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고양이 May 17. 2024

골목 끝이 바다와 닿아있는 동네

갑자기 분위기 바다

다음날 아침, 우리의 본격적인 푸꾸옥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딜 가볼까 하고 보니 근처에 TUC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리뷰도 좋고 마침 브런치도 한다길래 슬그머니 가보았어요. 우리가 여행하는 법은 이렇습니다. 근처 구글지도에서 리뷰가 좋고 별점이 높은 가게를 몇 찾아보고 사진을 보면서 분위기를 대충 파악해서 후보군을 몇 만들어놓아요. 그러고 추리고 추려서 가고 싶은 가게를 한정해서 찾아가 보는 방식입니다.


TUC 아내가 찾아낸 카페입니다. 에그커피랑 코코넛 커피, 솔티드 커피가 베스트셀러라고 했어요. 에그커피가 뭐지? 싶어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세련과 자연 그 어느 사이에 있는 인테리어에 꼭 그린 것 같은 귀여운 일러스트가 메뉴마다 그려져 있는 메뉴판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자연을 두고 안에 앉아있으면 손해일 것 같아 간단하게 주문하고 밖에 마련된 테이블로 가보았습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간단한 나무기둥으로 만들어놓은 야외 테이블 자리에는 먼지 가득할 것 같은 선풍기가 천장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앉아있다 보니 차를 두 잔 내오네요.


베트남에선 이런 차를 준대요


차가 굉장히 뭐랄까요? 신기한 맛이 납니다. 알아보니 자스민차를 냉침해서 만든 거라는데, 베트남 식당이나 카페에서 이렇게 서비스로 나오는 차인가 봐요. 짜다?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귀국하면 나도 냉침해서 우려 마셔봐야지 했어요. 얼음이랑 이쁘게 나오는데 한잔 호록 하니 또 물통을 가지고 나와서 따라주었습니다. 그렇게 도합 여섯 잔 정도를 마셨어요. 거의 음료 메뉴 하나를 먹은 셈 같았습니다.


코코넛 향을 맡아보고 우리는 코코넛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뭘 주문할까 고민하다가 베스트셀러 두 잔을 시켜보기로 했습니다. 코코넛 커피와 에그커피인데요. 코코넛커피는 위에 말린 코코넛을 얹어주는데 세상에! 이거 향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코코넛 향이 어쩜 이렇게 달짝지근한데 풍부할 수 있을까요. 꼭 말린 코코넛을 사가야겠다는 다짐이 드는 순간이었어요.


에그커피는 참 신기했습니다. 예전 베트남에서 우유가 부족하던 시절에 한 바리스타가 계란을 활용해서 만들어낸 커피가 기원이라고 해요. 특이하게 따뜻한 물이 담긴 잔에 중탕하듯 내온 커피는 굉장한 맛이 났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나름대로 만들어보던 에그노그가 있었는데요. 딱 그 맛에 에스프레소가 섞인 맛이었어요. 몽글몽글하면서 계란맛이 확 도는, 계란향이 굉장히 풍부한 커스터드크림 밑에 에스프레소를 밑에 깔아놓은 느낌이었습니다.


따뜻한 물로 중탕을 하고 있으니 사이에 크림이 녹으면서 풍미가 매우 좋은 티라미수를 먹는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인상적인 맛이었습니다. 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구나, 하고 상당히 만족했어요. 그리고 가장 만만하고 검증된 브런치로 BLT 샌드위치를 시켰지요.


이렇게 만들고 맛이 없으면 그건 이상한 거예요


생각해 보면 이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진짜 엄청 맛있는 쌀국수를 많이 먹고 싶어 온 건데 왜 서구적인 음식이 많은가. 하는 의구심을 슬쩍 가져볼 만도 했는데 의심 없이 BLT를 시켰단 말이죠. 나중에는 버거 피자 말고 쌀국수! 반미 어딨 냐고 반미! 하면서 외치던 날도 있었습니다.


이건 별개로 BLT도 맛있었어요. BLT가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실 실패해 본 적은 없는 메뉴지만, 아무튼 야채가 신선해서 아주 만족했습니다. 아! 소스가 그러고 보니 맛있었어요. 달큼한 스위트 칠리에 마요네즈가 적당량 섞인 소스였는데 매콤한 향이 적당히 풍겨서 느끼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확실히 잘 잡아주는 맛이었습니다.


