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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Feb 22. 2020

환생 학교 졸업생의 3가지 소원 (上)

그대는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나길 바라는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저승의 가장 밝은 하늘 아래서 환생 학교의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졸업생들은 각자의 자리에 줄을 맞춰 앉아 사자(使者)의 호명에 따라 제 졸업장을 하나씩 받아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강아지, 닭, 노루, 호랑이 등 온갖 동물들이 모이니 도떼기시장처럼 왁자지껄했다. 인간계 맨 앞줄에 앉은 다솜 또한 옆에 앉은 토끼와 신나게 수다를 주고받았다.




다솜. 다음 뭐 태어나? 원해?


"뭐로 태어나길 원하냐고? 음.... 비밀!"


....... 다솜 치사해.


"치사해? 금세 또 말을 배웠네. 치사하다는 말 누가 알려줬어?"


영우 알려줬다.


"영우 쟤는 좋은 말을 알려 줄 것이지. 저번에 밉상 알려준 것도 영우야?"


나는 다람쥐 원해. 어제 알려줬다. 치사해. 다솜.




 저승에 와서 제일 좋은 점 중 하나가 종마다 언어는 다를지언정,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다른 종과 간단한 의사소통이 된다는 점이었다. 다솜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면 머릿속에서 마음소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웅웅 울려 퍼지는 게 아직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미워. 좋아. 싫어. 사랑해. 아파. 고마워. 정도의 감정표현을 하는 데 그쳤었는데, 다들 인간에게서 말을 하나둘 배운 뒤로는 감정표현 이외의 말도 곧잘 했다. 말을 알려줄 때도 인간마다 방식이 달랐다. 다솜은 발음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꼭 입으로 생각을 말해주는 편이었다.


 종마다 언어를 습득하는 차이가 매우 컸지만, 토끼 같은 경우에는 졸업할 즈음이 되면 3-4 단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말을 구사했다. 어설프게나마 총총 말하는 토끼는 언제 봐도 귀여웠다. 다솜은 치사하다며 입을 불만스럽게 꼬물거리는 토끼의 등을 두어 번 쓰다듬어 주었다. 복실복실한 귀가 쫑긋거리며 기분 좋게 움직였다.


 다솜의 옆에 앉은 토끼는 화장품 유해성 테스트를 위해 평생 마스카라를 눈에 바르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토끼였다. 서로 환생 시 필요한 교육내용이 달랐기 때문에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오가며 제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다솜이 인간 말을 가르쳐 준 친구였다. 처음 토끼를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첫 만남부터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기에 제일 마음이 쓰인 친구이기도 했다.


 토끼는 복도에서 다솜을 보자마자 연신 마음소리로 '아파' '인간'을 외쳐대며 토끼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었다. 다솜은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미안하다며 등을 토닥여주려 했었다. 하지만 뒷발로 매섭게 발길질을 날리는 토끼에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이후 토끼 담당 사자(使者)의 설명을 듣고 나니 다솜은 이승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마스카라가 많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미안했다.


 다솜이 처음 환생 학교에 들어와서 다양한 동물에게 제일 많이 건넨 말은 '미안해'였다. 모르고 낚싯줄이나 노끈을 먹다가 장이 썩어 죽은 거북이도 만났고, 쓸개즙 채취를 위해 가슴에 호스를 꽂고 산 곰도 만났다. 인간인 다솜을 만나면 토끼처럼 다짜고짜 엉엉 울며 화를 내는 동물도 많았다. 다솜뿐만 아니라 환생 학교에 있는 몇 안 되는 인간들은 학교에 입학하면 사과를 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환생 학교에 입학하는 수 자체가 현저히 적었기 때문도 있었다.


 환생 학교는 49일 동안 모든 심판을 통과한 생물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졸업생은 지옥에서 환생한 다른 생물보다 기본적인 운과 덕을 더 가진 상태로 환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따라서 환생 학교는 이승에서 다른 생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하게 살았으니, 다음 생을 더 잘 살 기회를 주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심판을 통과하지 못했다. 서슴없이 생물에게 상처를 입히고 살(殺)을 행하며, 심지어 같은 종인 인간을 해친 인간도 여럿 있었다. 그래서 환생 학교에 입학하는 인간 수가 아주 적었고 오히려 환생 학교에 입학한 인간은 신기한 동물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인간이 처절한 절규를 외치며 화염이 들끓는 지옥이나 살갗이 찢어지도록 시린 지옥에 갇힌 채 각자의 형벌을 짊어졌다.


