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분홍 건물 2층에 잔뜩 쌓인
거인들의 휴지를 찾았다.
걸터앉아보니 의자로도 손색이 없다.
쉬어가기 딱 좋구나 하는 찰나
벌써 휴지 하나를 부여잡고
놀기 시작한 땅이.
왠지 슬슬 불길한 느낌은 기분 탓이겠지.
왠지 청소의 늪에서 못 헤어날 것 같은 기분은 뭐지?
그러지 말자.
오랜 여행으로 장난감이 그립겠지만
물론 다 내 잘못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리 쉽게 본색을 드러내지 말자.
그동안 순하고 이쁜 강아지 이미지 잘 자리 잡았는데 말이다.
땅씨!
눈치 챙기자!
신나면 나오는 뾰족 귀
잔뜩 흥이 오른 뒤통수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여행가의 초심을 잃다니.
우린 절대 자취를 남기지 않았지.
오점 하나 없었다고.
그림자처럼 왔다가 갈 뿐이지.
그런데 꽤 재미있어 보인다.
휴지 뜯는 거 재밌어 보인다.
재밌어 보인다.
재밌겠지?
보들보들한 휴지를 찢어서 날리면 함박눈.
꽁꽁 뭉쳐 던지니 솜돌멩이.
이래서였구나.
멍뭉이들이 이래서 휴지를 좋아하는 거였어.
신나게 뜯어서 하얀 눈도 만들고,
덕지덕지 쌓아서 눈사람도 만들고.
그냥 막 뭉치를 만들고.
우리의 웃음과 즐거움 속에
나락 간 거인들의 휴지들.
땅아, 서둘러!
뒷정리를 잘 해두었다.
너무 감쪽같다.
조금 변화가 있지만 눈에 띄진 않는다.
여행자의 기본은 정리 정돈이지.
절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아무렴.
휴지심지는 왜 저렇게 모아뒀을까???
주인장이 참 알뜰하시구나.
그럼 우린 바빠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