아요비 선수는 역도 경기장에서 흐논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흐흐흐’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여 줬고, 완벽히 무대를 즐기며 ‘놀았다’. 그의 기운을 받고 싶어, 나는 선수의 이미지를 찾아 핸드폰에 저장해 놓기까지 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 일이 주는 부담감이 어마어마해서, 일을 하는 동안 수백 번도 더, ‘내가 왜 한다고 했지?’ 하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잘해내지 못할까 봐, 실패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게를 한 단계 한 단계 올리면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아요비처럼, 책상에 앉아 채워가는 시간들에, 노력들에, 만족하고 싶다. 결국은 일을 다 해내고, ‘그때 안 했으면 어떡할 뻔했어’라고 말할 나를 기대하며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내 삶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내 볼란다. 한바탕 흐놀아 보겠다.

이전 11화 달팽이야, 팽기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