또 신기하게 감자튀김을 찍어먹는 소스로 케첩 반, 칠리소스 반이 담긴 종지를 같이 내더라고요. 신기한 조합이네 싶어 하면서 따로 먹어보다가 혹시? 하고 섞어 찍어먹어 보았어요. 그리고는 아주 대만족. 이 조합 상당히 좋습니다. 케첩의 시큼한 맛과 칠리의 매콤한 맛, 그리고 둘이 가진 서로 미묘하게 다른 단맛이 기가 막히게 조화롭고 또 감칠맛이 돌더라고요. 이쯤 되니 감자튀김을 살리기 위해 소스를 찍어먹는 게 아니라 소스를 먹고 싶어 감자튀김을 사용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릇까지 깨끗하게 감자튀김으로 닦아 먹었어요. 상당히 만족스러운 브런치였습니다.


또 올게요 TUC 카페


아 커피 메뉴 더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가만, 여기는 중부니까 우리 마지막 숙소랑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했어요. 찾아보니 정말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오! 우리 여기 마지막 묵을 때 또 오자며 아쉽지 않게 떠날 수 있었어요.


막상 나온 우리는 이제 할게 없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오늘 숙소를 옮겨야 한단 말이죠? 숙소를 옮기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일정을 안 잡아놨지. 문제는 이제 우리가 밥 먹고 나니 한 열 시쯤 되어서 체크아웃은 두 시간인가 남았고, 어제 도로사정 보니 다음 숙소도 굉장히 빨리 도착할 것 같았단 말이죠? 그래서 급격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바다가 있었어요.


- 바다 보러 갈까? 여기는 바다가 유명하잖아요?

- 그래!

-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다가 나오나 봐.


지도를 보면서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니 이상한 공사장이 나왔어요. 이 길이 맞는데, 하고 가다 보니 리조트도 하나 큰 게 나오고요, 거기 딸린 레스토랑 옆으로 가는 작은 길이 하나 있더라고요. 여기가 맞을까? 가도 되나? 가도 되나? 하면서 들어가 살짝 꺾어보니 웬걸, 바다가 보입니다. 골목 끝 경계면에 바로 붙어서요.


골목에서 갑자기 바다

그렇게 갑자기 바다가 나타났습니다.


바다와 담 사이가 멀지 않았어요. 그 멀지 않은 틈 사이에 모래가, 그것도 해변이라고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참 재미있는 광경이었는데요. 이렇게 해변을 낭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뭔가 아쉽더라고요. 물은 예쁘긴 한데 이걸 에매랄드 빛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수심이 낮고 길게 뻗어있는 것 같아 파도가 칠 때 모래도 같이 휩쓸려 얕은 바다는 뿌옇게 보였거든요.


뭐가 되었든 햇볕 엄청난 이 동네에 끝까지 뻗어있는 바다만큼은 청량했습니다. 당장에라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잘 참았어요. 왠지 이렇게 사람 없고 들어가도록 유도하지도 않고 개발도 안 된 건 어쩌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아닌 의심 때문이었지요. 모르긴 몰라도 위험한 거 아냐? 하면서 구경만 하면서 햇볕 피해 조심스럽게 담 그림자 밑으로 숨어 몇 걸음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담벼락에 바다가 붙어있는 수준


- 드디어 푸꾸옥 첫 번째 바다야!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니까요. 잠시 구경하다가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꼭 정글의 입구로 들어가는 것 같아 이게 자연이구나, 하면서 걸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안쪽에는 요가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건물이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게 참 이뻐 보였어요. 여기서 요가해도 참 기분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가는 길에 작은 과일 노점이 있었어요. 참 동남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보니 여러 과일을 팔고 있었는데요, 아주머니 한 분이 묵묵히 과일을 다듬고 있었고, 파란색 세일러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안쪽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같은 디자인의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달려 나와 우리 앞에 섰어요. 아무래도 아이가 커뮤니케이션 담당인가 봅니다.


우리는 망고, 적용과, 파파야를 골랐습니다. 동남아에서 망고를 먹고 오면 망고는 역시 현지에서 먹어야지,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서요? 우리는 너무나도 부푼 기대를 안고 잘 익은 것 같은 망고를 골라보았습니다. 적용과는 아내가 예전에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골랐어요. 파파야는 성공해 본 기억이 잘 없긴 한데, 아내는 그걸 넘어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 파파야는 삶은 당근 같아.

