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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Feb 24. 2020

환생 학교 졸업생의 3가지 소원 (中)

지옥에 가길 자처하는 자


"그렇다면 제 마지막 소원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지옥? 다음 생이 끝나면 지옥에 가고 싶다는 얘기인가?"

"아니요. 마지막 소원은 환생에 쓰지 않고 지금 당장 지옥에 가고 싶습니다."



 사자(使者)는 여느 인간 수석과 다르게 비교적 손쉬운 소원을 비는 다솜을 보며 한시름을 놓은 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소원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49일 동안의 심판을 잘 넘겨 지옥과 전혀 연관이 없는 저승 생활을 하던 인간이 갑자기 지옥에 가고 싶다는 소원은 이례였다.

 듣도 보도 못한 소원이었지만, 환생 학교 졸업생의 소원은 가능하다면 모두 이루어주는 게 관례였기 때문에 사자(使者)인 저는 그저 주어진 일을 행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먼저 환생 학교 졸업생이 지옥 방문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동자에게 저승에 갈 수 있는지 알아보라 일렀다. 동자가 심부름하러 다녀온 오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둘 사이엔 이전보다 무거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동자가 사자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지옥을 방문할 수는 있으나 형량이 존재하지 않은 다솜은 벌을 받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형량을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 일러주었다. 그리고 동자는 마지막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승 문지기가 너무 무서웠다며 다음에는 지옥에 심부름 가기 싫다는 투정도 부렸다. 사자는 동자의 볼에 흐르는 진땀을 연신 닦아준 뒤 수고했다며 위로를 건넸다. 



"다솜. 그대를 지옥에 데려다줄 수는 있다. 허나 다른 인간이나 생물 대신 형벌을 받을 수는 없다."

"압니다. 저는 벌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확인을 하고자 지옥에 가고 싶습니다."

"확인? 지옥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가?"

"....... 저를 죽게 한 자가 어떠한 형벌을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 환생하고 싶습니다."



 사자는 다솜의 말에 안쓰러움과 그득한 걱정을 옮겨 받았다. 인간으로서 선하지만, 아직 한이 남아있는 자로구나. 그는 환생 학교 사자로 발령받던 시절, 환생 학교에 입학하는 종들의 특징을 일러주었던 강의가 떠올렸다. 특히 인간이 한을 품으면 그 독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사자도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 재차 강조했었다. 또한 그 한을 무시한 채 환생시켰다간 이승은 물론 저승에서도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익히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죄수는 이미 사지가 찢겨나가는 걸 반복하면서 한이 승화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환생 학교 입학생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마냥 밝아 보이던 수석 졸업생에게 한이 있으리라 짐작지 못했던 사자는 추가된 일에 내심 한숨을 쉬었다. 내일 같이 지옥에 다녀온다면 졸업식 진행한 사자에게 주어지는 추가 연차는 언제 사용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그래도 인간의 한을 발견한 이상 저승사자로서 도리를 다해야 마땅했다.



"좋다. 내일 그대를 죽게 한 자가 있는 지옥으로 안내를 해주겠다."

"감사합니다."

"그대가 찾는 자가 어느 지옥에 있느냐에 따라 이동시간이 다르니, 우선 그자가 있는 지옥을 알게 된 후에 내일 어느 시에 만날지 동자를 통해서 언질을 주겠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솜의 고개가 다시 한번 깊이 숙여졌다. 사자는 얕게 같이 인사를 하고 동자에게 다음 인간의 졸업장을 넘겨받았다. 다솜도 제 졸업장을 받고 뒤돌아 멀어지자 동자들이 발을 굴러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때, 다른 이의 졸업장을 들고 다솜을 바라보던 사자가 한 손을 들었다. 손짓을 본 동자들이 재빨리 다시 발을 굴러 더 크게 공간을 닫아 바깥소리를 차단했다. 공간을 막 빠져나오고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막에 갇힌 다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썹으로 다솜에게 말을 건넸다.



"소원을 환생에 쓰지 않고 굳이 지옥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 쓰는 게 아깝지 않은가?"

"....... 아깝습니다."

"그대의 이번 생은 이미 끝이 났다. 다음 생을 위해 소원을 사용한다면 미래의 생은 이전 생보다 더 편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마지막 소원을 사용한 게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왜 굳이 죄인을 보러 지옥에 가려고 하는가?"