 다솜이 환생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예전보다 인간의 입학률이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다. 태초가 열리고 인간이 입학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1% 미만의 인간만이 환생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다솜은 학교에 입학해서 이 수치를 듣고는 제가 1% 안에 들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살았길래 평범하게 산 제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는지는 졸업식 날 당일까지도 의문으로 남았다.


 토끼가 기분 좋게 귀를 움직이다가도 아직 조금 불만스러운지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온몸으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토끼가 귀여웠던 다솜은 아주 작게 다음에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은지 속삭여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토끼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커다랗게 뜨며 조금 더 높은 마음소리를 내었다.




왜? 다솜 다음. 안 움직여.


"응. 알아. 그래도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안 싫어?


"응. 안 싫어. 좋아."


....... 그래. 나도 좋아. 다솜 알려줬다. 고마워.


"나도 고마워."




 대화를 마치자마자 높은 언덕 위에 사자(使者)가 나타났다. 평소와 다른 사자의 모습에 모두가 조금 더 크게 웅성거리다 점차 조용해졌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던 사자가 딱 하루, 환생하는 졸업생들의 밝은 앞날을 기리며 흰옷을 입는 날. 드디어 환생 학교의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다솜은 생에 겪었던 어떤 졸업식보다 뜻깊은 졸업식인 걸 알면서도 매우 지루해하며 연신 하품을 했다. 졸업식은 일주일에 나누어져 진행되었고 오늘은 마지막 7일째로 포유류의 졸업식이었다. 다른 개체보다 그리 많지 않은 포유류임에도 졸업식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일 많은 종부터 졸업장을 받기 때문에 인간은 해가 질 무렵 받을 예정이었다. 토끼는 이미 졸업장을 등에 매고 신이 나 연신 궁둥이를 씰룩거렸다. 다솜이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아직 절반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을 보며 다시 한번 하품을 했다.




다솜. 노루 들었다.


"응? 노루한테 뭐 들었어?"


다솜.... 진짜 들었다....... 뭐야?


"그럴 때는 뭐였지? 가 더 좋아.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말해도 돼."


뭐였지? 들었다. 1등.... 수박?


"아, 수석. 졸업할 때 1등을 수석이라고 해."


응. 수석. 1등. 소원 3개 말한다. 좋아.


"좋아해 줘서 고마워."




 환생 학교에서도 이승과 비슷하게 종마다 제일 높은 성적을 얻은 1등은 졸업할 때 수석의 타이틀을 주었다. 다솜은 인간 중에서 제일 높은 성적으로 졸업하므로 환생 학교 수석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다솜은 이승에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설마 죽어서까지 시험에 목숨, 아니 목숨은 없으니 필사적일 줄 몰랐다. 수석의 특권으로 원하는 소원을 무려 3가지나 들어주기 때문에 모두가 열심히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사자들은 항상 인간 수석 졸업자의 소원 3가지에 긴장하곤 했다. 다른 동물들은 도토리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다 등 단순한 소원을 말했지만, 인간 중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경우 이전 생에서 누리지 못한 결핍을 구체적으로 채웠다. 평생 가난에 시달리지 않는 삶,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어떠한 폭행도 당하지 않는 삶, 큰 병을 앓지 않는 삶, 다음 생에는 특정 직업으로서의 명예를 얻고 싶은 삶 등 전생에 따라 그 갈래도 여러 가지였다.


 사자들의 걱정과 달리, 다솜은 다른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다솜은 제가 생각하기에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여겼다. 그리고 살아있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야 돌아보니 큰 탈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온 저는 엄청난 행운아였다. 소원은 죽을 당시 남아있는 운이 많을수록 잘 이루어지기 때문에 행운아로 살아온 제게 남은 운이 더 없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다솜은 이왕 주어진 기회를 알차게 사용하고 싶었다.


 두 가지 소원은 이미 환생 교육을 들으면서 '다음 생은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 둔 게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이루고 싶은 마지막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졸업식장에 앉아있으면서도 과연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씩 초조함을 내비친 다솜이었다. 그가 드문드문 올라오는 초조함을 억누르고 있을 때, 발갛게 노을 진 하늘에 사자의 외침이 울렸다.