- 근데 왜 파파야를 집어?

- 혹시... 모르니까?


여차 저차 해서 열심히 고른 세 과일을 잘라달라고 부탁합니다. 잠시 기다리라고 안쪽 파라솔 의자에 앉으라고 해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앉아있는 동안 아내가 주섬주섬 사탕을 꺼내서 아이에게 두 개를 주었습니다. 신나서 폴짝폴짝 뛰어가서 밥 먹는 남자아이에게 하나 주더라고요. 그러고는 과일 깎고 있는 아주머니 뒤에 가서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사탕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입에 쏙 넣었습니다. 아내가 그걸 못 보았는지 나중에 말해주니 하나 더 줄걸, 하고 아쉬워했어요.


사진만 보면 꼭 광고 같이 먹음직스러운데


그렇게 자른 과일을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숙소로 돌아왔어요. 수영장에서 먹으려고 하다가 외부음식은 공용공간에서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커튼을 열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뭐 수영장에서 먹는 거랑 다를 바 없지요. 그렇게 한껏 부푼 마음으로 과일을 집어먹기 시작했어요. 눈부신 햇살과 수영장에서 반사되어 일렁이는 윤슬의 빛 사이에서 행복한 얼굴을 하고서요.


- 어?

- 어...

- 으..

- 으으...


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이제 푸꾸옥 과일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아니 어딜 가도 다 맛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막 길가에 달려있는 망고 같은 거 따다 먹어도 눈 휘둥그레져서 막 감탄사 날리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물며 이건 노점에서 자리 잡고 파는 거잖아... 왜 어째서..


- 혹시 이거 이렇게 잘 두면 투숙객이 두고 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내가 과일을 잘 흩트려서 정돈된 것처럼 만들고 테이블 위에 잘 올려두어 그럴듯해 보이지 않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나는 아무래도 그렇지? 하면서 치워야 할걸 늘려 죄송한 마음으로 최대한 곱게 정돈하고 방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푸꾸옥 첫 과일과 바다는 미숙한 여행의 시작만큼 뭔가 부족했지만, 그 부족한 만큼 어딘가 행복했어요. 맛없는 과일을 먹으면 어때, 햇살 같이 받으며 행복한 얼굴로 앉아있었는데.


안녕 오로라 하우스


우리는 지짐을 싸고 그랩으로 택시를 불렀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푸꾸옥 여행을 시작할 거예요. 푸꾸옥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북부더라고요. 그래서 북부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푸꾸옥의 북부는 빈그룹이라는 베트남의 큰 회사가 관광개발을 하고 있다고 해요. 그중에서 호텔과 관광 사업을 맡고 있는 계열사인 빈펄이 거의 북부 광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꼭 가야 한다는 빈펄랜드, 빈펄사파리를 갈 거예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몰라서 각각 하루씩 잡아서 총 3박 4일을 예정했습니다.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날은 아무 계획도 안 세워두었고요.


그래서 우리는 뜬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뜬 시간이라고 쓰고 사실 여유와 여행으로 채웠지요.


빈펄 리조트의 수영장


숙소도 빈펄 브랜드를 골라 묵으면 편하다길래 그렇게 예약했습니다. 빈펄 이름을 달고 있는 숙소가 천차만별이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제일 가격이 괜찮은 숙소를 찾았습니다. 가격이 워낙 천차만별이어서 무슨 차이인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고민하다가 위치를 보니 다 고만고만하기도 하고, 또 우리는 숙소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테니까 숙소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결과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셔틀도 북부 주요 관광지를 돌아 숙소로 오는 셔틀을 짧은 간격으로 계속 운행하고 있었고요.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공용 수영장이나 해변도 활용할 수 있으니 숙소가 외진 곳에 있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오로라 하우스에서 그랩이라는 어플로 택시를 잡아 이동했습니다. 아주 쾌적하고 사용도 좋아서 숙소 간 이동할 때에는 이렇게 이동했어요. 그런데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리는 바람에 체크인까지 몇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짐을 맡겨두고 수영장을 걸으며 바다를 구경하기로 했어요.


