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93)

혼자 휴일 보내기

by 시우

아침 일찍 아버지가 공주를 데리고 가셔서 모처럼 혼자 보내게 된 휴일이다. 갑작스럽게 조용해져 버린 집안이 어색하지만 아이가 없을 때야 말로 집안일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낚시라도 갈까 고민을 했었는데 혼자 가기에도 심심하고 비 도온 다고 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 왠지 예전만큼의 열정이 들지는 않는다 낚시 장비들을 안 쓴 지 1년이 넘어서 녹이라도 슬었을까 봐 한번 꺼내 확인하면서 닦아주고 케이스에 다시 넣어둔다,


대충 짐들을 제자리에 정리해두고 베란다 창문을 확 열어둔다, 현관문도 열어둔다 부엌문도 열어두고 청소기를 틀고 방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인다 청소기 소리에 놀랐는지 거실 구석에 있는 햄스터 케이지에서 햄스터가 집 밖으로 나와 나를 한번 쳐다본다


"왜왜 청소 좀 하려고 그런다 시끄러워서 나온 거야?"


겨울이 되가서 그런가 포동포동해진 햄톨이..


알아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청소를 다시 한다, 가을이라 날씨가 좋긴 한데 비가 너무 안 와서인지 연일 물을 아껴 써 달라는 내용의 문자가 날아온다 안 그래도 빨래를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토요일에 몰아서 한다, 후다닥 세탁기를 돌리고 다시 청소기를 잡는다 안방도 아이 방도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아이가 있을 때는 못 털었던 커튼도 내려서 밖에 나와서 한번 먼지를 털고 세탁기에 돌릴 준비를 한다, 공기청정기 필터를 빼서 주방세제를 살짝 탄 미온수에 담가 놓는다

걸래를 빨고 바짝 짜서 아이 책상 위와 내 책상 위를 닦는다 티브이 위도 책장 위도 꼼꼼히 닦는다 30여분을 했을까? 등줄기로 땀이 한줄기 흘러내린다


일에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 다른 생각 하기 싫을 때 나는 보통 잠을 잤었는데 이젠 그게 잘 안된다 몸이 피곤해도 잡생각이 들면 잠에 들지 못하고 멈추지 못하는 생각을 계속한다 갑자기 후드득 하며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밖에 안 나가길 잘했네.'


청소기를 얼추 마무리 지을 때쯤 세탁기가 다 되었다고 알람을 울린다, 얼른 뛰어가 건조기로 올리고 다시 작동을 시킨다 물걸레를 청소기에 연결해서 바닥을 한 번 더 깨끗이 닦고 나서 청소를 마무리한다, 얼른 따듯한 믹스 커피를 한잔 타서 베란다로 가서 앉아 창밖을 본다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나 보다 바람은 좀 심하게 불었었는지 잎사귀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모처럼 멍 때리는 시간이 왔다



비가 좀 많이 왔어야 하는데.. 바람만 불었나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깊은 생각은 행동을 멈추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하는 게 좋다 그러다가 또 피식 웃는다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하는데 그게 또 생각에 꼬리를 물고 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다 몇 년을 옆에 누군가와 같이 살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렇게 어색할 줄은 몰랐다 말을 건네주면 받아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그만큼 큰 행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이든, 부부든, 친구든, 자식이든 아마도 나는 이제 거기에 더 익숙해져 있는 사람인 듯하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말수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내랑 살면서 나는 참 말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싶었다, 그냥 사소 한 것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아내랑 대화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그게 좀 피곤했었나 보다 어느 순간 받아주는 거나 본인 이야기하는 게 별로 없어서 나도 말을 줄여나갔었다 괜히 안 해도 될 말 까지도 하게 될까 봐 조심했었다


'재미가 없다.'


공주랑 같이 지낸다는 게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거랑 삶의 재미랑은 또 다른 거니까 이제 충분히 쉰 거 같으니 또 움직여야겠다, 잡념이 내 발목을 잡지 않게 좀 시끄럽고 활기찬 노래를 틀어놓고 할 일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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