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있어 다행이야

하지만 투정 부리고 싶어

by 꿈쟁이
그릇장은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물건이다.

지독하게 똑같은 날들이다.

매일매일이 복사 붙여 넣기의 반복.

기계처럼 능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오늘도 헉헉거린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미루어 짐작해도 별 다르지 않다.

아찔하다. 이렇게 어찌어찌하다 하루가 저물겠구나.

그릇장 안의 그릇들은 나의 유일한 사치이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닌데 쉽지 않다.

루틴이 있는 일상은 어쩌면 투덜댈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네 하며 반겨야 하지만

때때로 숨 막히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커피는 직접 내려서 마신다. 오전의 일과 중 하나이다.

맞다. 잠시 멈추어야 하는 때이다.

나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때.


커피를 만들자.

물을 팔팔 끓이고,

분쇄기에 원두를 갈아야겠지.

좀 거칠게 갈아도 좋아.

드리퍼에 커피를 옮겨 담고

따끈한 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릴 거야.

커피 가루가 수분을 충분히 머금을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해.

기다리면서 창 밖의 하늘을 보자.

분명 어제와는 조금은 달라졌을 나무들도 자세히 살펴보자.

거 봐! 아니잖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아니잖아.

대기의 열감도 다르잖아.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차갑네.

어라! 산수유나무에 알알이 맺힌 열매가 보이네.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보이네.

감나무 잎 사이도 잘 살펴봐.

돌멩이만 한 감이 보이지?

그래. 며칠 전엔 아니었는데 오늘은 분명 쌀쌀한 가을이야.

그래서일까? 하늘도 높아졌네.


아차! 커피에 물을 부어야 하는데 깜빡했네.

괜찮아. 서둘 거 없어. 천천히 물을 붓자.

또르륵 또르륵.

소리에 맞춰 커피 향도 가득 퍼진다.




내가 좋아하는 쿠키

다 되었어. 좋아하는 컵에 커피를 가득 붓고

이젠 앉아 봐.

다른 일 하지 말고 일단 앉아 봐.


커피 맛을 느끼며 마실만한 여유는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빈 잔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커피만 마시자.

일은 쬐금만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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