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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Feb 24. 2020

환생 학교 졸업생의 3가지 소원 (下)

한(恨)을 없애는 방법


"미리 경고하는데 그대는 여기서부터 단 한마디도 내뱉어선 안 된다."

"왜, 왜요?"

"이곳에서 형벌을 받는 자들은 짧게는 백 년, 길게는 만 년이 넘도록 매일 살이 찢기고 다시 붙는 과정을 반복한다. 찢기고 다시 붙는 과정이 덧대어질수록 산 자일 때 가졌던 온기가 같이 사라진다."

"....... 살이.... 찢겼다 다시 붙...."

"그래서 새로운 죄인이 들어오게 되면 형벌을 받기도 전에 기존에 있던 죄인들에게 갈가리 찢기게 된다. 산 자의 온기를 시기하고 뺏으려는 몸부림이지."

"......."

"그대는 형벌도 받지 않고 온전히 환생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비교적 산 자의 온기가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그러니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 게 좋아. 죄인들이 그대의 온기를 뺏으려 할 수 있으니까."

"알.... 알겠습니다."

"죄인이 너무 많이 달라붙으면 나도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절대 입을 열지도 말고 소리를 내지도 말거라."



 다솜은 울상을 단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주의사항이 있었으면 여기 안 왔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제 확실히 말려주셨어야죠. 사자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지옥문을 목전에 두고 있어 한 마디도 내뱉기 두려웠다. 게다가 제 발로 오겠다 했으니 여기서 꼬치꼬치 따지면 모양새가 굉장히 좋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 다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은 다시 속도를 내어 대규환지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옥을 내달리다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다솜은 무슨 일이냐는 눈썹으로 눈을 크게 뜨고 사자를 바라보았다. 사자가 힐끗 구름 아래에 눈짓을 던졌다. 그리곤 두 귀에서 손을 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솜은 그의 말대로 두 귀에서 손을 살짝 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처절한 맺힘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떨어지기 싫어 구름을 꼭 부여잡고 아래를 슬그머니 내려다본 다솜은 그만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생지옥. 다솜이 대규환지옥을 보고 처음 떠올린 단어였다. 바늘이 무작위로 땅에서 치솟아 오르길 반복했고, 집채만 한 쇳덩이 몇 개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죄인들을 짓눌러 터뜨렸다. 또한, 하늘에서 커다란 도끼날이 장대비처럼 내려와 죄인들을 동강 내기도 하였고, 바늘이 솟아난 후 빠져나간 자리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피칠갑한 죄인들을 계속 태웠다. 

 지옥의 집합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비규환인 대규환지옥을 본 다솜은 귀를 막던 손으로 입을 꾹 막았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듣지 않았다면 진작에 소리를 질렀을 법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중에 자신을 죽인 자가 있다 했지만, 모두 어딘가가 잘려 나가거나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기에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때, 지옥의 하늘이 쩌적하며 갈라지더니 그 사이로 동물 몇 마리와 수많은 인간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재빨리 하늘이 닫히자마자 죄인들이 살이 찢겨가면서도 새로 지옥에 들어온 자들에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산 채로 그들의 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오늘 심판을 받고 온 자들이구나."

"......."

"그럼 한동안은 여기저기 뜯어 먹히기 바쁠 게다. 나중에 제 몸을 다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

"형벌을 마치고도 제 몸을 다 찾지 못하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러니 이 넓은 지옥을 쏘다니며 제 몸이 어디 있는지 찾아다녀야 하지. 물론 가는 걸음마다 다시 찢기고 잘려 나가는 걸 반복하겠지."

"......."



 다솜은 어차피 환생하면 지옥을 본 기억이 모두 사라질 테지만, 환생해 나무로 산다고 하여도 절대 중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뼈에 새겼다. 그 와중에도 오늘 심판을 받은 자들에게 몰려드는 죄인이 점점 늘어나 산 형태를 이루었다.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제 눈에는 온기를 향한 본능밖에 남지 않은 야생 들짐승처럼 보였다.



"저기 있구나. 네가 찾던 죄인."

".......!"

"저기 얼굴과 왼팔이 없이 걷고 있는 자가 보이느냐."



 다솜은 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죄인들을 오늘 떨어진 죄인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가 가리킨 인간은 오히려 산더미처럼 쌓인 죄인 사이를 헤치고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이 없어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피로 얼룩진 옷차림새가 다솜이 죽기 전 보았던 음주 운전자의 행색과 똑같았다.



"눈이 없으니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저자도 여기 오래 있던 죄인들에 비해 죽은 지 얼마 안 된 축에 속하기 때문에 다시 잡아먹히지 않으려 무리에서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

"온기를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뇌와 심장도 없구나.... 눈이 없으면 제 몸을 찾기도 어려우니 저자는 꽤 오래 지옥을 떠돌겠구나. 게 중에서도 운이 없는 자로군."

"......."



 다솜은 술에 취해 흐리멍덩하던 그 눈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제가 울며 당신 때문에 죽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귀찮다는 듯이 바닥에 뻗어 헤롱 대었던 자였다. 그 눈을 잃었다니 한편으로는 통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작게 남아 남아있던 인류애가 기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얼굴과 왼팔이 없이 절뚝절뚝 걷던 그는 다시 바닥에서 올라온 바늘에 꼬치처럼 꿰어졌다. 입이 없어 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내 바늘이 올라온 자리에서 솟아나는 용암에 온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곧바로 하늘에서 도끼날이 쏟아지자 타고 있는 그의 허리통을 잘랐다. 제각각 떨어져 새까맣게 타고 있는 몸뚱이가 펄떡였다.



