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이팔 Dec 30. 2019

Happy New Year? (上)

성인이 된 딸은 이제 돈이나 벌어오면 그만이죠.



다들 뭐가 저리 좋은 걸까.


초희의 표정은 무심 그 자체였다. 오른쪽 출입문에서 갓 성인이 된 단체 손님들이 세상 모든 술을 전부 마셔버릴 듯한 기세로 몰려왔다. 시끌벅적함에 진저리가 난 초희는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 치킨집인지 모텔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 커플이 진득하게 키스하고 있었다. 정초부터 가관이네.


어딜 봐도 한숨만 나오는 상황에 주방 테이블만 도로록 두드렸다. 주방 이모가 뜨끈한 치킨을 디밀며 '8번' 단 두 글자를 외쳤다. 초희는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키스에 혼이 나간 8번 테이블에 옛날 치킨을 턱 하니 올려두었다.


자정이 삼십 분 정도 지난 지금. 초희는 정신없이 서빙하는 와중에 성인이 되었다. 미완의 숫자 끝을 꾸욱 채웠더니 다시 영원의 숫자가 나잇살 뒷자락을 메꾸었다. 이제 청소년 근로법에 걸릴 일도, 겨우 얻은 호프집 아르바이트에서 잘릴 일도 없었다.


모든 것이 똑같은데 해피 뉴 이얼 한 마디에 초희는 손바닥 뒤집듯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되었다. 초희는 아직 '성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고작 20년 가까이 살았다고 성인이야? 아직은 제 감투가 아닌 것 같아 슬그머니 발치 끝에 감투를 밀어두었다.


저 감투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초희는 아직 감투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가끔 공짜로 얻은 소유물에 흘금흘금 눈길만 주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두었다. 정신 차리자.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내일 동생의 손에 쥐여줘야 할 학원비였다.


새벽 두 시. 발치에 눌어붙은 술 냄새를 떨치고 가게를 벗어나니, 쏟아지는 흰 눈송이들이 검은 눈망울을 사로잡았다. 거리는 속도 없이 포근한 눈 이불을 덮은 지 오래였다. 저만 빼고 모두 새하얗게 밝아 보였다.


예쁘긴 하네. 초희는 중얼거리며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정도 함박눈이면 초희의 눈동자 색도 옅어질 만한데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탁한 눈 뒤로는 더 거뭍한 무기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 나흘째, 치킨집에서 일한 지 이레째.


초희는 아직도 생활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성인이 되면 뭔가 뚝딱 변할 줄 알았는데, 세상은 여전히 초희에게만 서늘해 보였다. 호프집은 사방 천지에 술과 담배가 있는 곳이었다.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반항심이 고개를 디밀었지만, 이내 두더지처럼 쏙 사라졌다. 제 성정에 맞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냄새가 역했었다.


초희는 생각을 물리고 기지개를 켰다. 오늘도 대체 뭐가 묻어서 이렇게 끈적할까 싶은 호프집 테이블을 닦았다. 다시 손님을 안내하고 주문을 받았다.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여전히 반복적인 일들만 일어났다.


시끌시끌했던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초희는 손님이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엉덩이는 기분 나쁘게 뜨듯했고, 테이블에 닿은 팔은 끈적거렸다. 힘들어 보였는지 주방 막내로 들어온 용준이 말을 붙였다.


“막내. 조금만 더 힘내. 이제 슬슬 마감하면 될 것 같으니까.”

“오빠.”

“응?”

“오빠가 스물둘이던가요?”

“던가요는 뭐야. 스물둘 맞아.”

“성인이 된 다음에 뭐가 좋았어요?”

“성인이 되면 자유를 얻잖아. 담배도 피울 수 있고 술 퍼마셔도 되고! 학교도 안 가도 되고. 난 좋던데?”


좋은 건가? 초희는 용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좋아 보이는 게 없었다. 그나마 좋다고 말할 거리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것 정도였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가난하면 국가에서 돈이 얼마나 나와?’라며 철없이 묻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서 좋았다. 


“야. 새해가 됐고 성인이 됐으면! 술도 먹고 밤새워 놀기도 해봐. 자유를 즐겨야지. 재미있다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찬양하는 ‘자유’는 서서히 자기 합리화의 불구덩이로 끌어들이는 목줄에 불과했다. 이미 미성년자일 때에도 잘만 했을 법한 것들을 이젠 당당히 자유라 칭하며 늘어놓았다. 그러곤 다채로운 색의 술병과 담뱃갑, 콘돔 껍질 등으로 제 몸을 가꾸었다. 옛 성인( 聖人)들이 말하던 이성과 철학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지 오래였다. 본능에 잠식당한 이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더 큰 불구덩이를 향해 웅성거렸다.


