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땅콩빵과 붕어빵의 계절

by 이승준

찬 바람이 부는 이맘때쯤이면 붕어빵이나 땅콩빵 장수가 슬며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땅콩빵을 정말 좋아한다.


아주 어릴 때 땅콩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뒹굴대는 와중에 아버지가 만원을 꺼내서 먹고 싶은 대로 사 오라고 시키셨다. 나는 그 만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잘 몰라서 팔랑팔랑 들고 시내로 뛰쳐나가 당당하게 땅콩빵 아저씨에게 들이밀었다. 큰 목소리로 우리 아빠가 사 오라고 했다며 자랑하면서.


땅콩빵 아저씨는 당황했다.


그게 그러니까 대충 90년대 중반인가 그랬으니까 물가가 굉장히 낮았던 시절이었다. 오백 원 천 원 정도에 한 컵, 한 봉투씩 팔았는데 난데없이 만원이나 들고 온 꼬마에게 얼마나 퍼줘야 하는지 감이 안 왔으리라. 아저씨는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어디선가 종이가방 큰 걸 구해오셨고 거기 있던 땅콩빵을 다 쓸어 담은 뒤에 두 판인가 더 구워서 나온 걸 가득 담아주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종이가방을 보고 아버지는 집이 떠나가라 웃으셨다. 설마 그 돈으로 전부 땅콩빵을 살 줄은 모르셨을 테니까. 가족들에게 인심 쓴다며 한 명당 한 주먹씩 크게 퍼주어도 너무 많이 남아서 따뜻한 방에 배를 깔고 한참 집어먹다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식어서 딱딱해진 땅콩빵들을 보며 어떻게든 먹어보려다가 울상을 짓고 버려야 했을 때는 정말 아쉬웠지만.


옛날에는 그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는지 땅콩빵도 붕어빵도 꽤나 비싸졌다. 얼마 전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붕어빵 파는 곳을 발견했다. 천 원이면 여섯 마리도 먹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몇 마리지? 하고 물어보러 가다가 뭔가 덧댄 천으로 원래 있던 글씨를 가리고 위에 삐뚤게 2라고 쓰여있는 글씨를 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 마리는 줬던 것 같은데. 하고 친구가 중얼거렸다. 해마다 천 원에 주는 붕어빵이 한 마리씩 줄어드는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땅콩빵도 마찬가지이다. 만 원을 줘도 당황하는 땅콩빵 아저씨는 이제 없다. 가끔 지나다가 먹고 싶어서 오천 원 정도 사면 걸어가면서 심심치 않게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남아서 식어 딱딱해질 만큼 가득 담아 가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뭔가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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