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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Apr 05. 2020

부디 내게 거짓말을 해 줘 (下)

인간은 하루에 얼마나 거짓말을 할까



신선의 농간에 사람이 된 지 삼 일째. 뱀은 해가 세 번 누이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걸 받고 배웠다. 제일 처음 받았던 건 사람이 입는 옷이었다. 맨몸으로 바닥을 헤치며 살아간 세월이 어언 몇 년인지라 처음에는 부스럭대는 천 쪼가리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옷이란 게 생각보다 따뜻하고 햇볕에 나가 있어도 피부가 갈라지듯 건조하지도 않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번째로 받았던 건 음식이었다. 순박한 부부는 염려대로 뱀을 아니, 인간의 형상을 한 뱀을 키우기 시작했다. 투박한 남자가 옆에 앉은 여자에게 뭐라 뭐라 말하자 손뼉을 치며 나갔던 여자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작은 나무다리 위에 얹어 가져왔다. 


생전 처음 ‘앉는다’라는 것을 해 본 뱀은 허리를 바르게 펴고 ‘앉는다’라는 행위를 하는 게 여간 불편했다. 흐느적거리며 자꾸 옆으로 기울면 여자가 궁둥짝과 허리라고 부르는 그 어딘가를 내려치면서 또 뭐라 뭐라 소리를 내뱉었다.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좋지 않은 소리일 게 뻔했다.


뱀이 못 이기는 척 어설피 허리를 세우고 밥에 바로 입을 가져다 댔다가 또 혼이 났다. 그는 다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뱀의 작은 손에 둥그런 모양 나무 작대기를 쥐여주더니 그대로 고사리손을 잡고 밥을 퍼 입에 넣어주었다. 뱀은 나중에 이 행위가 ‘숟가락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귀찮게 밥을 먹을 때에도 바로 먹지 않고 도구를 사용해서 먹었다.


뱀은 입을 바로 가져가면 손을 쓰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왜 굳이 그렇게 먹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 역시 3일이 지나 열 번 넘게 반복하다 보니 이제 숟가락이 없으면 오히려 밥 먹기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젓가락은 아직도 힘이 들어 쥐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자도 어설프게 숟가락질하는 뱀이 바로 젓가락질을 하는 건 무리라고 여겼는지, 매번 뱀 몫의 젓가락을 놓아주기만 할 뿐 젓가락을 쥐지 않아도 혼을 내지 않았다. 그저 뱀이 숟가락으로 퍼내기 어려운 반찬과 말없이 싸우고 있으면 그도 말없이 뱀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놓아주길 반복했다. 


음식을 씹는 행위도 여러 번 하다 보니 곧잘 하게 되었다. 하지만 뱀은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식을 씹는 행위가 싫었다. 잘게 부숴서 목구멍으로 넘기니 오히려 소화도 빠르고, 끼니를 하루에 무려 세 번이나 먹어야 하며, 가끔 ‘이’라는 하얀 틈새 사이사이에 음식이 끼어 불편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음식을 씹지 않고 넘기면 또 ‘어머니’라는 사람이 궁둥짝이라는 부위를 매타작할 게 뻔했다. 서로의 조용한 식사 시간을 위해 뱀은 마지못해 어머니라는 인간 말을 따르자 생각했다.


3일이라는 시간. 제 남은 생의 반절 정도를 보내니 뱀은 인간도 마냥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을 때가 많았다. 해가 지면 세 식구가 모여 작은 방에 옹기종기 똬리 틀듯 엉켜 자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인간의 행위나 말은 배울 게 참 많았다. 뱀이 3일 동안 지켜본바,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큰 물건 여러 개를 이고 지고 아침에 나가면 해가 질 무렵에야 돌아올 때가 많았다. 뱀은 맨 처음에 소 냄새와 비료 냄새를 가득 묻히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어느새 그 냄새는 아버지 냄새로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집에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쫄래쫄래 따라다니기 바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 밖을 나가면 부엌이고 방이고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집을 쓸고 닦았다. 그리고 할 일이 다 끝난 듯하면 또 어디선가 귀신같이 다른 일거리를 들고 왔다. 그는 자주 햇볕 좋은 쪽마루에 앉아 한참 이름 모를 풀을 다듬거나 엮었다. 뱀은 어머니가 짚이라는 풀을 엮을 때가 제일 좋았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손을 휘저으며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데, 짚을 엮을 때는 어머니가 먼저 옆자리를 퉁퉁 내리치며 이리 오라 손짓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뱀은 특히 어머니가 짚을 엮을 때마다 저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참으로 좋았다. 보이지 않는 애정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는 언제나 반가웠다. 그래서 어머니가 짚을 들고 쪽마루에 앉을 무렵이면 일부러 어머니가 부를 때까지 마당 구석에 앉아 괜히 풀을 뜯기도 했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쪽마루를 퉁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아. 흙 털고 이리 와. 어여.”


