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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Feb 08. 2024

무한한 가능성의 길

열린 마음을 가져볼까

  순례길을 걸으며 나는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거창한 기대가 있었건만, 요 며칠 그저 생존모드로 살아냈다. 평소 한국에서의 일상보다 더 별거 없는 순례길의 하루, 질문과 숙제는 잔뜩 안고 왔는데 도통 잠잠히 있을 시간도 체력도 없다. 그저 목적지를 정해놓고 부지런히 걸을 뿐이다. 도착하면 배고프니까 밥을 먹어야 하고 땀에 찌들었으니 씻어야 하고 씻으면 잠이 오고... 



  게다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경험하고 싶어서 온 순례길에는 어쩐지 계속 동행과 함께다. 첫날은 일본인 친구와 함께 시작했고 그 이후 은경과 계속 걷고 있다. 보통 무리하게 더 걷거나, 덜 걷지 않는 이상 하루에 걷는 정도가 다 비슷비슷해서 공립 알베르게에서 거의 다 만나곤 했다. 며칠째 숙소가 겹치는 마누엘도 그런 인연에 속했다.



  더불어 부상으로 인해 하루 쉬며 처음으로 내가 이 길을 다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자 갑자기 이 길을 왜 걷고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됐다. 처음에 페이스 올린다고 무리하다가 도중에 부상으로 집에 돌아가거나, 버스나 기차로 여정을 마무리하는 순례자가 꽤 많이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걸 제일 경계하면서 걸었는데 결국 나도 모르게 내 몸을 몰아세운 모양이다. 부상자가 많이 생긴다는 구간에서 어김없이 나도 부상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엊그제는 절뚝거리며 걷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한 순례자가 괜찮은지 물었다. 그리고 꽤 진지한 표정으로 몸의 신호에 예민하게 굴어야 한다고 했다. "몸은 앞으로 너와 평생 가야 하는 너의 친구야. 너의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마. 길은 다음번에 또 걸을 수 있어.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끝이야." 그 말에 나는 한참 서러웠다. 내가 어떻게 용기 내서 온 길인데, 무릎이 계속 아프면 다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참담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아주 아우성인데 그런 내 맘은 전혀 아랑곳 않고 날씨는 맑기만 했다. 그저 풍경을 위안 삼아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늘의 코스는 중간중간 그늘도 있어 걷기 좋았다. 더군다나 10kg짜리 배낭도 없지 않은가. 굽이길을 돌아 나가 탁 트인 푸른 초원이 펼쳐질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짐도 미리 보냈다. 동행 은경은 원래 나보다 페이스가 빠른데 이번엔 나도 짐이 없어 속도를 맞춰 걸을 수 있었다. 양옆으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졌다가 산길로 드나들길 몇 차례, 같이 출발한 마누엘과 막간 스페인어 퀴즈도 하고 한국말 퀴즈도 했다. 그러다가 언어의 장벽으로 지칠 때면 조금 떨어져 걷기도 했다. 혼자가 되면 갑자기 내버려 둔 질문과 과제들이 들이닥쳤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니? 내가 찾길 바라던 삶은 이게 아니었잖아. 혼자 잘 지내는 연습을 한다고 해놓고 결국 계속 사람들이랑 같이 있네? 넌 정말 나약해 빠졌어. 네 몸 하나 관리 못해서 이렇게 아파버리면 어떡해. 넌 결국 못할 거야.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고 돌아가자. 넌 혼자 있는 거 죽을 만큼 싫잖아? 그게 두려우면 어떻게 이 길을 다 걷겠어.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으면 안 돼.' 묻어둔 말들이 쏜살같이 떼 지어 찾아왔다. 서글프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문득 연락이 뜸해진 남자친구에게로 생각이 이른다. 화가 치민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되지도 않는 걸까. 시차를 핑계로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게 괘씸하기만 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 내가 잘 지내지 못하는 걸 분풀이하고 싶은 마음은 애꿎은 남자친구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어디든 탓을 해보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 내 알량한 속을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몸 멀어지면 마음 멀어진다는 말에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 보았지만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생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나를 위해 충실히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의 메시지를 보고도 바로 답하지 않은 나, 이대로 자연스럽게 멀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선택권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비겁한 마음. 스스로를 향한 애정과 비난이 오갈 때마다 마음이 무척 지쳐갔다.



  또 이 흙탕물 같은 마음이 괴로워 동행에게 말을 건넨다. 몇 킬로 남지 않았으니 어서 가서 맛있는 걸 해 먹자는 이야기에 화색이 돈다.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을까? 복잡한 질문에서 생존의 질문으로 건너뛰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 기나긴 길에 동행과 함께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걷고 먹고 씻고 자고의 반복인 순례길 일상에 함께 걷고 밥 먹고 이야기할 동행이 있어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혼자인 건 두렵고, 동행과 함께일 땐 나에게 내준 숙제를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충분히 관계를 즐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건너왔다. 내게 준 숙제를 그저 괴로움 가득한 의무감으로 해내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다. 난처한 상황에서 병원을 함께 가주고 아빠처럼 돌봐준 마누엘, 며칠째 함께 의지하며 걸어온 은경이 없었으면 더 힘들게 이 길을 걸었을 테다. 우리는 이 길을 함께 끝까지 걸을 수도, 각자의 페이스로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그때까지 찾아온 인연을 맞이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일 것이다.


  

로스 아르코스 마을 어귀, 신난 아이들과 마마들

  



  이른 오후 무렵 도착한 동네, 로스 아르코스다. 다행히 미리 보낸 짐도 잘 도착해 있었다. 짐을 풀고 산책 나온 자그마한 동네는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활기가 가득했다. 마을 광장은 맞은편 가게에 앉아있는 사람들 얼굴이 다 보일만큼 아담했다. 바닥 한가득 아이들 낙서로 빼곡한 게 귀여운 미술관 같기도 했다. 우리의 친절한 아저씨 마누엘은 지친 우리에게 마누엘표 스페인 가정식을 대접해 줬다. 덕분에 우리는 최고의 저녁을 보냈고, 마누엘은 참 고맙고 재미있는 아저씨라며 은경과 히죽거렸다. 마누엘은 자기 전에도 우리 자리로 찾아와 좋은 꿈 꾸라며 굿 나이트 인사까지 전했다. 모든 것이 다 완벽했다. 남한테는 관대하고 나한테는 엄격한 나,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가혹했던 마음도 조금씩 편안함에 이르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니 조금은 편안했다. 찾아온 인연을 맞이하자. 이 길은 온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길이기도 하지 않나. 이 무한한 가능성의 길에서 나에게만 함몰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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