이 꽃의 꽃말은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래요


수영장과 바다가 거의 맞닿아있었습니다


수영장에서는 비치타월과 구명조끼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었어요. 바다에도 가지고 가도 된다고 해서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오후 7시까지만 오픈한다고 해서 그건 좀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해가 이렇게 쨍쨍할 때 물놀이를 어떻게 하지, 저녁에 하고 싶을 것 같은데 하고요. 실제로 그 시간에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다니면서도 좋다 싶었어요.


걷다 보니 해변에 식당이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 먹을 때도 되었겠다, 밥을 먹기로 했어요.


북부에서 가장 좋았던 건 식당에 새들이 날아다녔던 풍경이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새소리가 많이 들리더라고요. 뭔가 해서 보니 작은 뱁새 비슷한 새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더라고요? 식당에서도 내쫓으려 하거나 신경 쓰는 움직임은 없어서 참 자연스럽구나 싶었습니다. 신기하게 사람이 밥 먹는 식탁은 새들이 안 건드리더라고요. 덕분에 새소리도 들으면서 식당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귀여운 새를 보며 밥을 먹었습니다.


빵... 이거... 빵인데...


식전 빵이 나왔습니다. 버터랑 같이 주어서 맛있겠다 싶어 바로 뜯어먹어보았어요. 아내가 먼저 한입 베어 물어보았는데 표정이 이상해지면서 푸흡, 하고 웃습니다. 궁금해져서 저도 한 입 먹어보았는데 이게.. 참 묘해지는 맛이었어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덜 구워진 것 같기도 하고, 발효가 안 된 것 같기도 하고. 찰기 없이 텁텁하기만 한 빵처럼 생긴 이 덩어리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술빵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사다 놓고 먹는다는 걸 깜빡해서 일주일 정도 뒤에 발견된 술빵 조각이 이런 맛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이게 베트남이겠지! 하면서 저는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클린 플레이트 증후군 같은 게 있는 모양입이에요.


자이언트? 새우구이
쌀국수에게 쥐어주는 합격 목걸이


식사는 일단 쌀국수를 시켰습니다. 베트남 하면 쌀국수잖아요? 맛있는 쌀국수가 먹고 싶었어요. 아내는 새우구이를 시켰습니다. 우리가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 방문한 탓인지 메뉴 준비가 상당히 오래 걸렸어요. 그래도 새 구경도 하고 바닷바람도 쐬고 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니 메뉴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쌀국수가 상당히 괜찮았어요.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도 쌀국수 맛집 반열에는 오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고수 향은 신기하게 우리나라 고수보다 향이 은은하더라고요. 큰 부담도 없고 국물은 상당히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합격, 이 정도면 합격입니다.


그렇게 밥도 먹고 무사히 체크인도 하고 이제 할 게 없어진 우리는 빈둥거리다가 수영장에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해가 있어서 쉬엄쉬엄 놀아보자 싶어서 나가보았어요. 나가보니 대형 튜브들도 유료로 빌려주더라고요. 한 시간에 얼마 해서 빌려주는데 우리 눈에는 커다랑 플라밍고 튜브가 보였습니다. 저거다, 우리 저걸로 놀자 하고 빌렸습니다.


신나게 노는 와중에 제가 욕심을 부려서 플라밍고 위에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는지 펑 소리가 나면서 저는 그대로 미끄러져 수영장에 풍덩 하고 빠져버렸고 플라밍고는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저는 으어어어어 하면서 플라밍고를 쫓아가기 바빴고요. 결국 수영장 끝에 가서야 발견한 플라밍고는 날개가 떨어졌고, 떨어져 나간 자리가 터져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어요. 그게 추진력이 되어 도망간 거였고요.


으어어어어 어.


미안해 밍고야


관리하시는 분에게 연신 죄송하다 했으나 쿨하게 아무 문제없다고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줄 몰라하니 무전으로 다른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나온 사람도 아무 문제없다며 괜찮다고 나이스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남았지만 차마 더 빌릴 수 없어 구명조끼만 하나씩 들고 바다로 나갔어요.


바다에서는 해파리의 위험도에 따라 깃발로 표시해서 알리더라고요.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둥실둥실 떠다녀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러고만 있어도 재미있었어요. 아, 수영장도 바다도 굉장히 따뜻했습니다. 꼭 노천탕에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꼭 차가울 것 같이 새파란 물인데 따뜻하니 기분이 묘한 게 아주 좋았습니다.


