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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Jan 01. 2020

Happy New Year? (下)

성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정말 자유일까.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죽는다. 초희는 그 역설적인 말을 오늘 직접 겪었다. 턱 끝까지 숨차게 달려와서 맞이한 엄마의 모습은 빨갛고 차가웠다. 응급실 도처에 수희의 울음소리가 널려있었다. 앞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던 엄마가 초희에게 온전한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초희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손을 부여잡았다. 온기가 가신지 오래된 손은 가죽 지갑을 잡은 것처럼 딱딱했다. 현실감 없는 딱딱한 가죽에서 손을 떼었다. 아직도 엄마가 온전히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교통사고가 자유를 주고 두 아이의 엄마를 데려갔다.


검붉은 베드부터 하얀 국화 속에 파묻힐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희와 수희는 너무 서둘러 엄마를 보내는 것 같아 베드를 붙잡고 하소연해봤지만, 갓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와 더 어린아이의 힘으론 부족했다.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앳된 얼굴 둘이 상주 자리에 서 있었다. 그저 주변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둘 다 검은 소복을 입고 앙증맞은 흰 리본 핀을 머리에 꽂았다. 상주 두 명은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무서운데 엄마가 오질 않았다.






“괜찮아. 잘 될 거다. 무슨 일 있으면 여기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하고.”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중학교 동창이야. 무슨 일 있으면 아까 준 번호로 전화하렴.”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계처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다 정신을 다잡았을 때, 시계는 막 새벽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가게 끝날 시간이네. 지금은 매캐한 향냄새보다 지겹도록 맡았던 기름 냄새와 치킨 냄새가 그리웠다. 


초희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수희를 깨워 쪽방에 누였다.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덮을 만한 게 없었다. 동생에게 작은 담요 하나 쥐여주지 못해 부슬부슬한 머리만 몇 번 쓸어주었다. 쪽방 문을 닫고 나와 무수히 많은 흰 국화 속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초희가 사진을 마주 보고 바닥에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아보았다. 더는 성인답지 못하다는 잔소리가 쏟아지지 않았다. 지천으로 널린 매캐한 향냄새들만이 초희를 품어 주었다.


중간에는 보험담당자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제 엄마와 오래 알고 지냈던 지인이라 소개했다. 기억을 더듬으니 오늘 찾아온 사람 중 유일하게 얼굴이 눈에 익었다. 어릴 적 만날 때마다 매번 젤리를 사다 주어 젤리 이모라고 불렸던 이었다.


엄마 앞으로 생명보험이 들어있다고 했다. 홀린 듯 받아 든 서류뭉치에는 한수인이라는 엄마의 이름이 여기저기 찍혀있었다. 그 언저리쯤에는 모두 보험수익자로 한초희가 적혀 있었다. 보험수익자인 초희가 성인이 되어 직접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며 명함도 같이 쥐여주었다.


보험금. 초희는 엄마를 잃고 보험금을 얻었다. 당분간은 돈으로부터의 자유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였다. 이제는 초희의 소유인 게 확실했다. 


그런데 왜일까. 기대했던 것만큼 기쁘지가 않았다. 기쁘지 않음에 초희는 되려 기분이 나빠졌다. 이럴 리는 없는데. 분명 저는 뛸 듯이 기뻐야 했다. 사진을 바라보며 그 이유를 캐물었다. 아. 아직 자유를 누리지 못해서 그 기쁨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자유를 누리기 전에 먼저 밖으로 나가 상을 정리했다. 상갓집에서도 술 냄새는 초희를 놓아주지 않았다. 상을 정리한 후 초희는 다시 엄마의 사진 앞에 털썩 앉았다. 이번에도 잔소리는 기척이 없었다.


“이렇게 술을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엄마가 나중에 와인 마시는 법도 알려준다고 했었는데.... 혹시 맥주도 마시는 방법이 따로 있어?”


반항심에 가져온 맥주병을 보란 듯이 따서 잔에 부었다. 요령 없이 부은 맥주가 성을 내며 게거품을 물었다. 쓰으으읍. 눈을 질끈 감고 거품에 코를 박을 듯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맥주의 색은 오묘하니 예뻤지만, 맛은 그리 예쁘지 않았다. 쓰다. 기분이 좋을 때 먹으면 달까? 무의식적인 생각들만 이어졌다.