 다솜은 사자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미 끝난 과거 때문에 좋은 미래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법했다. 왜 나는 그를 보러 지옥에 가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다솜은 이내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당차게 대답을 내뱉었다.



"사자께서는 생전에 꿈이 있으셨습니까?"

".... 사자로 발탁되면 이승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 이승에서는 모르겠지만, 저승에서는 꿈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저는 석 달 전, 이제 막 꿈에 발을 들인 인간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지겨운 시험을 치르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

"합격 소식을 듣고 기분 좋게 케이크를 사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도중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 그래. 그대는 사고사로 기록이 되어있다."

"눈을 떠보니 제가 발밑에 피를 뒤집어쓴 채 누워있더군요. 맞은편 차량 위에도 혼이 하나 떠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저를 죽인 자와 같이 사자(使)의 부름을 받고 저승으로 왔습니다."



 잔잔하게 깔려있던 다솜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눈에서는 한이 조금씩 밀려 나왔다. 하나둘 뚝뚝 떨어지는 한에 언덕 위의 풀이 제 빛깔을 잃었다. 사자는 풀이 제 빛깔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의 슬픔을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승문 앞에서도 술에 취해 제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속에서 열불이 터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잘 못 알아듣더군요."

"음주운전이었나 보군."

"네. 저는 그렇게 음주운전 때문에 생과 꿈을 모두 잃었습니다."

"......."

"저는.... 아직도 그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러 갑니다. 술에 취해 제 모든 걸 빼앗았는지도 모르는 인간이 어떤 벌을 받고 있는지요."

"....... 내일 지옥에서 그자를 보고 흡족했으면 좋겠구나. 알겠다. 졸업식이 끝나고 언질을 주마."



 사자가 다시 손짓하자 동자들이 발을 굴러 막을 걷어냈다. 걷힌 막에서 걸어 나올수록 발밑에서 올라오는 풀 내음이 서서히 퍼졌다. 코를 훌쩍이며 언덕을 내려오는 다솜의 뒤에는 한이 묻어 제빛을 잃은 풀이 같이 슬피 울고 있었다.







 졸업식 다음 날 다솜이 동자에게 언질 받은 시간과 장소로 나가니, 사자가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표정에 지레 질겁 겁을 먹은 다솜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가는 걸음걸음마다 구름길이 푹푹 꺼졌다 올라오길 반복했다. 다솜이 어제의 일은 잊은 듯이 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나 보네요."

"아니다. 내가 조금 빨리 나온 것이니 심려치 않아도 된다. 가자."

"네."



 사자의 손짓 한 번에 그들이 서 있던 구름 언저리가 다른 구름과 뚝 떨어져 붕 떠올랐다. 깜짝 놀란 다솜이 털썩 주저앉아 몽실몽실한 구름을 꽉 붙잡든 말든, 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솜과 같이 구름을 타고 지옥문으로 향했다.



"....... 구름은 구름이네요."

"뭐라 했느냐?"

"아닙니다...."



 다솜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구름 옆을 푹푹 찔러보았다. 저승에 와서 제일 신기한 모습 중 하나가 도보가 모두 구름이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구름 모양에 푹신한 길이라 쉬이 넘기고 말았었는데, 이 구름이 제가 알던 진짜 구름이 맞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새삼 저승세계가 경이롭게 보였다.

사자는 곁눈질로 중얼대며 구름을 푹푹 찌르고 있는 다솜을 보곤 혀를 찼다. 이렇게 맹해 보이는 인간이 어떻게 환생 학교 수석을 차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구름을 자꾸 찌르면 제가 더 구름 바닥을 견고히 만들려 집중해야 하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한마디 할까 하다가 어차피 저승살이도 머지않은 이이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살인을 저지른 자를 묶어두는 지옥은 제일 깊은 곳에 있는지라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사자는 어제 서럽게 울리던 풀 소리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깊은 한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한이 빨리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솜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네 이전 생을 살펴보니.... 예기치 못한 마가 끼었더구나. 그래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이렇게 다 쓰지도 못한 많은 운이 남은 거겠지."

"......."



