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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Dec 19. 2022

작은 생명들을 생각한다

도심에는 사람 말고 다른 생명들도 산다

많이 춥다. 베란다 창밖은 하얗다. 겨울 왕국이다.

이 계절이 되면 나의 하루는 더없이 분주해진다.

누군가 내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지만 그 일은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겨울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힘든 계절이 아니다. 집 밖에 사는 동물들에게도 가혹한 계절이다.

겨울철에 야생동물들이 죽는 이유 1위가 먹을 물을 구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물을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요즘처럼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를 밑돌고 낮 최고 기온도 영하권에 머물게 되면 그들이 마실 물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도심의 경우 모든 하천들이 덮개로 덮인 터라 물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조차 없다.

우리에겐 별거 아닌 아주 쉽게 얻어지는 그것이 그들에겐 생사를 가르는 것이 되어버렸다. 


 재작년 6월 무렵 우연히 아파트 안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과 인연이 되었다.

1층에 살다 보니 아파트 산책로를 낀 정원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을 곧잘 보곤 했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여느 때 같으면 고양이들이 노는구나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그러지 못한 까닭은 새끼 고양이들을 돌보는 어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포동포동 잘 키워낸 새끼들과 달리 어미는 깡말랐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누가 어미이고 누가 새끼인지 헷갈릴 정도로 어미는 말랐다. 나도 한 아이의 어미인지라 그 아이가 신경 쓰였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는 우리 집에 고양이 사료가 있을 리 만무하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져보니 닭 가슴살 한 팩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삶아 찢어 내어 주었다. 여전히 어미는 먹지 않고 새끼들 먹는 것을 바라만 본다.


이 일이 시작이었다. 내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게.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의 고양이 아라도 이 무렵 만났다. 


보통은 하루 한 번 나가서 건사료와 물을 교체해주고 파우치나 캔 사료를 먹인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물과의 전쟁이다. 요즘처럼 한파가 몰아치면 따뜻한 물을 부어 주어도 서너 시간 뒤면 얼어버린다. 최소한 3번은 갈아준다. 그들이 물을 먹으러 오는 시간을 고려해서.


오늘 아침엔 조금 늦었다. 가족들 아침식사를 챙기고 내 고양이의 투정을 받아주다 보니 조금 늦었다.

포트에 물을 끓여 따끈하게 준비해서 나갔다. 밤 새 꽝꽝 얼은 물그릇은 터질 듯이 부풀어있다.

그리고 그 물그릇 주변에 아이들 서너 마리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살얼음이 얼은 상태라면 아이들은 발로 깨뜨려 구멍을 내어 물을 먹는다. 하지만 이렇게 차가운 돌덩이가 되어버린 물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내가 새로운 물그릇을 들고 나타나자 아이들은 반가워 앙앙거린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조금은 커다란 물그릇 앞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바로 물을 먹지는 않는다.

잠시 온기를 느껴본다.(그들의 수염으로 마시기에 적당한 온도인지 체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 다른 곳의 물그릇에 물을 부어 얼음을 녹여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놓아주는 물은 고양이들만 먹는 게 아니다. 새들도 겨울엔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그들도 이 물을 먹는다.  


이 일이 힘들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종일 바쁘다. 때론 몸이 아프고 귀찮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간다. "난 힘들어 죽지는 안잖아. 얘들은 죽을 수도 있어."


고양이들과 3번째 맞이하는 겨울. 올 겨울도 무사히 잘 넘기기를... 


지난겨울엔 한 아이가 별이 되었다. 병원에서 약 지어 먹이며 챙겼던 아이인데 끝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 그리는 그림책의 주인공들... 


 p.s. 우리 아파트 아이들을 모두 중성화 수술된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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