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 그대로 인정하기
어쩌면 내가 오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집스레 꾹꾹 누르고만 있는가 보다.
등 떠민 사람도 없었고 내게 부담을 지운 사람도 없었다. 내가 선택했다. 더욱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그렇담 끝까지 가야 한다. 그 길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투덜대는 것은 안된다. 힘들다 어렵다 드러내어서도 안 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니까 도중에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관되게 이렇게 견디었다. 참 싫었다. 야생동물들이 자신의 약함을 들키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그래서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그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는 것은 더욱 싫었다. 늘 언제나 견딜만한 것이어야 했다. 나는 잘 참아내는 사람이므로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므로...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를 키울 때 나는 아이에게 참으라 하지 않았다. 힘들면 같이 하자고 그러니 꼭 말하라고. 힘들 때 힘들다 말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힘듦은 저마다 달라서 어떤 이에게는 참을만한 것이 나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말 하기를 주저치 말라했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 입 밖으로 내뱉기만 해도 반 이상은 해결된다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 가슴은 콩닥거린다. 내 알량한 자존심이 그런 행동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그러니 혼자 삼켜야 한다고 내 가슴을 마구 긁어댄다. 그러니 또 꿀꺽 삼킬 수밖에.
그림 그리기가 의무는 아니다. 언제까지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해 보고 싶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시간을 쌓아가자 하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수준에 이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그려낸 것도 아니다. 겨우 5개월 남짓 되었을 무렵 나의 감정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있을까? 나아지고 있는 게 분명한 것인가? 언제쯤 내 색깔을 찾아낼 수 있는 거지? 지금 생각하면 주제넘은 생각들로 매일매일 힘들어했다. 퇴근 후 남편은 그림 그리는 나를 보면서 "오늘도 재밌게 시간 보냈구나?" 했다. 그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쁠 수가 없었다. 마치 '시간이 남아돌아 노닥거리네!' 하는 것 같았다. 나 그냥 노는 거 아닌데. 일은 일대로 하면서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짜 내어 그리는 건데. 그리고, 생각이 아주아주 많은데....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짜증들이 입 안에서 웅얼웅얼 아우성쳤다. 끝내 나의 생각을 전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나중에 진정 나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때 그때 말하리라 하고는 어두운 심연 속으로 말 못 하는 답답함을 가라앉히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말 하기도 연습이 되어야 하나 보다. 스물세 살 내 아들은 주절주절 잘도 말하는데 나는 어렵네.
굳이 변명하자면 그렇게 스스로 해결하면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 지금은 몇 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감정의 널 뛰기는 일단락되었다. 결국 스스로 답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그들의 방황을 보았고, 삶을 보았다. 아직 나는 그 단계가 아니네. 나의 색깔을 찾는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욕심이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 나는 가능한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기대한다. 언젠가는 나의 그림이 갤러리에 걸리게 될 그날을....
(덧붙임: 2개월 정도 위의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A4보다 조금 큰 스케치북에 연필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 후 스캔을 하고 포토샵의 브러시 툴로 일일이 색을 넣어 그렸다. 필터, 합성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물감과 붓을 포토샵의 브러시와 색 팔레트로 대신할 뿐이다. 처음부터 포토샵에서 그려도 되었지만 연필그림이 좋아서 한동안 이 방법을 고집했다. 위의 그림은 이렇게 그렸던 마지막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