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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뾰족달 Jun 09. 2024

때아닌 태풍을 만나

바람이 이끄는 대로



사람 사는 거 알 수 없다 했던가.

예상치 못한 큰 바람을 만났다.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팔에 소름이 돋는다.

어디서 이런 돌풍이.







바람이 둥글게 회오리를 일으켜 감아 돈다.

이런, 어마어마한 나의 민낯이 공개되었다.

누군가 엄청나게 큰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누르는 것 같다. 

얼굴이 납작해지겠다.

땅이 날아갈까 걱정이다.

옷자락 앙 물고 잘 따라와.

우리 강아지 통통해서 다행이다.

이런 바람에도 끄떡없다.

한걸음 떼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바람을 맞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던 중에

포근한 담요가 날아왔다.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바람은 우리 주변을 윙윙 도는데 이곳은 고요하다.

누군가 우리 머리털을 돌돌 말아 위로 자꾸 치켜세우는 것 외엔 편안하다.

저 파란 건물을 지나 널따란 광장으로 가보려 했는데

바람이 우릴 허락지 않는다.

이 구역은 바람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나보다.

그렇다면 바람이 알려주는 대로 진로를 바꿔야겠다.

우린 담요를 덮어쓰고서 방향을 틀어 바람을 등지고 걷기로 했다.

바람이 가라는 쪽으로 가보자.








바람이 밀어주니 저절로 걸어진다.

바람길을 따르니 한결 편안하다.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는 듯 

담요 밖으로 부는 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진다.

큰 바람에 풀들도 쓰러질 듯 날린다.

무릎까지 오는 들풀길을 지나고

알록달록 꽃길을 지나고 나니

바람이 잦아든다.



바람이 가라는 대로 간다.

'그래, 그쪽이야. 그리로 가봐.'

바람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발길을 돌려 바람에 떠밀려 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큰 바람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가려던 방향은 아니지만 어디로든 재미있을 것 같다.

바람이 기분 좋게 살랑이고 있다.

이곳으로 가봐야겠다.

바람이 알려준 이 길로.

녹색 담장으로 이어진

이 길로 가면 또 뭐가 있을까?

가보는 수밖에.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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