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너무 추워져서 농원 뒤편에 녹슬어있던 난로를 꺼냈다.
꼭 깡통로봇 같이 생겼다며 오다가다 보이면 놀리던 녀석인데 드디어 제 가치를 빛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우선 이 녹들이 보기도 싫고 하니 이런 난로에 뿌리는 까만 스프레이로 단장을 해주어야 한다. 까맣게 칠해서 새것처럼 반들반들해지면 1년 동안 모아두었던 나무 조각들을 입 같은 곳을 열어 잔뜩 쌓아두고 불을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 뭔가 땔감을 쓰는 난로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작업장에 항상 있었다. 마당에 있는 돌을 한 바가지 퍼오셔서 쫀드기나 오징어, 은행이나 쥐포 같은 걸 자주 구워주셨다. 뭐 특별히 난방을 할 수 있는 장치도 없고 어차피 땔감은 넘쳐나니 참으로 효율적인 녀석이다. 게다가 맛있는 것까지 제조가 가능하다니. 아주아주 믿음직한 녀석이다.
아버지의 매년 겨울을 책임지던 난로였겠지만 나에게는 10년을 넘어 오랜만에 만난 녀석이다. 여기저기 살펴보고 연통을 연결하며 신이 나서 들떴다. 아버지께 이것저것 구워 먹자며 호들갑을 떨어본다. 아버지는 내가 먹고 싶다면 고래라도 잡아와 난로에 구워주실 것처럼 호탕하게 웃으시며 뭐든 구워 먹자 하신다. 이번 겨울도 이걸로 잘 보내보자 하시면서.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는 건 내 몫이다.
불이 시작하는 걸 보는 게 참 신기하고 좋다. 어쩜 이렇게 불꽃이 붙고 번질 수 있을까. 누가 불에 꽃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을까. 이리 일렁이는 게 꽃만큼 예뻐 그랬나. 하면서 불을 붙이며 구경한다. 자작자작하며 타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가 난로 입을 닫아건다.
난로의 계절이다.
따뜻함이 너무 손쉬워져 가는 요즘, 이 깡통 난로는 낭만과도 대치해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