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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욕화중생 (浴火重生)

불 속에서 다시 태어나다.

by 싱숭생숭

천장은 다시 낯선 회색을 머금고,

균열은 어제보다 한 줄 더 늘어 있었다.

숫자는 내려가고 있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카펫의 냄새, 테이블의 윤곽,

비어 있는 얼굴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나는 그들의 눈빛이 나를 통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불이 꺼졌다.

방은 단숨에 어두워지는 대신,

서서히 스며드는 막이 되어 내 어깨와 턱에서 남은 힘을 천천히 벗겨냈다.

낮 동안 붙잡고 있던 말들이 입안에서 떨어져 나가고,

심장은 한 박자씩 늦추며,

몸은 눕는 자세를 기억해 냈다.

죽음을 떠올린다 해도 특별한 감정은 없다.

칼처럼 다가오는 것도, 불길하게 삼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공백이

죽음과 닮아 있다는 사실만 인식할 뿐이다.

나는 누웠다.

움켜쥐었던 것들을 더는 쥐지 않고,

움직이던 것들을 멈춘다.

그 단순한 동작이,

이 밤의 유일한 예식이다.


물.

전신에 추들이 매달린 듯,

몸은 움직일수록 더 깊이 당겨진다.

팔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축 늘어지고,

다리는 바닥을 스스로 껴안는다.

가슴은 돌덩이에 눌린 것처럼 조여 오고,

숨은 얕게 잘린다.

폐가 물로 가득 차며 들숨은 갈라지고,

날숨은 짧고 무겁게 꺼진다.

머리까지 잠기자 시야가 흔들리며 빛은 액체 속에서 비틀린다.

그 흐려진 화면 속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다.

명확히 보이지 않는데도, 분명히 따라붙는 눈빛.

물 너머로 굽어져 들어오는 기척이,

내가 가라앉는 깊이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나를 추적한다.

나는 발버둥을 멈춘다.

무력감 속에서도,

그 시선이 사라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어둠보다 더 선명하다.


쇠사슬.

처음에는 몸부림친다.

팔을 비틀고, 다리를 차올리고,

날개를 억지로 펴내려 한다.

그러나 발버둥은 쇠를 더 깊이 박아 넣을 뿐이라는 걸,

곧 깨닫는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압박되면서,

고통은 끝없이 늘어진다.

나는 결국 멈춘다.

몸을 쇠사슬에 맡기고, 그 리듬에 호흡을 맞춘다.

짧게 끊기는 숨, 뜨겁게 흐르는 피,

살과 쇠가 섞여 울리는 낮은 진동.

저항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수긍뿐이다.

그때에도 시선이 있다.

고리와 고리 사이,

찢긴 살 틈새로 스며드는 눈빛.

나를 구원하려는 눈빛도,

애도하는 눈빛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끝까지 지켜보는 차가운 눈빛.

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는다.

내 침묵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하나의 상처처럼 남는다.

겉은 봉합된 듯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여전히 벌어져 있다.

피는 굳어도 통증은 마르지 않고,

붉은 흔적은 오래도록 그의 시야 속에 각인된다.


칼끝.

복부를 찌르며 들어오는 순간,

숨은 산산이 흩어진다.

통증은 날카롭고,

분명히 내 몸을 가른다.

그러나 그 고통의 중심에서 나는 낯선 평온을 느낀다.

칼끝이 향해야 했던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신.

내가 대신 맞았다는 인식이,

통증보다 더 빠르게 내 안을 채운다.

몸은 찢기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풀린다.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앉고,

짧은 순간의 어둠 속에서 안심이 번져 나온다.

쓰러지는 동시에 발걸음이 달려온다.

뒤에서,

숨이 가쁘게 흔들리는 기척이 내 귀에 닿는다.

나는 이미 바닥에 기울어지면서도,

그 다급한 도착을 기다린다.

피의 열이 바닥을 적셔 나가는데,

내 의식의 가장자리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통증은 멀어지고, 남는 건 한 가지다.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

나의 마지막은 고통이 아니라,

그 기척이 곁에 있다는 확신으로 닫힌다.


나는 같은 곳에 눕는 법을 안다.

물의 바닥은 차갑고,

철의 냄새는 오래 남아 있다.

피부는 눌려 있고,

갈비뼈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진다.

손가락은 명령을 잊고, 움직이지 않는다.

풀림은 다짐이 아니다.

단지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몸의 힘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내 무게를 잃는다.

그러나 공허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의 무게가 남고, 나는 그 무게를 기억한다.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사라짐을 늦춘다.