복은 소리를 듣자마자 냉큼 옆자리로 가서 옆자리를 꿰찼다. 사부작사부작 짚 엮는 소리와 따뜻한 햇볕이 어우러지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이내 어머니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 가끔 내려앉는 거친 손마디가 너무 기분이 좋아 어머니가 계속 짚을 엮었으면 하는 건 복의 비밀이었다.


이렇듯 뱀이 세 번째로 받은 건 바로 이름이었다. 그들은 뱀을 ‘복’이라 불렀다. 이름을 받을 때는 몰랐지만, 한참이 지나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고도 남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부모는 산에서 주워 온 저를 정말 복(福)이라 불렀다는 걸. 글을 알게 되어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었다. 


산에서 뚝 하니 떨어진 뱀 아니, 아이가 무어 그리 좋았을까. 복은 가끔 제 이름 복(福)과 살모사 복(蝮) 자를 나란히 써보곤 했다. 영 틀린 발음은 아니니 글도 모르는 제 부모가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웃는 날도 아주 가끔 있었다. 


먼 미래 따위 모르는 어릴 적 복은 일곱 번째 해가 지는 날이 다가오자 너무 무서웠다. 온 가족이 잠을 청하려 자리를 잡을 무렵 처음으로 눈물방울을 짜내었다. 별안간 터진 울음은 울다 지쳐 잠이 들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부모는 말도 없이 우는 아이가 답답하면서도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그저 한 손은 어머니, 한 손을 아버지를 붙잡은 고사리손을 한없이 어루만져 주었다. 낮에 무엇을 보았길래 그리도 무서웠던 걸까 어림짐작하며 밤새 달래주었다. 한참을 안아주고 달래주어도 여전히 고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설마 제 아이가 죽음이 무서워 울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 어?”

“복아. 아가 인났어? 니 어미 여있다. 이제 안 무서운겨?”


하지만 복은 어김없이 여덟 번째 해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 사이에 인간의 거짓말을 하나라도 들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죽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 이후로 복은 해가 지기 무섭게 부모를 한 손씩 잡고 놔주질 않는 아이로 변했다. 낮에는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잘 놀다가도 밤만 되면 부모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말귀는 알아듣지만, 아직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복이 걱정된 부모는 그저 아이를 꼭 안고 잠이 드는 수밖에 없었다.


복은 불안에 잠 못 드는 밤을 여러 번 거쳐 사람들의 거짓말을 먹으며 무리 없이 자라났다. 기약한 일주일보다 이틀, 여드레, 한 달. 그리고 한 달을 넘어 일 년, 이 년, 삼 년…. 그렇게 28년을 무리 없이 살아냈다. 처음에 복은 인간으로 변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받았을 때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왜 계속 살아있지? 인간이 이렇게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난 거짓말을 하나도 못 들은 거 같은데. 


하지만 어김없이 다음 해를 맞이하는 순간이 오기를 계속 반복하자, 복은 신선이 매우 어리석은 신선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열매 하나도 쉬이 나눠주지 않는 영감이 인간 세상 물정을 정말 몰랐던 게지.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거짓말을 아예 하지 않고 살아갈 거로 생각하다니.


그날의 결론 이후로 복은 신선도, 제가 뱀이었던 사실도 잊고 살기로 했다. 이미 인간의 삶과 행동에 익숙해졌고 성인이 되어 자식을 보고 가정을 꾸린지도 오래였다. 복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모든 집안이 평온했으며, 부모가 서서히 늙어가는 세월에 익숙해지는 어른도 되었다. 이미 뱀의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산 복은 이만하면 여한이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복은 너무 큰 간과를 저질렀다. 성인이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웃고 떠드는 사이사이에 제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쏟아지는지 알지 못했다. 연륜이라는 게 조금 쌓여서 어설픈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구별해내지 못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음을 매우 절실히 깨달은 복이었다.


