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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Dec 14. 2022

창밖에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줄곧 높은 곳에서 살았다.

19층, 13층, 8층.

잠시 빌라에서 살았을 때 3층 정도가 가장 낮은 곳이었다.

그래서 창밖의 풍경이란 그저 하늘이 전부였다.

일부러 고개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사계절 내내 하늘만 보았다.

뭐 가끔 흐린 하늘도 있었고

겨울엔 하얀 눈이 짙은 회색 군단이 되어 쏟아지는

하늘도 보았다.

밤이 되면 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의 라이트와

흡사 무덤의 표식 인양

빨갛게 밝히는 십자가들을 바라보며

교회가 저렇게 많구나.

그리고 모텔임을 알리는 화려한 불빛쇼.

우리 아들 어렸을 때 참 좋아라 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가 원치 않으면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는 우리 집.

1층 아파트.

요즘 아파트들은 필로티 때문에

1층이라 해도 사실상 2층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 집은 진짜 1층이다.

집을 보러 왔을 때 바깥 풍경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단지 내에 있는 건물이니 그다지 혐오할만한 것은 없을 테고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이유였는지

한밤중에도 블라인드를 바닥까지 내린 터였다.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고

마침 1층인 그 아파트가 가격 면에서 최적이었다.

돈이 궁했던 우리에게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생각조차 못했던 것.

이 집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

그것은 창밖 풍경이었다.

이사 온 당일 날은 정신없어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을

우리 가족은 다음 날 아침 마주했다.

때는 꽃 피는 4월이라

통창인 거실 베란다 창으로 눈을 돌린 순간 멋진 정원이 보였다.

영산홍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고

노랗게 지고 있는 산수유꽃,  

만발할 준비를 갖춘 벚꽃의 꽃망울.

"이게 보인단 말야? 정말?"


무엇보다 아침 일찍 뜨는 해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것.

여름엔 오전 6시 30분 무렵, 겨울엔 오전 7시 30분 무렵...

그때의 햇빛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살구색 수줍은 빛으로 정원의 나무들을 비추면

나뭇가지들은 반투명 상태가 되어

발그레한 살구색을 반사시켰다.

매일 아침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껏 부풀어 올랐다.


작년 겨울 어느 아침. 내 고양이도 창 밖 보기를 참 좋아한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그 모습은 더욱 황홀하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부럽지 않다.


어제 창밖엔 눈이 가득했다.

눈이 내리고 또 내리고...


오래되고 낡아진 이 집이 참 좋은 이유이다.


감 나무에 매달린 홍시는 이미 새들이 다 쪼아 먹었다. 쩡아! 위험하다.
감 나무를 타는 나의 친구 쩡이. 친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뻘간 산수유 열매에 눈이 쌓인다. 저 열매는 겨우 내 이곳을 찾는 새들의 것이다.
편히 잠자는 고양이의 호흡을 담았다. 포토샵으로 그리고 애프터 이펙트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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