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살았어

개미보다 더

by 꿈쟁이

아침에 늦잠 자는 것이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하긴, 남들처럼 밤엔 내내 잠을 잘 수 있었으면

하던 때도 있었구나.

나는 열심히 살았고 그래야만 했다.

나의 부모님의 하루는 아침이 오기는 할는지 그저 캄캄하기만 한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공사장 일은 대개 해뜨기 직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끈한 국과 김치가 전부인 아침밥을 말 없이 꾸역꾸역 삼키신 아빠는 엄마가 준비하신 점심 도시락을 들고 어둑어둑한 길을 나서셨다. 단칸방에 다섯 식구 오글오글 살았기에 매일 새벽 달그락달그락 국그릇에 부딪히는 숟가락 소리, 후루룩 국물을 들이키는 소리, 엄마와 아빠의 걱정 가득 한 한숨 소리를 이불속 꼬마는 들어야 했다. 험한 일 나가시는 아빠에게 이불 걷어차고 나와 '잘 다녀오시라' 인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도 있었으나 어린 나는 생각만 그리 했을 뿐 아빠가 마침내 새벽 속으로 나가시면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다.

온몸으로 몸부림치듯, 그야말로 뼈 빠지게 산다는 삶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셨던 부모님의 삶을 결코 동경한 적은 없었지만 "근면성실"은 나도 모르게 너무도 당연한 의무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열심히 살았다. 특히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해서는 슈퍼우먼을 꿈인양 살았다. 열심히 산 걸로 치면 난 분명히 전국 상위 4% 안에는 들것이다. 아이들 성적으로 치면 1등급은 족히 나올 거란 말이지. 하지만 살림살이는 열심히 산거에 절대적으로 비례하지는 않는 거 같다. 그저 밥 먹고 사는 정도. 간신히 아이 하나 키워내는 정도. 수도권 변두리에 살 곳 마련한 정도. 좀 더 젊어서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파트 평 수도 늘려가고 기타 등등 꿈을 꿨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보니 알겠더라. 여기에서 더는 힘들겠구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아끼며 사는 것만으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 부모님 역시 진정 최선을 다하신 것이었구나 하는 사실도 비로소 깨달았다.

개미들의 세계는 인간들의 세계와 꼭 닮았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들만큼이나 폭력적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개미왕국을 침략하는 전쟁을 마다치 않는다. 알들을 훔쳐 노예로 키우기도 하고. 여왕개미, 일개미, 수개미, 병정개미, 공주 개미 등등 계급이 존재하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면적으론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수많은 차별이 존재함을 금방 깨닫게 된다.) 개미는 태어날 때 정해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일개미는 일을 한다. 버섯 농사를 짓기 위해 비료로 사용될 잎을 모아 오는 것을 비롯하여 알을 지키고 키우는 일, 여왕개미를 돌보는 일 등등의 일을 한다. 평생 일만 하다 죽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 우리 인간들이 일개미들보다 더 많이 쉬지 않고 일을 한단다. 개미들은 전체 일개미들의 20%만 일을 하고 나머지는 휴식을 갖는다고 한다. 번갈아 돌아가면서 일을 한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고대 수렵 채집인들 보다 오늘날의 인간들이 더 오랜 시간 일을 한단다. 원래 인간은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겼다. 노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의 창의력이 잼병인가 보다.

그래서 일 하지 않으면 뭐? 뭐 하려 하느냐고?

대단한 것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매일 그럴 수는 없겠지만 햇빛 잘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기분 좋게 아늑한 방에서 한가로이 아침을 맞이하는 것. 살구색으로 쏟아지는 여린 아침 햇살을 기분 좋게 반길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쭈욱 기지개를 켠 후 다시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어도 문제 될 거 없는 시간을 마음껏 품어보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 삶을 위해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기로 했다.


내 아이가 살아야 하는 세상은 조금 덜 일해도 되는 조금은 나아진 세상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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