"죄인의 모습을 보고 나니 만족스러우냐."

"......."

".... 확인도 하였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돌아가도 되겠느냐."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다솜이 두 번째 질문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사자 뒤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지옥을 빠져나갔다. 모든 지옥문을 다 통과하고 나서도 다솜의 고개는 올라올 생각이 없었다. 사자는 기숙사 앞에 다솜을 내려주곤 되물었다.



"죄인의 모습을 보고 나니 만족스러우냐."

"....... 아뇨."



 똑같이 아무 대답이 없거나 그렇다는 대답을 할 줄 알았던 사자는 내심 놀랐다. 더 심한 형벌에 처하길 원하는 걸까. 고개를 들지 않는 모습에 한이 아직 풀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자는 먼 하늘을 한 번, 다솜을 한 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어떤 형벌을 더 받아야 네 한이 풀어질 것 같으냐."

"잘 모르겠어요."

"....... 잘 모르겠다라."

"분명 그 인간이 많이 고통스럽길 바랐는데.... 그랬는데 직접 보고 나니 제 생각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어서 솔직히 좀 놀랐어요."

"......."

"그렇게 고통받는 인간을 보니 그가 아주 조금은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계속 화가 나요. 서로 다른 감정이 계속 들쭉날쭉해서 너무 힘들어요."

"......."

"술을 먹고 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그 인간도 저도 그냥 평온히 각자 삶을 살았을 텐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왜...."



 다솜은 처절하게 몸이 잘려 나가고 타들어 가는 그를 보자 더는 원망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인 듯했다. 그래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들먹였다. 애초에 그러지 않았다면 저도 그 인간도 이렇게 고통받지 않았을 터라며 되뇌었다.



"환생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이전 생에서 겪은 모든 일을 용서해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 네. 그런데 전......."

"안다. 힘들 테지. 사실 나도 그렇게 가르치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저 사자(使者)는 염라대왕님의 심부름대로 움직일 뿐이니 그렇게 가르치는 게지."



 다솜은 그의 솔직한 고백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다시 한이 울먹울먹 나오기 시작한 눈가는 흠뻑 젖어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조금은 따뜻한 말을 내뱉었다. 다솜은 그 온기를 놓칠세라 희뿌연 시야 사이로 그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여기서 오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말이다. 참으로 다양한 한(恨)을 보게 된단다. 그리고 그 수많은 한이 꼭 모두 사라진 후에 환생하지도 않는다. 그대로 가지고 다시 이승으로 가는 자도 많아."

"......."

"그런데 말이다. 나중에 한을 가지고 환생한 이는 꼭 제 한에 생이나 운을 잡아먹히는 결과를 맞이하더구나. 한에서 품어져 나오는 독이 결국 제 일을 그르치게 되지."

"......."

"그 한을 다시 가지고 환생해도 좋다. 하지만....... 네 다음 생을 위해서 나머지 한은 저승에 두고 갔으면 좋겠구나."

"어떻게 하면 두고 갈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한을 가진 자가 다스려야겠지."

".... 되게 무책임하시네요."



 사자는 어깨를 으쓱 한 번 치켜세우며 저도 모른다는 손짓을 덧붙였다. 다솜은 그의 모습에 동물에게 저런 몸짓을 배우진 않았을 테니, 그도 인간일 적 버릇이 아직 남아있다 여겼다. 그래도 예의상 고맙다는 말을 남긴 다솜이 뒤를 돌아 기숙사로 향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다시 사자의 말이 다솜을 붙잡았다.



"한()마다 풀어지는 방법이 매우 다르다. 나는 그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일러줄 수는 없다. 허나 인간들이 자주 쓰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다."

"뭔데요?"

"인간은 글을 쓸 줄 알며 제 생각을 어디엔가 남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고 살지. 인간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거든."

"......."

"그대도 종이에 글을 남겨 보거라. 듣기로는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후련한 기분이 든다고 하던데. 글쎄. 나는 후련함이라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르겠구나. 다들 좋은 표정을 지었으니 좋은 감정이겠지."

"......."

"아, 물론 종이는 그대가 기숙사를 퇴소한 후에 모두 소각된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솜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다시 기숙사로 향했다. 다솜이 기숙사로 들어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사자는 품에서 다솜의 이전 생에 대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펼쳤다. 그러곤 종이를 곱게 접어 '정다솜'이라는 이름을 쓸어보았다. 이윽고 어제와 같이 노을 진 하늘을 한 번 바라보며 다시 구름을 띄운 사자가 유유히 제가 가야 할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름 그대로 사랑을 많이 받아 선하게 자랐구나.... 그래. 그런 인간도 있는 법이지."







 기숙사에 들어온 다솜은 의자에 앉아 먼저 종이 맨 위에 이름 석 자를 적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내키는 대로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적기 시작했다. 종이에 검은 한이 뚝뚝 묻어났다. 중간중간 억울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꾹꾹 꾸준히 손을 놀렸다.


  한참을 써 내려가던 다솜이 드디어 종이 위에서 손을 떼고 펜을 내려놓았다. 나름 제 기분을 다 쓴 것 같은데 아직도 후련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사자가 던진 말에 속았다고 생각할 즈음, 토끼가 밥 먹을 시간이라며 문 구석을 이로 긁었다. 다솜이 조금 젖은 눈가를 닦으며 토끼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다솜이 방을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종이에서 한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조금 열어둔 창 사이로 한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솜 : '사랑'을 뜻하는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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