그렇게 지쳐 들어온 방에서는 저녁을 어떻게 할까 고민해 보다가 룸서비스에 눈이 갔습니다. 굉장히 저렴하더라고요? 이럴 거라면 우리도 사치 부리듯이 한 끼 정도 이렇게! 알콩달콩하게! 먹어볼까! 했습니다. 처음 시켜보는 룸서비스였어요.


- 이 정도면 우리도 룸 서비스 한 번 시켜 먹어볼까?

- 고고?

- 와인도 와인도?

- 고고!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모스카토 다스티


우리 부부는 알콜 가성비가 좋은 부부입니다. 맥주 한 캔 정도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알코올향 센 술 보다 달달하고 맛있는 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달달하고 술냄새 별로 안 나는 술 중에 화이트와인을 좋아해요.


버섯 수프도 주문합니다. 버섯 수프 하니까 말하는 건데요, 버섯 수프 하면 이케아입니다. 이케아 버섯 수프가 진짜 맛있어요. 자꾸 그릇 용량이 적어지게 변하는 것 같은데 이케아는 그러면 안 됩니다. 양껏 퍼먹을 수 있도록 더 큰 그릇으로 바꿔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 좀 밑에 식료품 파는 매장에서 팔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안 그러는 거죠? 


한 번은 버섯 수프가 먹고 싶어서 순수하게 그 이유만으로 이케아에 간 적도 있습니다. 진짜 감칠맛 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레시피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메인으로는 무난하게 볼로네제 펜네 파스타와 록락이라는 요리를 시켜봅니다. 다른 건 뭘 시켜볼까 하다가 와중에 눈에 들어온 메뉴가 록락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싶은데 한국식 소갈비찜 같은 거래요. 옳다구나 싶어 바로 주문해 보았습니다. 달짝지근한 게 정말 맛있었어요. 사실 소갈비찜보다는 갈비 소스로 버무려낸 챱스테이크 같은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익힘 정도가 굉장하더라고요. 부드럽게 익힌 소고기 덕분에 입이 호강했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처음 먹어본 소고기는 인도네시아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시골 마을 길가에 있던 작은 노점에서 먹었던 소고기였는데요. 이 사람들이 소는 다 같겠거니 해서 물소고기를 소고기라고 한 건데요. 와 되게 조그맣게 썰어주네, 인심 어디 갔지? 하고 생각하며 입에 넣고 앙, 하고 씹었을 때의 그 배신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생긴 건 장조림이었는데 뭔가 씹히지가 않아요. 제 턱 힘으로 그 고기에 대미지를 주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야생 물소의 근육이라도 썰어 내온 걸까요.


열심히 시도해 보다가 함께 입에 넣은 밥을 다 넘기고도 안 되어서 아차! 혹시 고기에 배어있는 소스를 빨아먹고 고기는 버리는 건가. 사실 이건 고기가 아니고 고기를 먹고 싶은데 고기를 못 먹는 이 나라 사람들이 고안해 낸 전통의 방식 같은 걸까. 이건... 이건 그러니까 뭔가 고무 같은 공산품일까. 하며 조심스럽게 입에서 그 고깃 조각을 뱉어냈었습니다. 이걸 보던 가게주인이 그 고기 조각들을 가위로 전부 더 작게, 잘게 잘게 잘라주더라고요.


그 이후로 소고기를 외국에서 마음 놓고 먹어본적이 없는데요. 그런 걱정을 아주 깔끔하게 씻어주는 맛이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아무튼 그렇게 기분 좋게 먹고 나서 우리는 밤산책을 했습니다.


이렇게 예쁘게 불 켜둘 거면 밤애도 개장을 하란 말이야


조명이 쓸데없이 밝은 걸 보며, 여기서 수영하면 기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왜 운영 안 하지, 싶다가도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놀고 있는 걸 보며 아 저 사람들도 퇴근해야지 워라밸 확실하네 하고 넘어갔어요.


그렇게 두 번째로 맞는 푸꾸옥의 밤이 지나갔습니다.

이전 02화 급하게 잡은 숙소치고 너무 좋은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