 다솜은 울컥 억울함이 밀려왔다. 예기치 못한 마. 그게 그 인간이구나. 사자의 얘기가 착착 들어맞자 다솜은 구름을 찌르던 손을 멈추었다.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서러움이 밀려 나왔다. 사자는 이러다 또 한이 방울져 구름 위에 떨어질까 봐 얼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다음 생은 이번 생보다 몇 배로 평탄할 게다."

".... 네에."

"....... 동족에게 살생을 행한 자이니, 형벌은 톡톡히 받고 있을 것이다. 어제 알아보니 기본적으로 자질이 그리 좋지 못한 자 더구나."

"그랬군요...."

"그래. 아마 살생에 대한 벌을 받고도 다른 지옥에서 또 다른 형벌을 치르게 될 게다....... 울지 말거라."

"안 웁니다. 어제 흘린 눈물도 아깝습니다."

"다행이구나."



 한을 조금 더 빨리 풀어주려 했다가 오히려 구름을 잃을 뻔한 사자는 놀란 가슴을 다스렸다. 저러다 어제처럼 인간의 한이 구름 위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구름이 힘을 잃어 둘 다 떨어져 다칠 테고, 그러면 다솜의 환생이 늦어지니 그 기간만큼 쌓이는 보고서가 어마어마할 터였다.


 죽은 오래된 사자는 감정이 무뎌진 지 오래였다. 비슷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공감이 필요한 걸 앎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감정 자체가 미미하게 남아있으니 한을 달래주기가 매우 힘들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 생각한 그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 지옥문으로 향했다.  







 거대한 지옥문이 열리며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었다. 다솜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 귀를 꼭 막았다. 지옥문이 닫히고 두 귀에서 손을 뗀 그는 곧바로 다시 귀를 막는 수밖에 없었다. 높이 떠오른 구름 밑 지옥에서는 처절한 절규가 끊이지 않았다. 절규 사이를 뚫고 사자가 지옥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은 팔열지옥이다. 살생, 절도, 음행, 폭행 등 다양한 죄질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지옥에서 형벌을 채우게 된다."

"네에...."

"살생을 저지른 자들은 팔열지옥에 골고루 퍼져 형을 받는데, 네가 찾는 자는 꽤 많은 살생을 저지른 자이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동족 살생을 저질렀기 때문에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에 갇혀있다고 한다."

"다른 살생과 동족에 대한 살생은 다른가요?"

"물론 다르다. 제아무리 미천한 생물일지라도 기본적으로 동족에게 살을 행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름 이승에서 고등동물로 꼽히는 인간이 동족에게 살을 행했으니 매우 중죄로 엄벌이 처하는 게 당연하다."



 인간의 목소리가 제일 많이 들렸지만 이따금 다른 동물의 소리도 울려 퍼졌다. 인간과는 반대로 동물은 대부분 환생 학교에 입학하는 편이었기에 다솜은 두 귀를 꼭 막은 채 구름 아래를 슬쩍슬쩍 내려다보곤 했다. 사자는 어느 종일지라도 동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동족을 살해하면 어김없이 지옥에 오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저기 보이느냐. 저기가 대규환지옥문이다."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던 다솜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분명 지옥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눈앞에는 그보다 더 큰 쇠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규환지옥문 옆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수문장이 수십 개의 눈알을 굴리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수문장 둘의 수많은 눈이 일제히 사자와 다솜을 째려보며 경계했다.

 사자가 공손히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리자 다솜은 엉겁결에 사자와 같이 수문장에게 예를 갖췄다. 그와 수문장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번 주고받더니 일제히 다솜에게 시선이 쏠렸다. 한 번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눈알이 몰렸다. 다솜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좋은 인상을 남겨야 문을 열어 줄 듯한 수문장의 모습에 애써 웃어 보였다. 눈알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솜을 훑어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수문장들이 서로 다른 창을 엇갈린 채 발을 두어 번 구르자 대규환지옥문이 스르르 열렸다. 

 사자는 다시 수문장들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다솜도 덜덜 떨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은 채 똑같이 인사를 올렸다. 바로 대규환지옥문 안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사자가 뒤를 돌아 아까보다 낮은 목소리로 다솜에게 경고를 고했다.



"미리 경고하는데 그대는 여기서부터 단 한마디도 내뱉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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