초희의 낯빛에는 또 다른 퀴퀴한 무표정이 입혀졌다. 한숨과 희망이 동시에 입 밖으로 흩뿌려졌다. 자유. 자유가 필요하다면. 저는 그저 돈으로부터의 자유나 돈밖에 모르는 어머니에게서 자유를 바랐던 것뿐이었다.


“돈이…. 세상에서 돈이 뭘까요?”

“돈은 돈이지. 근데 그 돈이 얼마나 풍족하고, 어떻게 쓰느냐가 너무 다를 뿐이지.”

“그러네요.”


어머니라고 처음부터 돈을 밝히지는 않았었다. 태초부터 용준이 말했던 풍족한 돈을 가진 집의 외동딸로 자란 어머니였다. 남들이 말하는 고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주머니가 여유로우니 마음도 여유로웠던 사람이었다. 단지 그 풍족함이 오래가지 않았을 뿐. 


외가의 사업이 크게 기울기 시작한 이후 처음 일어난 변화는 아버지의 도주였다. 아버지라는 작자는 제 일이 아니라는 듯이 한달음에 도망을 쳤다. 한순간에 아빠가 없어지자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를 찾아댔다.


'엄마아- 아빠느은-? 아빠 아직 코해?'


아홉 살 딸에게 본인도 모른다는 말은 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저 두 딸을 품에 꼭 안아 줄 뿐이었다.

그리고 3개월 뒤, 그 품에 아버지가 객사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세상은 초희 가족에게 전부를 빼앗았다. 이윽고 후천적인 결핍을 휙 하니 던져 주었다. 특히 결핍을 많이 넘겨받은 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온화했던 어머니가 척박한 삶 앞에서 악착같아지는 모양새는 한순간이었다. 그런 어머니와 돈에서 자유를 얻고자 함은 성인이 되어도 얻을 수 없는 무지개였다. 감히 일곱 색깔을 바랐다는 이유로 등에 업혀있던 현실이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

다른 것을 보지 마.

우리가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해 초희야.


그 목소리와 서러움이 꼭 제 어머니와 비슷해서 몸을 움찔 떨었다.








성인이 된 지 아흐레, 치킨집에서 일한 지 열이틀.


초희는 왼팔을 곧게 펴고 코트도 걸치지 않은 채, 누가 봐도 어정쩡한 자세로 집 대문을 닫았다. 일하다 데인 팔은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주방이 미끄러워 발을 잠깐 삐끗했을 뿐인데, 왼팔은 달군 프라이팬에 처참하게 문대졌다. 팔 전체가 화끈거릴 정도로 아렸지만, 날라야 할 치킨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초희는 괜찮다며 급하게 찬물로 씻어 내고 또 정신없이 치킨을 날랐다. 주방 이모가 중간중간 얼음주머니를 대주며 살갗이 벗겨지지 않았는지 챙겨주었다. 


퇴근하는 길에 차가운 바깥 공기를 쐬니 조금 나았었는데, 따뜻한 집 안에 들어오자 상처가 뜨거운 수세미에 긁히는 듯했다. 한쪽 어깨에 간신히 걸친 코트를 내려놓는데 닮은 뒤통수가 둘이나 있었다. 하나는 익히 아는 뒤통수였지만 하나는 언제봐도 반가운 뒤통수였다. 엄마가 웬일로 일찍 들어왔지? 평소에는 조금 밉던 엄마였지만 초희의 속에선 반가움과 아홉 살 투정이 동시에 몰아닥쳤다.


“다녀왔습니다.”

“어, 초희 왔니? 아휴 수희야. 국은 데워먹으라니까.”

“아, 내가 알아서 먹는다니까!”


기름 냄새가 가득 밴 목도리를 풀며 엄마 옆에 선 초희는 엄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목도리 속에 숨은 자그마한 손가락들이 꼼지락대며 발버둥을 쳤다.


엄마 사실 나. 있잖아. 아까 되게 무서웠어요.

팔이 너무 쓰려요. 아파. 아직도 너무 아파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투정은 결국 입동굴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여전히 뒤통수만 보이었다. 항상 그랬다. 얼굴은 동생의 몫, 뒤통수는 초희의 몫이었다. 나도 엄마 얼굴 보고 싶은데. 초희는 오늘따라 유난히 동생의 몫이 욕심이 났다.


“엄마 저...”

“왜. 엄마 바빠.”

“아니에요. 오늘은 빨리 들어오셨네요.”

“응. 수희가 어제 감기 기운이 있는 거 같아서 약 챙기려고 잠깐 들렀어. 다시 나가봐야 해.”


