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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Mar 28. 2019

이 인간을 만나보자 -1

여우원숭이

한창 이야기만 쓰다 보니 자꾸 A형님 B 양 누구 이사 이렇게 말하는 게 나도 헷갈리고 앞으로 더 많이 나올 인간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 더더욱 복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나오는 인간들을 한 명씩 별칭을 붙여서 소개해가면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이 핵노답 조직 안에서 나와 일하는 '이 인간을 만나보자' 시리즈.


최대한 생김새와 분위기가 닮은 동물을 별칭으로 붙이기로 했다. 먼저 소개당할 영광의 인간은 여우원숭이다.


내가 골랐지만 정말 잘 골랐다.


이 여우원숭이는 나와 같은 팀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콘텐츠 기획자라고 앉아있는데 뭐랄까... 항상 보면 하는 일은 거울보기나 화장하기, 향수 뿌리기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팀에 있는 4명의 선임 중 한 명이었고, 영상 관련 인력을 제외하면 나와 같은 기획 직군이었다. 그래서 같이 일할 경우가 참 많았는데 이게 정말 쉽지가 않았다.


성격이 뭐랄까. 이 사람은 이 바닥이 아니라 어디 선생님으로 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한다. 문제는 뉘앙스였는데 이게 설명하기 참 그러니 간단한 에피소드를 통해 알아보자. 뭔가 기념품을 제작할 일이 있어서 업체를 찾아봐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크롬을 주로 썼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글 검색이 익숙해져 있었다. 몇 군데 찾아보고 여우원숭이에게 들고 가서 이러이러한 곳을 찾았다고 설명하고 일을 나누려고 했다.


- 이거보다 더 싼 게 얼마나 많은데 이걸 최저가라고 가져왔어요?

- 제가 찾을 때는 이게 제일 좋아 보였는데 다른 대안이 있나요?


여우원숭이는 네이버에서 뭔가 두드리더니 몇 원 더 싼 걸 기어이 찾아내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 봐요. 이게 최저가지.

- 아 제가 구글로만 검색했어서 그런가 봅니다.

- 그럼 앞으로 네이버도 검색 좀 해보시면 되겠네요.


하고는 휙 돌아서는 것이다. 이게 글로 쓰니 뭔가 느낌이 안 사는데 그 뭐랄까.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텍스트는 문제 될 거 없어 보이는데 뭐랄까 미묘하게 무시당한 느낌을 주는... 뭐 그런 사람이었다. 말끝마다 '선임이시잖아요.'라는 말을 붙였었는데 거참, 몇 천만 원짜리 예산안에서 눈을 부라리고 소수점 단위로 포인트 깎아내리는 짓을 1주일 넘게 붙잡다가 10만 원인가 얼마 벌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는 걸 보면 너도 선임은 아닌 거 같은데. 심지어 엑셀도 아니고 파워포인트로 작업하는 걸 보면.


이 것이 선임의 짠맛이다.


- 그게 제일 최저가라고 믿어요? 허 참! 세상엔 그 사이트만 있는 게 아니에요.


야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여러 제품 묶어서 제작 주문하려면 한 군데 주문 몰아주고 협의하는 게 속 편하잖아. 왜 모든 품목을 하나하나 인터넷에 명시되어있는 최저가로 여러 사이트에 각각 주문하려고 하는 거냐고. 게다가 그 특유의 코웃음과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저런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걸 보면서, 이게 이렇게 까지 화날 크기의 일이 아닌데 왜 본성 깊은 곳까지 긁히는 기분이 드는 건지.


- 아니 이게 진짜 그래요? 내가 진짜 몰라서 묻는 말이에요.


여우원숭이의 최고의 명대사. 이 문장을 읽을 때는 꼭 자기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어이없어하는 사람의 말투를 떠올리며 읽었으면 좋겠다. 여우원숭이가 그랬으니까. 저기에 네 그래요. 하고 말하면 '허! 알겠어요.' 하고 휙 돌아서고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멘탈이 의외로 약한 사람이어서 방어기제가 빈정거림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홍보부스 기획 때문에 내가 바빠 죽겠는 걸 알겠는지 대표가 나에게 이 여우원숭이를 붙여주었다. 하도 망나니 사장 아들 새끼와 계열사 직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한 방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획서 폼 하나를 내려주면서. 근데 하필이면 붙여준 게 여우원숭이었던 거지.


고난에 고난을 얹어주기


그리고 며칠 뒤 여우원숭이는 울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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