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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May 11. 2021

[생각 18]감히 사이렌 소리가 나지 않는 날을 바란다

무소식이 희소식

우리 집은 자동차전용도로 옆에 있다. 그중 내 방이 가장 자동차전용도로에 가까운 덕분에,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종종 겪곤 한다. 특히 우리 집 옆 대로는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유독 구급차가 많이 지나간다. 적어도 하루에 열 대 이상은 지나가는데, 고요한 밤에는 그 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린다. 구급차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든, 타보지 않은 사람이든 구급차가 소리가 들리면 모두 긴장하기 마련이다. 누가 많이 아픈가. 어떤 사고가 났나. 누구나 아는 삐용삐용소리가 나면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위급하다는 거니까.


보통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잠이 들 때, 구급차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잘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 위급한 상황인가보다.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피곤함에 쩔어 멀어지는 정신줄과 함께 반복적으로 울리는 구급차 소리도 점점 멀어지는 게 보통인데, 어제는 보통날이 아니었나보다. 


요즘 가끔 불면으로 잠을 설치곤 하는데, 어제는 아예 잠자리에 들지 못할 정도로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안 피곤한 건 아닌데, 도대체 잠은 왜 들지 않았던 걸까. 어차피 잠이 오지 않을 바에야 집이 조용하니 쓰던 글을 마저 쓰던지, 넷플릭스나 책을 보든지 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스탠드를 켜고 데스크톱 전원을 켜니 방의 반절만 낮처럼 밝아졌다. 아까 어디까지 쓰다 막혔나 한참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는데, 오늘따라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한밤중에는 자동차전용도로가 막힐 일이 많지 않아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빨리 사라지기 마련인데, 어제는 유독 소리가 우리 집 근처에서 크게, 그것도 오래 머물다 갔다. 그 사이렌을 시작으로 구급차 소리가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왕 뚫긴 귓구멍에 하루에 구급차가 몇 대나 지나갈까 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새벽 1시부터 시작한 구급차 사이렌 세기는 열한 번째가 넘어가면서부터 그만두었다. 괜한 호기심이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내가 곤히 잠들었을 수도 있는 이 밤에 11명 이상이 힘든 밤을 보내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우울함도 불쑥 솟아났다. 생각보다 많은 사이렌 횟수에 놀라기도 했다. 중간에 세기를 그만두었으니 이어폰을 끼지 않고 끝까지 다 세었다면 그 수는 더 많았을 테다. 게다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분들이나 구급요원분들까지 생각하니, 괜히 나만 고작 불면 가지고 투정 부리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사이렌 소리를 멈추게 하는 일도, 환자를 낫게 하는 일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인 걸 너무나 잘 앎에도 불구하고, 혼자 무기력과 부끄러움에 꾹꾹 눌러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밤중 펼친 일기에는 사이렌 소리에 속상하고 부끄러운 날로 기록되었다.


그저 오늘 새벽에 누군가가 더는 아프지 않길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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