부모가 흙으로 돌아가고 자식마저 성인이 될 무렵에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젊은 청년 모습에서 더는 늙지 않는 복이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복은 자신도 정확한 제 나이는 몰랐지만, 엇비슷한 나이 또래 사람과 저의 노화 속도가 매우 다름을 눈치챘다. 되려 복이 먼저 다른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했을 때도 이즈음이었다. 


소문이 다리 없이 천릿길을 내달렸다. 적토마보다 빠른 속도에 복은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모든 걸 말해준 뒤, 제가 가진 재산과 집을 남겨둔 채 먼 길을 떠나야 했다. 그 길로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제가 머물렀던 산으로 돌아갔다. 


먼 기억을 더듬어 신선의 나무가 있던 곳으로 깊은 산길을 굽이굽이 헤쳐나갔다. 그리고 그 먼 산길을 헤쳐나갈수록 복은 점점 저 자신이 무서웠다. 저는 신선 나무를 찾아 아무리 산길을 걸어도 크게 지치지 않았다. 나무에 기대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멀쩡히 다시 산을 걸을 수 있었다. 


게다가 끼니를 걸러도 배가 크게 고프지 않았다. 끼니를 3일 이상 걸렀음에도 한 끼를 굶은 듯한 공복감만 계속 유지될 뿐, 극심한 배고픔이나 쇠함이 찾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거지?


나무를 찾아 헤맨 지 여드레 만에 신선 나무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신선 나무는 지나간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가 먹은 열매가 있던 자리에는 여전히 열매가 자라지 않았다.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슬그머니 신선이 옆자리를 꿰찼다.


“어떠냐. 인간의 삶을 사는 게.”

“도대체 저는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겁니까. 그리고 왜 늙지를 않는 겁니까.”

“그것을 나에게 물으면 어떻게 하느냐. 인간들에게 물어야지.”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간들이라니요.”

“네가 수명의 끝에 다다라야 늙어갈 게 아니냐. 도대체 나에게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참인가? 라고 인간에게 물어보거라.”

“그럼 지금부터 인간의 거짓말을 듣지 않으면 이 나무 아래서 언젠간 죽겠군요."

“그러겠지. 어디 보자…. 점이 하나, 둘. 목에만 점이 2개가 있구나.”

“점이 무슨 상관입니까? 인간은 살다 보면 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너는 본디 인간이 아니지 않으냐.”


복은 뒤통수를 매우 세게 때려 맞은 기분이었다. 본디 인간이 아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제 모습이 생각났다. 저는 본디 뱀이었던 동물이었다. 말문이 막힌 복을 바라본 신선은 혀를 차며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으냐?”

“…….”

“그럼 네 몸에 있는 점이 개수를 세 보거라.”

“점 말입니까?”

“그래. 네 몸에 있는 점 하나에 100년은 더 살 게다. 목에만 점이 두 개 있는 걸 보니 거뜬히 이백 년을 살고도 남는다는 소리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인간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사는 줄 아느냐?”

“…….”

“그리고 그 거짓말 중에 악한 마음을 먹은 거짓말은 자연이나 인간에게 얼마나 해로운 줄 아느냐?”

“…….”

“그게 내 열매를 먹은 대가이니라.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 너의 소중한 사람과, 자연, 그리고 만물이 어떻게 늙고 망가져 가는지 잘 보아라.”


신선은 복에게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겁을 주었지만, 사실 그는 인간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 힘들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거짓말이 소위 인간이 말하는 나쁜 거짓말인지 착한 거짓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거짓말 한마디에 복은 더 많은 죽음과 자연의 파괴를 직접 보며 살아가야 했다. 게다가 늙지 않는 몸으로 기약도 없는 영원을 삶과 동시에 한곳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게 되었다.


신선이 사라지고 난 뒤 복은 제가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몸의 점을 모두 세어보았다. 이미 제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점만 20개가 넘었다. 복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속절없이 맑은 하늘에 더욱 앞길이 깜깜했다. 신선 열매를 탐하고 한때 인간으로 즐겁게 살았던 삶의 대가가 2000년이라는 시간으로 환산되어 내려졌다. 벅찬 시간의 무게에 갈 길을 잃은 복은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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