"다음. 인간 수석. 정다솜."


"네."




 토끼가 호명된 다솜을 바라보며 똘똘한 눈빛으로 응원을 날렸다. 다솜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언덕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언덕 맨 위 사자가 서 있는 곳에 다솜이 다다르자 양쪽에 서 있던 동자들이 발을 굴러 바깥과의 소리를 차단했다. 살아있는 자가 없는 경계 안쪽에선 숨소리 없이 고요히 사자와 다솜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솜이 꾸벅 인사를 하곤 소리 없이 졸업장을 넘겨받았다. 이윽고 사자가 뒷면에 제 이름 석 자가 크게 적힌 종이를 펼쳤다. 다솜의 남은 운을 확인한 사자가 목소리를 내었다.




"인간 수석. 정다솜. 소원 3가지를 말하라."


"네. 첫 번째로 저는 경치 좋은 산꼭대기의 나무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나무라.... 동물들은 보통 다음에도 동물로 환생하길 원하는데 매우 오랜만에 식물로 환생하길 원하는 인간이구나."


"......."


"가능하다. 다음에 나무의 생에 빈자리가 있을 때 그 자리에 넣어달라 청을 넣겠다. 두 번째 소원을 말하라."




 다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동물이 식물의 생으로 환생하길 바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식물로 환생하고 싶다는 소원이 가능한 지 가늠이 되질 않았었다. 다행히 다음 생은 고즈넉한 산 정상에서 좋은 경치를 즐기는 삶을 살게 될 터였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나무로 태어나 인위적인 상처 없이 최대한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우선.... 어떤 나무의 생이 빌지 모른다. 나무마다 생의 기한이 다르기 때문에 네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이전 인간의 평균 수명보다 길면 족합니다."


"80세라.... 향년 29세에 죽었고.... 내 생각보다 긴 생을 원하지 않아 다행이구나."


"......."


"네게 남은 운 정도면 인간의 평균 수명보다는 더 오래 살 수 있다. 어떤 나무의 생이 빌지 모르지만 적어도 200년은 살 수 있도록 청을 넣어보겠다."


"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자는 꾸벅 인사를 하는 다솜을 내려다보며 몰래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 정도 선함이어야 인간으로서 환생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겠구나. 이번 졸업장을 나눠주는 그는 본디 개 담당 선생이었다. 환생 학교 선생 노릇을 한 지 일만 년 정도밖에 안 된 어린 사자는 처음 졸업장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아 긴장했던 참이었다.


 특히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온 개들이 많았기에 인간에게 좋은 감정이 거의 없는 사자였다. 게다가 마지막 졸업장을 나눠주는 게 인간임이 확실했고, 제일 피곤한 시기에 인간을 마주치는 상황을 매우 꺼렸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인간은 생각과 달리 태생부터 욕심이란 게 없어 보였다.


 사자가 한 번 더 슬쩍 다솜의 남은 운을 확인했다. 200년은 물론 800년은 너끈히 살 수 있는 운이 남아있었다.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로 심통이 나 마지막에 숫자를 확 낮춰 부른 게 미안할 정도로 다솜은 감사를 표했다. 이 아이는 나무가 길면 2000년도 더 살 수 있다는 걸 알까. 평균적으로 지옥에서 나무로 환생한 자는 30년 정도 살고, 환생 학교 졸업생은 500년 정도 산다는 건 더더욱 모를 터였다. 너무 욕심 없는 소원에 김이 빠진 사자가 애써 웃음을 감추고 마지막을 고했다.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을 말하라."


"마지막으로.... 혹시 불행을 나눠 줄 수도 있나요?"


"그럴 순 없다. 생물에게 제일 큰 불행은 생을 끝내는 것이기에 이미 너의 불행은 네 삶의 끝남과 동시에 모두 소진하였다."


".... 그렇군요."




 다솜이 이룰 수 없는 소원을 말하자 사자는 잠시 마지막 소원을 다시 생각할 여유를 주겠다 명했다. 하지만 다솜은 이미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바로 마지막 소원을 바꾸어 말했다.




"그렇다면 제 마지막 소원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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