감기 기운. 그렇게 쉬운 이유로도 엄마의 다정을 받을 수 있는 거였구나. 초희는 어금니를 살며시 깨물었다. 그마저도 엄마에게 밉보일까 세게 깨물지 못했다. 아홉 살. 첫 번째 아홉수에 집이 풍비박산이 났다. 너른 마당과 이층집은 어데 가고 다 쓰러져가는 옥탑까지 내쳐졌다.


모든 물질적 혜택이 사라진 이후로 초희는 엄마에게 단 한 번도 투정이나 떼를 써 본 적이 없었다. 눈칫밥을 있는 대로 먹고 자란 초희였다. 그러니 투정 같은 건 모두 사치였다. 이때까지 잘 참았었는데. 하지만 오늘따라 그 사치가 너무 욕심이 났다. 


모두 데인 팔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웠다. 집이 무너지기 전 당연하게 받았던 사랑과 관심, 웃음, 환희. 그 모든 게 그리웠다. 초희는 애써 눈물을 다시 밀어 넣으며 엄마의 팔꿈치 끝을 두 손가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왜 뭐 할 말 있어?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저 오늘 일하다가 팔을 데었어요.”

“많이 다쳤니?”

“많이는 아닌 것 같은데, 좀 아파요.”

“지금 다쳤다고 투정 부리는 거야? 약 바를 줄 몰라? 이제 성인이면 성인답게 행동해. 엄마도 일하다 와서 피곤해.”

“......”


지친다는 표정으로 돌아선 엄마는 수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언니와 먼저 잘 자고 있으라 말했다. 동생 수희는 올해로 열다섯이 되었다. 초희는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던 옥탑으로 쫓겨난 첫날이 생각났다. 초희는 아홉 살에 찬물로 설거지를 할 줄 알았고, 열 살에는 뜨거운 된장찌개를 끓일 줄 알았다.


왜 나는?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는 아홉 살부터 받지 못했던 모정이 수희에게는 열다섯이 되도록 쏟아지고 있었다.


“초희야. 엄마 지금 다시 나가봐야 하니까 수희랑 잘 자고 있어.”

“엄마 내가! 팔이…. 팔이 데었다고요. 그럼 많이 아팠냐고 들여다보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초희야……. 엄마가 그러려던 게 아니고.”

“흉 질까 봐 걱정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병원비는 더더욱 바라지도 않고요.”

“…….”

“주방 이모도 껍질 안 까졌냐고 물어보면서 상처를 봐줬어요. 주방 이모도!”


지금은 반가운 뒤통수보다 주방 이모가 더 그리웠다. 서빙 실수를 하면 매섭게 등짝을 내리치는 시늉을 하다가도, 초희의 ‘죄송합니다.’ 한 마디에 ‘아가가 그럴 수 있지.’라며 초희를 달래줬던 한마디 따뜻함이 절실히 필요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저한테 웃어 보였는지 기억해요? 전 기억이 안 나서요.”

“초희야. 미안해. 엄마가 그런 줄 모르고.”

“성인이 된 딸은 이제 돈이나 벌어오면 그만이죠. 근데. 성인답게 행동하라는 말. 저한테 할 자격 있으세요?”


초희가 엄마를 밀치고 문을 벌컥 열어 집을 나왔다.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도 더 빨리 달음박질했다. 발길 닿는 대로 뛰다 보니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도착했다. 숨을 고른 채 끼익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네에 앉아 훌쩍였다.


아. 그래도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엄마도 힘들 텐데. 초희는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엄마의 가슴에 훤히 박혔을 것이 뻔했다. 연초부터 두 모녀에 가슴에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드나들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밤늦게 퇴근해도 살며시 초희의 방문을 열어 다녀왔다는 인사를 했다. 초희는 3주째 등 돌린 채 자는 척하기 바빴다. 엄마와 싸워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항상 이름 모를 무언가에 목말라 있었기에 쉬이 가시는 갈증이 아니었다. 엄마의 탓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초희는 엄마에게 애써 등을 돌렸다. 서러운 마음이 메마른 땅에 협곡을 하나 더 만들었다.






오늘도 똑같은 한숨을 쉬며 치킨집을 빠져나왔다. 코트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드니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찍혀있었다. 약 1시간 전후로 몰려 찍혀있었다. 모두 엄마의 번호와 수희의 번호였다. 


다시 걸어야 하는 전화임을 알면서도 다시 전화를 걸기 꺼려졌다. 무슨 말들이 쏟아질까. 혹시 수희랑 엄마도 싸웠나. 나 때문에? 초희는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조금 떨리는 손으로 수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희야. 언니 일 지금 끝났어. 왜 전화했어?”

“언니. 여기 병원인데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단 한 마디에 초희의 심장은 동강이 났다. 수희에게 재빨리 병원 이름만 물으며 한 손은 택시를 잡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니야. 무엇인지도 아닌지도 모른 채 초희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전 02화 첫사랑 (下)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