나는 내 속도를 멈추고, 그가 사라지는 속도를 따라간다.

죽음은 혼자 닫히지 않는다.

나는 내 것을 잊지만,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차갑고 무겁게 머물며,

나를 끝내 지워지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남은 것은 그의 무게와,

그 무게를 붙든 나의 기억이다.

가끔 균열이 열린다.

어둠의 표면에 금이 가고,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은 언제나 낯설다. 내 몸에서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갇혀 있던 것이다.

낮 동안 쌓인 말들,

삼키고 덮어둔 상처가 그 틈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그 흐름을 억지로 막지 않는다.

틈은 붙잡으라고 열리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라고 열리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둔다.

흘러나가는 것을 따라가며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깨닫는다.

소멸은 결코 혼자 닫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 몸 안에서도 어떤 부분은 먼저 꺼지고,

어떤 부분은 더 늦게 사라진다.

호흡이 먼저 끊기고, 시선이 따라 흐려지고,

마지막에는 감각이 늦게 따라온다.

나는 남았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내가 남아 있는 동안 이미 다른 부분은 먼저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내가 쓰는 문장의 무게를 결정한다.

글을 적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이 먼저 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있다.

날카롭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다.

피가 스며 나와도 곧 식는다.

식는다는 것은 내 것이던 것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고통이 아니라 이동이다.

내 몸에서 떠난 것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 버리는 순간이다.

몸은 이런 순간을 안다.

생각보다 더 깊이, 냄새로 기록한다.

철의 맛, 오래된 물의 냄새, 젖은 고무 같은 기척.

그 냄새가 닿으면 시간은 흐려지고, 날짜는 지워진다.

남는 것은 공백이다.

공백은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늘 있었지만 낮에는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밤이 오면 덮여 있던 것이 벗겨지고,

나는 다시 그 공백을 마주한다.

나는 그 공백을 채우지도, 지우지도 못한 채 바라본다.

바라보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뿐이다.


그러나 바라본다는 행위조차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공백이 스스로 얼굴을 만든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가,

천천히 나의 윤곽을 따라 그려진다.

금이 간 거울처럼,

습기가 차올라 흐려진 표정.

눈은 깊게 꺼져 있고,

입술은 닫히지 않은 틈으로 갈라져 있다.

그 모습은 내가 살아 있을 때 숨기고 싶었던 얼굴,

애써 덮어두었던 표정이었다.

나는 그 왜곡된 자화를 마주한다.

피곤한 기색, 지워지지 않은 상처,

무언가를 애써 참던 흔적.

살아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얼굴이 죽음의 공백 속에서 되살아난다.

눈을 감아도 그 얼굴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나는 손을 뻗는다.

차가운 유리를 만질 줄 알았던 손끝이 느낀 것은 단단한 표면이 아니라,

축축하게 젖은 살결 같은 촉감이다.

오래 방치된 벽지가 눌려 꺼질 때처럼,

내 손은 거울 속으로 스르륵 들어가 버린다.

그 순간 얼굴의 윤곽은 무너지고,

나는 그 안으로 빨려든다.

안쪽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소리가 없는 고요가 아니라,

너무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겹쳐져서 들리지 않는 고요였다.

웃음, 울음, 속삭임, 한숨, 수많은 목소리가 압축되어 귀 안을 짓눌렀다.

마치 오래된 녹음을 역재생할 때처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묘하게 익숙한 기척이 울려왔다.

나는 그 무게에 눌려 더 깊이 가라앉는다.

그때 알았다.

죽음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덮어두려 했던 것들,

외면하려 했던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숨겨왔던 표정,

내뱉지 못한 말,

참아 삼켰던 울음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사라지는 동안, 그것들이 나 대신 남는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죽음은 닫힌 문이 아니다.

오히려 끝내 닫히지 못한 문틈이다.

조금 열려 있는 틈새로,

말과 표정과 냄새가 흘러나온다.

방 안에 남아, 내가 떠난 뒤에도 오래 머문다.

나는 그것들을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끝내 남는다.

시간이 더 흐르면,

공백은 또다시 다른 형체를 취한다. 이번에는 물건들이다. 내가 쓰던 펜,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노트, 반쯤 닳은 신발.

그것들이 낯선 무게를 띠기 시작한다.

나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흔적을 증명한다.

나는 생각했다.

사라지는 쪽보다 남겨지는 쪽이 더 무겁다는 것을.

몸이 꺼져도,

물건이,

공백이,

왜곡된 얼굴이,

여전히 나를 대신해 버티고 있다.

나는 끝내 비워지지 않았다.

죽음조차 나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흔적과,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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