끄륵. 객기로 들이켠 맥주에 괜한 신트림만 올라왔다. 맥주 한 병을 다 비워도 멀쩡한 정신이었다. 이제 초희는 맥주도 시시해졌다. 역시 용준이 말했던 자유는 그리 좋은 것이 되지 못했다. 자유를 얻으면 어떻게 누려야 하는 거지? 대답해줄 사람이 없는 물음에 다시 한번 울적해졌다.


한쪽 구석에 놓인 투박한 박스가 보였다. 이제 박스를 열어보는 자유를 만끽할 시간이다. 초희는 어느새 반쯤 풀어진 눈으로 부스럭대며 박스의 입을 열었다. 박스를 여니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엄마의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같이 풍겨 왔다. 시신을 정리 후 유품을 정리해 놓은 박스인 듯 보였다. 보란 듯이 박스를 뒤집어엎었다. 초희는 인생 최대의 반항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피가 거뭍하게 굳은 옷가지를 들춰내니 검은 비닐봉지가 부스럭댔다. 비닐봉지를 지익 끌어당기니 조금 묵직했다. 묵직한 것을 보니 저번에 떨어졌다고 한 주방 세제를 사러 슈퍼에 나간 것 같았다. 주방 세제를 사러 갔다가 맞이한 죽음이라니. 인생 참 덧없지 않았을까. 초희는 봉투의 아가리를 벌려 속을 들춰보았다.


봉지 속에서는 초희가 좋아했지만, 이제는 비싸서 못 사 먹었던 망고가 비닐랩에 쌓여있었다. 며칠 전 TV 속 망고주스를 마시는 주인공들을 보며 맛있겠다 중얼거렸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초희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얇고 흰 스티로폼에 얹어진 망고를 꺼냈다.


그 밑에는 초희가 어릴 적 달고 살았던 젤리와 사탕들이 무더기로 숨어있었다. 초희는 이미 세상이 뒤집혔던 아홉 살 이후로, 써도 웃으며 삼키고 달아도 웃으며 뱉을 줄 아는 것밖에 익히지 못했다. 이제는 초희의 세상에 젤리와 사탕은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젤리와 사탕들을 꺼냈다.


그리고 제일 바닥에는 멸균 거즈와 붕대, 종류가 다른 두 개의 화상 연고가 구겨져 있었다. 한쪽 모서리가 찌그러진 연고들이 달그락거렸다. 그 소리가 꼭 심장을 구기는 소리 같았다. 나머지 것들을 꺼냈다. 속이 비어 나풀거리는 검은 봉투 속 어디에도 엄마의 잔소리는 담겨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저에게 어른답지 못하다는 말할 자격이 있냐 물었었다.


"그래서 잔소리도 하지 않는 거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

“아니야. 나 괜찮아요. 엄마 나 진짜 괜찮아. 지금은……. 지금은 뭐가 되었든 아무 말이나 해 봐요.”


지척에 개미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던 엄마는 수많은 국화 속에서도 여전히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초희를 품었던 향내가 이젠 조용히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애써 등을 돌렸던 밤들이 초희의 사지를 좀먹었다. 이제는 거의 다 나아가는 왼팔의 화상이 다시 온몸으로 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응? 이제 토 달지 않고 돈 벌어올게요. 응?"

-

"보험금 이따위 것 안 받고도 내가 돈 벌어 온다잖아! 말해도 된다고! 그러니까 뭐라고 말 좀 해 봐!"


잔소리 대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초희는 무슨 소리라도 질러보라는 심정으로 어머니의 사진에 연고들을 힘껏 내던졌다. 젤리와 사탕들도 잡히는 대로 던졌다. 바닥에 흩뿌려진 색색깔의 단 것들이 하이얀 국화와 대조되었다. 물건을 모두 꺼내 바닥에 어질러 놓았는데도 어른답지 못하다는 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후, 한동안 빈소에 끄억끄억 소리를 내는 여린 비가 내렸다.

초희가 억지로 성인이 된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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